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문제를 풀 때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답을 처음에 썼던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요즘은 '과정중심 교과 과정'이 대세니까.
어떤 우여곡절 끝에 정답을 추론했는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겠다.
"우리 아들, 오늘 엄마가 네 문제집 채점을 하다가 궁금한 게 있어서 말이야."
"뭔데?"
"여기 이 문제 말인데, 처음엔 다른 말을 쓴 것 같은데? 도대체 뭐라고 썼다가 지운 거야? 엄마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추측을 못하겠어."
"아, 이거? '유괴범이세요?'라고 썼는데 왜?"
"유괴범 같아?"
"응."
아닌 게 아니라 그렇게 듣고 보니 또렷하게 그 말처럼 보였다.
순식간에 의문이 풀렸다.
동시에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한창 꿈 많고 순수하고 해맑은 초등학생 어린이가 국어 문제 답으로 '유괴범'이라는 단어까지 생각하게 된 사연이 몹시도 궁금해졌다. 기필코 물어봐야만 했다. 너무도 생각지도 못했던 답이라, 필시 거기엔 사연이 있으리라.
"그랬구나. 그런데 갑자기 왜 유괴범이 생각났어? 어떤 면에서?"
"지금 엘리베이터 앞에 두 사람이 서 있잖아. 이 아저씨가 이 어린이를 엘리베이터에 태우는 거야. 엘리베이터는 밀폐된 공간이잖아. 이 아저씨가 이 애를 강제로 태워서 유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 안에서는
어린이는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아저씨가 아이를 유괴하려고 엘리베이터 앞에 기다리고 있다가 데리고 가버리는 거지. 갇힌 공간에서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잖아. 그래서 그 아저씨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려고 했다고 생각했어."
"아, 그랬구나. 듣고 보니까 아주 일리 없는 말도 아니다. 하긴,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나기도 하더라, 뉴스 보면."
"엄마. 봐봐. 아저씨가 웃고 있잖아. 아이를 유괴하려고."
"아, 그래? 하긴 옷도 말끔히 잘 입고 있네. 나쁜 사람은 처음엔 친절하게 대하면서 시작하기도 하지. 그래서 사람은 겉만 봐서는 잘 몰라. 사기꾼도 '나 사기꾼이다' 이렇게 써 놓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치? 어디서 들으니까 사기 치는 사람들이 더 겉은 그럴듯하게 차리고 다니기도 한다고 그러더라. 이렇게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아저씨가 아이를 유인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 거라고 생각했나 보구나?"
"응. 처음엔 그랬지. 이 아이가 혼자 있잖아."
"맞아. 혼자 다닐 때는 조심해야 하긴 하지. 근데 왜 나중에 답을 바꿨어?"
"생각해 보니까 또 그게 아닌 것 같기도 하더라고."
"하긴, 어린이가 푸는 문제집에 그런 내용의 답을 요구하는 건 좀 그렇기도 하네. 근데 잘 생각해 보면 지금 네가 풀고 있는 이 문제의 단원이 '남이 내게 보이는 친절한 말이나 행동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대한 내용이 거의 전부잖아. 그 생각만 했어도 유괴범까지는 진도 안 나갔을 텐데 말이야. 문제들은 보면 거의 그 단원과 관련된 답들이 나오거든. 다른 과목을 풀 때도 보면 그런 경우가 있더라. 특히 단원평가 같은 것들은 말이야. 그리고 '유괴범이세요?'라고 대놓고 물으면 저 아저씨가 '그래, 나 유괴범이다.' 이럴까, 과연? 안 그러겠지? 정말 유괴범이어도 아니라고 발뺌하겠지?"
"그러겠지, 아마도?"
"아무튼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 만나면 조심해. 말도 걸지 말고 알았지?"
"응. 걱정 마, 엄마. 나 못 믿어?"
"당연히 엄마는 우리 아들을 믿지."
평소에 대화할 때도 그 주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말을 하면서 갑자기 등장해 나를 당황시키는 일이 많은 아드님이시다. 어쩔 때는 또 너무 곧이곧대로여서 내 속이 답답할 때도 많다. 아무리 끌어다 붙이려고 해도 그거랑 이거랑은 엄연히 다른 건데도 일단 저돌적으로 밀어붙이기를 할 때도 많은 아드님이시다.
"우리 아들, 다시 한번, 이번 일을 계기로 엘리베이터를 탈 때의 주의사항을 명심해야겠어. 항상 낯선 사람은 조심해야 해. 혼자 있을 땐 더욱더 말이야. 알겠지?"
"응, 엄마. 엄마도 엘리베이터 탈 때 조심해. 알았지? 모르는 사람이 엄마한테 말 걸거나 뭘 주면 받지도 마. 알았지?"
오냐, 오냐, 우리 아들이 하는 말은 잘 들어야지.
그나저나, 이 사건 이후로 나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그 앞에 '깔끔하게 차려입은 남자 혹은 여자'가 있지는 않나 둘레둘레 보게 된다. 마흔도 훌쩍 넘은 나를 누가 유괴해 갈 리는 만무하지만.(이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하도 흉흉한 세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