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연히 해방 이후에 태어난 사람한테, 아니 해방을 맞이하고도 6.25도 안 겪은 사람한테, 나름 최근(?)에 태어난 사람한테 그게 무슨 말이람?
그런데, 여기서 양심상 최근이라는 말이 좀 안 맞는 것 같기도 하긴 하다.
"엄마 진짜 옛날 사람이다."
"뭐가?"
"호돌이 안다며?"
"그래. 안다."
"그때가 언젠데 호돌이를 다 알아?"
"그거야 그때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렸고 그때 마스코트가 호돌이였으니까 기억하는 거지."
"진짜 옛날 사람 맞네. 엄마 조선 시대에서 왔어?"
얘가 또 멀리 가도 너무 한참 멀리 가시네. 어떻게 호돌이랑 조선 시대랑 엮을 수가 있는 거람?
조선 시대는 호돌이가 아니라 그냥 호랑이겠지.
순수 호랑이 그 자체, 호랑이가 출몰했으면 출몰했지 호돌이가 한양 관아에 출몰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야. 그 옛날 조선 시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겼겠지만(조선 시대에도 호랑이가 있긴 있었겠지?) 1988년 서울 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는 내게 뜬금없이 조선시대 사람이 아니냐는 의혹만을 남겼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말이다.
"엄마는 하여튼 진짜 옛날 사람이라니까. 호돌이를 다 알고."
"호돌이를 알면 옛날 사람인 거야?"
"그럼. 호돌이가 얼마나 옛날 일인데."
"옛날은 무슨 옛날이야? 그래봤자 그때 엄마가 초등학교 1학년이나 2학년 정도밖에 안 됐을 텐데."
"뭐? 그렇게 옛날이야? 확실하네, 엄만 옛날 사람이야."
아드님이 그날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집에 오자마자 호돌이 타령을 하였다,
아마 사회 시간에 배웠나 보지?
수업 시간에 88 서울 올림픽 얘기가 나와서 호돌이까지 출동했나 보지?
그래서 엄마가 옛날 사람이라고 걸핏하면 단정 지어버리는 아이들이니까 과연 이 엄마가 진정 호돌이의 실체를 아는지 모르는지에 따라 옛날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려고 벼르고 있다가 하교하셨겠지?
그리고 아드님의 예상대로 이 엄마는 순식간에 조선 시대 사람이 되어버린 거겠지?
그런다고 해서 내가 정말 아들 마음대로 조선 시대 사람이 될 리도 만무하지만 말이다.
(물론 나는 조선 시대 사람도 아니고 자랑스러운 우리의 호돌이도 조선 시대의 마스코트는 아니다. 그건 내가 장담한다.)
걸핏하면 내 아이들은 나를 옛날 사람이라고 한다.
도대체 내가 어딜 봐서?
무슨 근거로?
"너희 정말 웃긴다. 엄마가 무슨 조선 시대 사람이라고 그래? 엄마 그렇게 옛날 사람 아니야. 88 서울 올림픽 때는 엄마도 어렸었다고. 지금의 너희보다 훨!씬! 어렸었다고. 엄마는 뭐 처음부터 이렇게 나이 먹었는 줄 알아? 엄마도 너희만 할 때가 있었다고!"
갑자기 타임머신도 타지 않은 채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조선 사람이 된 나는 지레 제 발이 몹시도 저려서 횡설수설하고 말았다.
그리고 굳이 몇 마디 덧붙이기에 이르렀다.
"요놈들아. 너희는 나이 안 먹을 줄 알아?! 너희는 엄마 나이 돼 봤어? 엄만 너희 나이도 돼 보고 지금 엄마 나이도 다 돼 봤어!"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마지막 저 몇 마디는 차라리 아니함 만못하다고, 그냥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괜한 소리만 했다고 뒤늦게 자책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