"그렇게 얇은 옷 하나만 입고 나가면 바람이 옷 속으로 다 들어오잖아. 그러다가 금방 감기 걸리겠어."
"그래서 잠바 입잖아."
"학교에서는 잠바 벗고 있을 거 아니야? 런닝 좀 입자."
"안 입어도 돼."
"나중에 감기 걸렸면 어쩌려고 그래?(=너 감기 걸리면 나만 고생이다.)"
아무리 계산을 해 봐도(물론 나는 아들의 건강을 앞에 두고 이것저것 따져보는 계산적인 엄마는 아니지만) 아들이 감기에 걸리면 결국에는 나만 고생을 하게 된다. 그동안의 빅 데이터로 미루어 보아 이는 자명한 이치다.
유난히 건강에 신경을 쓰는(하지만 하는 행동은 전혀 그렇지 않은) 아들은 조금만 아파도 엄살이 심한 편이다. 고로 나만 피곤해진다. 그 수발을 누가 다 들겠는가, 어머니의 이름으로 내가 다 감당해야 한다.
안에 런닝 쪼가리 하나 입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손바닥만 한 거 그거 얇디얇은 거 추가로 더 입는 게 그렇게 거추장스러운가.
도대체 왜 아들은 그렇게 한사코 마다하는지 모를 일이다.
요즘 바람이 심상치 않다.
아무리 잠바를 입고 나간다고는 하지만 달랑 티 하나 입고 그 위에 아무리 잠바를 걸친다 한들 우리의 소중한 런닝을 입고 안 입고의 차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빼빼 마른 몸에 헐렁한 티셔츠 한 장 입고 자랑스럽게 잠바는 열어젖히고 나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한기가 들 지경이다.
"우리 아들, 추우니까 내복도 입고 잠바도 입고 지퍼는 꼭 잘 잠그고 가자."
라고 내가 말하면 전혀 이의제기 없이 곧이곧대로 엄마 말을 듣던 새나라의 어린이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가끔 깜빡하고 내가 내복이라도 안 챙겨 두면 여지없이
"엄마,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내복을 줘야지. 나 감기라도 걸리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라고 단번에 나의 허술함을 지적하며 기어코 위아래로 든든히 챙겨 입고 나서던 어린이였는데.
얘가 멋을 부리기 시작하는 건가?
멋을 부리더라도 런닝 한 장 정도는 살짝 입어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옛날에 멋 내다 얼어 죽는다고 했다. 런닝 입고 다녀라."
일요일에 함께 콩을 줍던 외할머니의 훈화말씀에도 아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만, '멋 내다 얼어 죽는다.'는 그 말이 다 무슨 소리인고, 하는 표정이었다.
하도 내 말을 안 듣길래 그러다 감기라도 걸릴까 봐(우리는 감기 한 번 걸리면 고생을 너무 심하게 하기 때문에 지레 겁을 먹게 된다.) 걱정이라고 했더니 딸을 거든다고 외할머니가 외손주에게 한 말씀하셨지만 아무 반응도 없었다.
하지만 찬바람 앞에서는 장사가 없었다.
백 날 천 날 시도 때도 없는 내 잔소리보다 갑작스러운 잔기침이 아들을 깨우쳤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들은 콜록대기 시작했다.
나는 은근히 올 것이 왔다고 쾌재를(이 시점에서 엄마라는 사람이 아들에게 그런 마음을 갖는다는 게 조금 거시기하긴 하지만) 불렀다.
이젠 더 이상 버티기는 힘들겠지?
그렇게 노래를 불러도 들은 척도 안 하더니 마침내 아들은 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한 마디를 하셨다.
"엄마, 이제 런닝 입고 가야겠어."
그럼 그렇지, 네가 별 수 있겠어.
"그동안 너무 춥게 입고 다녀서 감기 기운 있는 것 같다. 앞으론 따뜻하게 입고 다니자."
"알았어."
런닝 그 한 장이 감기를 예방할 수 있는지 어쩐 지는 나도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안 입으면 더 춥고 입으면 덜 추울 거라는 생각에 그동안 그렇게 집착을 해왔던 것이다. 다행히 내가 의도했던 대로(?) 일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딱 감기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만 콜록대다가 아들에게 런닝을 입게 하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