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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Oct 20. 2024

'요알못'의 변명

그 변명이 의심스러워서

2024. 10. 18.

<사진 임자 = 글임자 >


"바빠? 안 바쁘면 대파 좀 썰어 줄래?"

"어떻게 썰면 돼?"

"어슷썰기 하면 돼."

"알았어."


알았다고 대답은 하긴 했지만 결과물을 보아하니 알았던 것 같지는 않다.

일일이 말해줘도 말과 행동은 다른 성인 남성이 우리 집에 한 분 계신다.


"끝부분은 어떻게 해?"

"내가 다 다듬어 놨으니까 그냥 끝까지 다 잘라도 돼. 버릴 거 없어."

"알았어."

알았다고 하길래, 정말 알아들은 줄 알았다.

토요일 아침부터 동태탕을 기어이 먹겠다고 나는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해장국 먹어야지?"

"술도 안 마셨는데 무슨 해장국이야?"

"안 마셨어도 마셨어."

"알았어."

동태탕을 끓이기 위한 재료를 모두 냄비에 넣고 마지막에 대파만 넣으면 될 때였다.

그 양반이 썰어 놓은 대파를 한 줌 집어 들다가 한숨이 나오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여기 밑동 부분은 잘라서 버려야지 이것까지 다 같이 섞어 놓으면 어떡해?"

대파를 다듬고 수분을 날린다는 명목으로 그냥 뒀더니 뿌리 쪽 하얀 부분이 살짝 상한 것처럼 노랗게 변해버렸다. 그럴 때 나는 그런 부분은 잘라서 버리고 깨끗한 부분만 요리에 사용한다. 상했을지도 모르는 재료를 굳이 음식에 넣어 먹을 필요도 없고, 잘못 넣으면 음식 맛도 상해 버리니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말이다.

그런데 착실한 그 양반은 그것까지 알뜰살뜰하게 멀쩡한 부분과 같이 골고루 섞어 놨던 것이다.

"여기는 잘라서 버렸어야지. 색이 좀 다르잖아."

"끝부분도 다 쓸 거라며? 그대로 두라며?"

"내가 말한 끝부분은 줄기 끝이지 밑동 부분이 아니지."

"난 그 끝이 이 끝인 줄 알았지."

"여긴 밑동 부분이지, 뿌리 부분."

"난 몰랐지."

왜 댁만 몰랐을까?

"그리고 딱 봐도 여긴 색이 좀 다르잖아. 잘라서 버려야겠다는 생각 안 들었어?"

이런 것까지 내가 다 일일이 가르쳐 줘야 하는 건가?

그냥 보면 모르시나?

앓느니 죽지.

그 양반이 골고루 섞어 놓은 대파 조각들 속에서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것만 따로 골라내며 난 또 생각했다.

차라리 그냥 내가 할 걸 그랬어. 내가 이렇게 골라내고 있는 시간이면 진작에 다 끝냈을 텐데.

"그리고 왜 파란 부분은 어슷썰기 안 하고 이렇게 대충 크게 썰어 놨어? 내가 어슷썰기 해 달라고 했잖아?"

"여긴 그렇게 하면 나중에 익었을 때 너무 작아지니까 그랬지."

"썰기 귀찮아서 그런 거 아니시고?"

내가 보기엔, 아마도 확신컨대 귀찮아서였을 거라고 강하게 의심이 든다.

내가 어디 이 양반을 한 두 번 겪어 봤나?

"아, 너무 맵다. 매워서 못 썰겠어."

"별로 안 매운 것 같은데? 진짜 매운 파를 안 다듬어 보셨구만."

"더는 못 하겠어. 이젠 당신이 해."

나는 더 매운 쪽파 한 단도 혼자 눈물 흘려 가며 다 다듬는 게 예사인데 그 양반은 한 줌도 안 되는 대파 몇 개 썰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급기야 작업을 중단했다.

내가 앓느니 죽지, 죽어.

"그럼 쉬었다가 해. 내가 환기할 테니까."

결자해지, 시작한 사람이 끝을 맺어야겠지.


"다 썰었는데 이제 어떡해?"

"어떻게 해야겠어? 담아야겠지?"

"근데 여기 하나에 다 안들어가겠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겠어? 생각을 해 봐. 다른 반찬통을 몇 개 더 가져오면 되지."


이 양반, 직장에서 일은 잘 하고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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