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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Oct 29. 2024

지금 시각은?

그 40분이 이 40분은 아니잖아

2024. 10. 27.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지금 몇 시야?"

"40분."

"진짜?"

"왜 그래?"


내 대답에 아드님은 월요일 아침부터 눈물바람이었다.

다짜고짜, 일어나자마자, 왜 울기부터 하는 거람?


"왜 울어?"

아들의 눈물에 나는 황당할 뿐이었다.

내가 아침부터 야단을 친 것도 아니고 듣기 싫은 소리를 한 것도 아니고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아니 무슨 일이 일어나기는커녕 아들은 정말 잠자리에서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이러면 어떡한다니? 누가 보면 자고 있는 아들 울린 엄마인 줄 알겠다.

몇 시냐고 묻길래 그냥 '40분'이라고 대답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내 말을 듣고 아들은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곧바로 울어버리는 게 아닌가.

"무슨 일 있어?"

"엄마, 진짜 40분이야?"

"응. 진짜지, 그럼."

아들은 그 순간 자신이 할 일은 오직 눈물을 쏟는 일뿐이라는 듯 마냥 울었다.

아니, 한밤중에 깨어나서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신생아도 아니고 도대체 뭐가 문제여서 이러는 걸까.

"학교 가야 하는데..."

"가면 되지."

"40분이라며?"

"그래."

"누나는 갔어?"

"아니, 누나도 안 갔어."

"40분인데?"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어, 누나는."

"그럼 어떡해?"

"어떡하긴. 일어나겠지."

"엄마가 40분이라고 했잖아."

"그래, 40분이야. 7시 40분."

그제야 아들은 울음을 그쳤다.

"우리 아들, 설마 지금 8시 40분인 줄 알고 운 거야? 학교 지각할까 봐?"

"응."

참, 애들은 애들이다.

나는 7시 40분이라고 말한 건데(앞에 시간 단위를 과감히 생략한 결과로 이런 사태를 맞은 거였다) 보통 분만 얘기해 주곤 했으니까(그것도 거의 학교에 다 갈 시간이 될 때 재촉하듯 말이다), 아들은 아마 8시 40분이라고 착각했던 모양이다.

"그럼, 8시 40분이라고 착각했으면 울고 있을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얼른 일어나서 학교 갈 준비를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울고 있을 시간에 준비를 해야지."

나라면 그랬을 것 같은데.

하지만 불과 몇 초 사이에 최상의 평안을 얻는 그 어린이는 다만 이렇게 대꾸했다.

"에이, 그럼 더 자도 되겠네. 지금 안 일어나도 되잖아."

이러면서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좀 전에 지각했다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눈물바람하던 그 어린이는 어디 가고 저리도 당당하게 다시 이불속으로 파고든단 말인가. 엄연히 등교 시간이 정해져 있는 초등생 어린이의 마음이 뒤집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젠 정말 더 미적거리다가는 지각하겠다 싶어 아들에게 슬쩍 한 마디 했다.

"우리 아들, 20분이네."

앞에 시간을 생략해도 당연히 이젠 8시 20분을 의미한다는 것을 잘 알 테지.

"누나는 갔어?"

"아니."

왜 자꾸 누나를 걸고넘어지는 거지?

마침 딸이 방에서 나왔다.

지각은 얘가 (확실히)하게 생겼다.

"누나, 지금 8시 20분이래. 그럼 누나는 지금 준비해서 학교 가도 지각이겠네."

"나도 알아."

이왕 지각이 확실시된 마당에 조급하게 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인지 딸은 전혀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

그나저나 누나가 지각을 하든 말든 저랑 무슨 상관이라고 제 앞가림도 못하는 마당에 누나 지각을 거론하는 거람?

"우리 아들, 누나는 누나 알아서 하라고 하고 너도 이제 일어나야 하는 거 아니야?"

"엄마, 지금 20분이라고 했지? 누나는 지각하겠지만 나는 이제 준비하면 지각은 안 하겠지?"


언제나 누나 뒤를 따르는 동생이다.

"엄마, 누나 갔어?"

매일 아침 잠에서 깨면 내게 묻는 첫마디는 이것이다.

"어머니, 밤새 편안히 주무셨는지요?"

라는 낯 간지러운 문안인사까지는 나도 바라지도 않는다마는, 물론.

"근데 우리 아들은 왜 누나한테 그렇게 관심이 많아?"

"그건 말이지. 누나가 학교 가는 시간이 8시 20분이니까 난 그때 일어나서 준비하면 돼. 누나가 나갔다는 건 8시 20분이 됐다는 뜻이니까 난 그때부터 준비하면 지각은 안 하거든. 누나도 갔으니까 이제 슬슬 준비해 볼까?"


이로써 수수께끼(근처에도 못 갈 것이지만)가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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