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Oct 16. 2024

엄마는 엽전 써봤지?

그날도 넌 너무 멀리 갔어

2024. 10. 15.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엽전 알지?"

"알지."

"엄마는 당연히 써 봤겠지? 어땠어?"

"그게 무슨 소리야?"

"엄만 우리 집에서 가장 나이가 많잖아. 안 써봤어?"

걸핏하면 우리 집에서 나이 가지고, 내 나이 가지고 아이들은 저런 식이다. 그 집의 가장 연장자는 당연히 엽전을 써 봤어야 하는 건가?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논리람?

잠깐, 진정해야 해.

나이 많단 소리에 동요되어선 안돼.

딸아, 넌 엄마에게 황당함을 줬어.


"엄마, 옛날에는 엽전을 돈으로 썼다면서?"

"그랬지."

"엄마 엽전 본 적 있어?"

"있지.(=책에서만 봤지)"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엄만 역시 옛날 사람이야."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야?"

"옛날에 엽전을 돈으로 썼잖아. 그리고 엄마는 옛날 사람이잖아. 엽전 본 적도 있다며?"

"그거야 책에서 봤단 말이지. 옛날 옛날에 쓴 엽전을 엄마가 무슨 수로 직접 보겠어?"

"아무튼 써 보긴 했지?"

"안 써봤다니까?"

"엄만 옛날 사람인데 엽전도 안 써봤어? 이상하다, 옛날에는 엽전을 썼다고 하던데."

"여기서 옛날이란 말은 정말 옛날이란 뜻이지 그걸 엄마한테 갖다 불일 거 아니지.  안 그래?"

"난 엄마는 당연히 엽전 써 봤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적당히 해라."


아마도 사회 시간이 문제였겠지?

옛날 조상들의 사회상을 공부하다가 엽전이 등장했겠지?

아무 상관도 없는 이 엄마를 생각하며, 단지 우리 집 최연장자라는 이유로 걸핏하면 나보고 옛날사람이라는 둥 나이가 많다는 둥 하면서 이것저것  갖다 붙이는 게 특기인 남매니까 이렇게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하잖아.

그래봤자 너랑 나랑 나이 차이가 얼마나 난다고?

기껏해야 30년 정도?

눈 깜짝할 사이 아니야?


언젠가 어느 신문 글에서였던가? 방송에서 들었던가?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토큰'을 본 아들이 '상평통보'가 아니냐며 그런 대단한 보물(?)을 여태 가지고 있었으면서 비밀로 하고 있었던 거냐고, 이제 우리는 부자가 된 거 아니냐고(상평통보랑 부자랑 무슨 상관이라도 있단 말인가?) 호들갑을 떨었다던가?

사실 나도 토큰을 실제로 본 적은 없다. 나는 시골에서 살았고 고등학교 때 나름 도시로 나갔을 때는 학생 신분으로 이용 가능했던 대중교통수단으로는 버스가 가장 일 순위였고 그 당시 종이로 된 차표를 사서 타고 다녔던 기억은 있다. (이제 와서 토큰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기는 하다.)

그 얘기를 듣고 혼자 웃음이 나왔었는데 지금 내 딸이 내게 하는 행동을 보면 웃음이 쏙 들어간다.

난데없이 엄마를 몇 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려 버리다니.

그래, 솔직히 엽전을 직접 사용해 본 적은 없지만 상평통보, 당백전 정도는 안다.

안다고 했지, 써 봤다고는 안 했다.

이건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꾸나.


차라리 이 엄마에게 비트코인을 아냐고, 그것과 엮여 봤냐고 묻는 게 더 현실적이겠다.

그저 아이들은 학교에서 '옛날과 관련된' 어떤 주제만 나왔다 하면 죄다 나를 갖다 붙인다.

그러나 나는 종이 차표, 딱 거기까지만이다.

만져 본 적도 없는 '엽전 사용 후기'같은 건 아무리 사랑하는 자식이라도 그에게 남겨 줄 수가 없다.

거짓 후기 같은 건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여자는 약하지만 이렇게나 어머니는 완강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 그런 건 어디서 배웠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