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를 다듬고 수분을 날린다는 명목으로 그냥 뒀더니 뿌리 쪽 하얀 부분이 살짝 상한 것처럼 노랗게 변해버렸다. 그럴 때 나는 그런 부분은 잘라서 버리고 깨끗한 부분만 요리에 사용한다. 상했을지도 모르는 재료를 굳이 음식에 넣어 먹을 필요도 없고, 잘못 넣으면 음식 맛도 상해 버리니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말이다.
그런데 착실한 그 양반은 그것까지 알뜰살뜰하게 멀쩡한 부분과 같이 골고루 섞어 놨던 것이다.
"여기는 잘라서 버렸어야지. 색이 좀 다르잖아."
"끝부분도 다 쓸 거라며? 그대로 두라며?"
"내가 말한 끝부분은 줄기 끝이지 밑동 부분이 아니지."
"난 그 끝이 이 끝인 줄 알았지."
"여긴 밑동 부분이지, 뿌리 부분."
"난 몰랐지."
왜 댁만 몰랐을까?
"그리고 딱 봐도 여긴 색이 좀 다르잖아. 잘라서 버려야겠다는 생각 안 들었어?"
이런 것까지 내가 다 일일이 가르쳐 줘야 하는 건가?
그냥 보면 모르시나?
앓느니 죽지.
그 양반이 골고루 섞어 놓은 대파 조각들 속에서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것만 따로 골라내며 난 또 생각했다.
차라리 그냥 내가 할 걸 그랬어. 내가 이렇게 골라내고 있는 시간이면 진작에 다 끝냈을 텐데.
"그리고 왜 파란 부분은 어슷썰기 안 하고 이렇게 대충 크게 썰어 놨어? 내가 어슷썰기 해 달라고 했잖아?"
"여긴 그렇게 하면 나중에 익었을 때 너무 작아지니까 그랬지."
"썰기 귀찮아서 그런 거 아니시고?"
내가 보기엔, 아마도 확신컨대 귀찮아서였을 거라고 강하게 의심이 든다.
내가 어디 이 양반을 한 두 번 겪어 봤나?
"아, 너무 맵다. 매워서 못 썰겠어."
"별로 안 매운 것 같은데? 진짜 매운 파를 안 다듬어 보셨구만."
"더는 못 하겠어. 이젠 당신이 해."
나는 더 매운 쪽파 한 단도 혼자 눈물 흘려 가며 다 다듬는 게 예사인데 그 양반은 한 줌도 안 되는 대파 몇 개 썰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급기야 작업을 중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