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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Oct 14. 2024
한밤중에, 남편의 유혹
보다 치명적인...
2024. 10 13.
< 사진 임자 = 글임자 >
"이거 우리가 안 먹어 본 거라서 한 번 사 봤어."
"매울 것 같은데 먹을 수나 있겠어?"
"애들은 먹기 힘들 수 있는데 우린 먹을 수 있겠지?"
"보기만 해도 맵다."
나도 종종 마트에서 보던 라면이었다.
이름부터가 매울 것 같아서 거들떠도 안 보던 것이었는데 그 양반이 기어코 그것을
집에
들였다.
그것도 한밤중에.
"오늘은 가서 아무것도 안 살 거야. 그냥 운동삼아 가는 거야."
라고 그 양반이 내게 말했을 때 나는 그 말을 절대 믿지 않았다.
그 양반이 자고로 양손 가득 쇼핑을 하고 온 날은 있었어도 빈 손으로 집에 돌아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10년 넘게 나와 같이 사는 동안에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아니, 절대 그렇게 못할걸. 내가 장담한다."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정말 자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양반이 빈 손으로 마트를 빠져나올 수 있다고?
하늘이 두쪽 나는 일은 생길지도 모르지만 우리 집에서 쇼핑을 제일 좋아하시는 분이(내가 보기엔 그렇다) 그냥 집에 돌아올 리는 만무했다.
하지만 전혀 예상 밖의 물건을 사 오기는 했다.
금요일 밤 10시가 다 되어 가는데 그걸 내게 선보이면 어쩌자는 거지?
"맛있어 보이지? 매울 것 같긴 한데..."
"많이 맵겠는데? 먹어봐야 알겠는데. 그래야 매운지 어쩐지 알지. 맛있어 보이긴 한다."
"알았어. 두 개 끓일까?"
"맛있어 보인다고 했지, 끓이라고는 안 했어."
"그게 그 말이지."
"하나만 끓여보지.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너무 매워서 못 먹고 버리면 어떡해?"
"못 먹으면 어쩔 수 없지. 버리면 되지."
"그러니까 우선은 하나만 끓이는 게 낫겠다고."
"하나 끓여서 누구 코에 붙여?"
그 양반은 내 제안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행동을 개시했다.
나는 잽싸게 라면이 두 봉지 들어갈 정도의 냄비를 찾아줬다.
얻어먹는 주제에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예전에는 라면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고 일부러 찾아 먹는 편도 아니었는데 결혼을 하고부터 그 양반이 라면을 자주 먹으니 옆에서 한 젓가락씩 얻어먹다 보니 지금은 대놓고 주문하기도 한다.
문제는, 하필이면 꼭 잠을 잘 시간에, 밤 10시에서 12시 사이에 그 양반은 그 대단한 일을 도모하는 것이다.
잠자리에 들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 했다가도 라면 봉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게 된다.
"밤에 이런 거 먹고 자면 안 좋아. 먹을 거였으면 진작에 먹었어야지."
이렇게 잔소리를 하면서 은근슬쩍 젓가락 한 쌍을 내 앞에 추가로 놓는다.
"근데 왜 당신은 안 자고 거기 앉아 있어?"
다 알면서 그러신다.
"이렇게 몸에도 안 좋을 걸 혼자 다 먹게 할 순 없지. 내가 좀 먹어 줘야 덜 먹을 거 아냐."
"그럼 처음부터 두 개 끓이라고 하지."
두 개는 너무 많잖아, 그래도 한밤중인데...
그냥 나는 맛만 보는 것뿐이야.
꼭, 그런다.
하필 한밤 중에 저런다.
혼자만 먹으면 되는데 꼭 내 앞에서 라면 물을 올리신다.
그 유혹에 안 넘어가고는 못 배긴다.
"안 먹을 것처럼 하더니 꼭 나보다 더 먹더라."
라는 말을 나는 기어이 듣고야 만다.
"안 먹는다고는 안 했어. 매워 보인다고는 했지만."
대놓고 그렇게 유혹을 하는데 성의를 봐서라도 모른 척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다 그렇게 넘어가고 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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