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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Oct 22. 2024

파블로프의 붕어빵

혹은 학습된 김칫국

2024. 10. 19.

< 사진 임자 = 그림자 >


"엄마, 나 오늘 붕어빵 사 먹고 올게."


라고 딸이 내게 문자를 보냈을 때 나는 은근히 기대를 했다.

"엄마, 내가 엄마 주려고 엄마가 좋아하는 슈크림으로 사 왔어."

라고 헐레벌떡 뛰어 와서 뜨끈뜨끈한 그것을 내 품에 안기는 그런 상상마저 이미 다 마치고 말이다.

하지만,

세상사는 일이 어디 다 내 마음 같던가...


"역시 붕어빵은 맛있어. 우리 학교 앞에 드디어 붕어빵을 팔기 시작했어."

집에 도착한 딸은 몇 달 만에 다시 재회한 그 붕어빵이 얼마나 맛있었는지를 내 앞에서 한참 동안이나 구구절절 읊어댔다.

"친구들이랑 같이 먹었는데 내 친구들은 어묵도 다 먹더라. 근데 난 안 먹었어. 다음엔 어묵이랑 같이 먹어야지. 생각만 해도 맛있겠다. 팥이랑 슈크림 둘 다 먹었는데 어쩜 둘 다 그렇게 맛있지?"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딸은 술술 붕어빵 시식 후기를 내게 남기고 있었다.

그런데 딸아, 혹시 뭐 잊은 거 없어?

뭔가 이쯤에서 꺼내 놔야 하는 거 아니야?

"참, 엄마는 슈크림을 더 좋아하지?"

그래, 역시 잊지 않았구나.

기억하고 있었어.

이제 딸이 가방에서든 품 안에서든 슈크림이 잔뜩 든 붕어빵을 꺼내기만 하면 된다.

두 개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하나면 된다.

그럼 난 또 어느 정도로 호들갑을 떨어줘야 하지?

"어마! 엄마는 네가 엄마 몫까지 붕어빵을 사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물론 거짓말이다)"

"엄마 것은 안 줘도 되는데.(물론 거짓말이다)"

"너 혼자만 먹고 오지 뭐 하러 엄마 몫까지 사 왔어?(물론 거짓말이다)"

"엄마는 나중에 엄마가 사 먹고 싶을 실컷 사 먹을게.(물론 거짓말이다)"

"엄마는 네가 먹는 모습 생각만 해도 배불러. 안 먹어도 돼.(물론 거짓말이다)"

이 정도면 대충 적절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딸은 다음 진도를 나가지 않았다.

아니,

어째서 진도를 더 이상 나가지 않는 거람?

너무 뜸을 오래 들이는 것도 못써요.

슬슬 가방을 열어 보렴.

설마 그 안에 엄마 몫으로 '따로' 사 온 붕어빵이 하나라도 들어있지 않은 게야?

하마터면 나는 딸의 가방을 샅샅이 뒤져볼 뻔했다.

어라?

이상하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비추어 보아 이젠 '붕밋아웃'할 때가 되었는데?

최대한 붕어빵을 기다린다는 느낌을 주지 않도록, 그러나 누가 봐도 뭔가를 간절히 고대하는 그런 눈빛으로 딸을 바라봤다. 딸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뒤쫓았다.

언제쯤 가방을 열어 보려나.

가방이 아니면 겉옷에 들어 있는 건가?

전에 붕어빵을 사 먹고 온 날이면 남매는 항상 내 몫도 사 오곤 했었다.

결코 저희들만 먹고 입 쓱 닦고 오는 일이 없었다.

엄마를 주겠다며, 식지 않게 전달해 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마구 뛰어 온 시절도 있었다, 물론.

그날들이 아련해지면서 나는 다시 한번 김칫국을 들이켤 준비를 이미 다 마친 상태였다.

'붕어빵'이라는 단어 하나에 이미 나는 내 몫을 기다리게 된 것이다.

하나도 욕심이었나 봐.

그래 먹다 만 머리든, 꼬리든 그게 붕어빵이라고 짐작되는 그런 형태이기만 하면 돼.

큰걸 바라진 않을게.


그러나,

아무리 기다리고 기다려도 딸은 다음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 결코.

식기 전에 내놓아하여야 할 텐데.

얘가 깜빡했나?

그래, 그럴 수 있어.

날 닮아서 건망증이 심하니까 기껏 사 와놓고는 잊어버렸을 수도 있지.

한참 동안 제 방에서 뭘 하다가 나온 딸은 드디어 중대발표라도 하듯 내게 와 한 말씀 하셨다.


"엄마, 나 내일 또 붕어빵 사 먹고 와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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