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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Oct 23. 2024

신부님은 말씀하셨지,내 돈 주고 사 먹으라고

남한테 바라지 말라고

2024. 10. 22.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나도 오늘 학교 끝나고 붕어빵 사 먹고 올게."


이번엔 아들이었다.

전날 제 누나가 붕어빵 얘기를 하는 것을 듣자마자 용돈부터 챙겼다.

그것도 (내 눈에만) 거금을...


"나 오늘 붕어빵 사 먹었다. 얼마나 맛있었게?"

딸이 제 동생에게 자랑도 아닌 자랑을 하자 아들이 냉큼 기회를 잡았다.

"엄마. 그럼 나도 내일 친구들이랑 붕어빵 사 먹을래."

누나가 하는 건, 특히 먹는 일에 관해서는 절대 지지 않는 아들이다.

항상 딸은 아들로 하여금 뭔가에 분발하도록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래. 먹고 싶으면 먹고 와.(이번엔 너한테 기대해도 되겠지? 너는 만에 하나라도 엄마 몫을 챙겨 오겠지?)"

딸이 혼자서만 맛있게 붕어빵을 사 먹고, 은근히 내 몫까지 기대했다가 결국 아무 콩고물도 내게 떨어지지 않은지 겨우 하루가 지난날이었다.

아들은 다를 거야.(그러나 다르긴 도대체 뭐가 다르단 말인가)

몇 년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붕어빵을 사 먹고 온 날 그게 너무 맛이 있어서 엄마도 주겠다고, 그게 식을까 봐 붕어빵이 담긴 봉투 입구를 손으로 꽉 잡고 제 품 안에 넣고 집으로 달려왔던 아드님이 아니신가. 그것도 미리 사두면 붕어빵이 식을까 봐 친구들과 같이 사 먹을 때 내 몫을 같이 사지 않고 실컷 놀다가 집에 올 때 굳이 다시 그 붕어빵 파는 곳으로 찾아가 사 왔다는 사연을 들려줬던 날, 그날의 감동은 절대 잊을 수가 없었다.

그다음 해에는 어땠던가.

한 번 해 봤다고, 굳이 집까지 달려 올 필요성까지는 못 느끼고 거기에서 집까지의 거리가 붕어빵이 식을 정도의 거리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름 시간을 계산하고 사 오지 않으셨던가. 중요한 건 혼자만 먹고 입 닦지 않았다는 사실 아닌가.


전날 딸이 오롯하게 저 혼자만 맛있게 슈크림으로 하나 팥으로 하나 공평하게 두 가지 맛을 다 보고 온 후, 딸의 가방이나 겉옷에서 (내 몫의) 붕어빵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어 잠깐 아쉬워지려고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속없이 난 또 아들에게 뭔가를 기대하게 되었던 거다.

드디어 아들이 집에 도착했고 나는 애써 태연하게 물었다

"우리 아들, 붕어빵 맛있게 먹었어?(=엄마 몫은 어디 있는 게지?)"

"응, 오랜만에 먹으니까 맛있었어."

"그래, 그랬겠다.(=그런데 엄마 몫은, '혹시라도' 없는 거라니?)"

"역시 날씨가 추워지면 붕어빵을 먹어 줘야지."

"그렇지.(=엄마도 먹어 줄 줄 아는데)"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설마,

이렇게 끝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찰나, 아드님이 뭔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말씀하셨다.

"참, 엄마 슈크림 붕어빵을 좋아하지?"

"우리 아들 어떻게 알았어?"

"내가 당연히 알지. 옛날에 내가 엄마한테 사줬었잖아. 기억나?"

"당연히 기억나지. 그걸 어떻게 잊겠어?"

"그때 내가 붕어빵이 식을까 봐 봉지 꽉 잡고 집까지 막 뛰어 왔었잖아. 집에 왔을 때까지 붕어빵이 안 식고 따뜻했었잖아. 그것도 생각나?"

"그럼. 당연히 생각나지. 엄만 평생 기억할 거야. 죽을 때까지 안 잊어. 아니, 죽어서도 우리 아들이 엄마한테 해 준 것 안 잊을 거야."

그래,

이쯤 되면 너도 슬슬 그다음 행동을 개시해야 하지 않겠느냐?

혹시 가방에서 뭐 꺼낼 거 없어?

뭐라도 하나 꺼내줘 보렴.

그러나,

아드님은 단지 이 말만 꺼내셨다.

"정말이야? 그럼 내가 나중에 정말 엄마가 그걸 평생 기억하는지 확인해 보겠어!"


아, 맞다.

신부님이 말씀하셨었지.

아들 딸한테 바라지 말고 직접 하라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내 돈 주고 직접 사 먹으라고.

그래, 나도 슈크림 붕어빵 하나 정도 사 먹을 돈은 있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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