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Oct 13. 2024

너, 그런 건 어디서 배웠어?

먹지 마세요, 엄마에게 보여 주세요

2024. 10. 5.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자. 이건 엄마를 향한 내 마음이야."

"어쩜 우리 아들은 이런 생각을 다 했을까?"


아드님이 또 시작하셨다.

하고 또 해도 질리지 않는 애교 발산의 시간, 앞으로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잔뜩 호들갑 떨어줄 만하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정확히 아는 게 틀림없다.

나에게 어떤 반응을 기대하며 하는 행동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다.

만 열 살, 남아, 초등학교 4학년 재학 중, 단언컨대 아들 또래의 아이들 중에 엄마에게 저런 식으로 애교 부리는 자녀 중에 단연 으뜸일 것이다.(라고 나만 집에서 혼자 생각한다.)

사람들이 말하길 자녀는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런대로 살아진다고 하지만 없다고 해서 별 일이 나는 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나도 그에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가 부모에게 주는 기쁨은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이라고 하던데, 나는 그날 불현듯 그 생각이 났다.

자식을 기르는 것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보통 이상으로 애면글면하며 극성스럽게 아이들은 키우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아무튼 사람을 낳아서 사람으로 기른다는 그 자체가 숭고한 일임과 동시에 크나큰 시련이기도 하면서 저세상 고생길이기도 하면서 하루에도 수 십 번 자식이 예뻤다가 애물단지였다가 다시 애처로워지고 안타깝기까지 하는 것이다.

나는 아들을 임신했을 때 달리 특별한 태교 같은 것도 하지 않았는데, 딸을 임신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극심한 입덧 때문에 거의 제정신도 아닌 상태로 출근을 했었는데 어떻게 저런 신통방통한 아들이 태어난 거람?

따뜻한 말 한마디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느닷없이 내 속이나 긁지 않으면 그만인 것을(이미 그건 남의 다 큰 아들이 종종 하고 계시므로) 가끔씩 그저 내 기분을 이해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갑자기 이렇게 엄마를 감동시키면 어떡한담? 나는 손수건도 준비하지 못했는걸.

"얼씨구, 너 또 엄마한테 뭘 원하는 거냐?"

옆에서 단지 네모 반듯한 식빵을 먹는 일에만 집중하던 딸이 아들을 흘겨보며 한마디 했다.

"너 뭐 필요한 거 있지?"

이럴 때 보면 딸은 딱 나다.

나는 나를 또 낳아버렸다.

"아니야. 엄마한테 뭘 바란다고 그래? 엄마를 사랑하니까 그런 거지."

아들은 극구 부인했다.

"아닌 거 같은데. 분명히 뭔가 있어! 수상해. 얼른 사실대로 말해!"

아니 이럴 수가!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내가 나를 또 낳은 게 맞다.

누가 봐도 나다.

말 한마디로 유전자 검사에 버금가는 정확성을 보여준다.


그 빵쪼가리 하나, 그게 뭐라고 나는 새삼스레 자애로운 어머니, 인자한 어머니 모드로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들이라고 호들갑 떨며 이렇게 자식에게 빠져드는 것일까.

좀처럼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아들 볼에 대며 뽀뽀 세례를 하다가 문득 생각났다.

나중에 여자 친구라도 생기면 이보다 더한 것도 해 주겠지?

나한테 하는 거 이건 아무것도 아니겠지?

그때는 엄마 생각 같은 건 나지도 않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단지 호돌이를 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