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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Oct 09. 2024

도대체 너는 커서 뭐가 되려고

내 눈엔 페퍼민트로만 보여

2024. 10. 4.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여기 흙 속에 뭐가 났는데?"

딸이 급히 나를 불렀다.

딸 말마따나 정체는 모르겠지만 정말 뭔가 있긴 있었다.

"이거 혹시 페퍼민트 아닐까?"

일단 김칫국부터 들이켰다.

이번엔 정말 페퍼민트 구경을 할 수도 있겠군, 잘~ 하면.


"이상하다. 왜 바질이랑 레몬밤은 잘 크는데 페퍼민트는 아무 소식이 없지?"

"엄마가 잘 못 사 온 거 아니야? 그게 정말 페퍼민트 맞아?"

"분명히 봉투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니까. 그래도 엄마가 한글은 잘 읽는다고!"

참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리 발아율이 낮다고 해도 그렇게 싹이 안 트기도 힘들어 보였다.

생긴 것도 먼지만큼이나 작더니 정말 싹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바질의 성장이 가장 눈에 띄게 좋았고 레몬밤도(레몬밤이라고 믿고 있는데 아직도 확신은 없다) 그런대로 잘 크고 있는데 페퍼민트는 얼굴도 보기 힘들다.


그런데 9월 초에 화분 여기저기에서 풀 같기도 하고, 하지만 정신 건강을 위해 페퍼민트라고 굳게 믿고 살뜰히 보살피던 싹이 여럿 나긴 했었다.

옆에 돋은 바질과 레몬밤과는 떡잎부터 확연히 달라서 은근히 기대도 됐었다.

하지만 추석 연휴에 며칠간 집을 비우는 바람에 막 싹튼 정체 모를 식물들이 다 사라져 버렸다.

올해는 페퍼민트 구경 다 했다고 단념할 때쯤 불쑥 싹이 하나씩 올라왔다.

마치 허브에 매달려 애면글면 하는 인간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나도 (엉뚱한 데에) 오기가 다 생겼다.

하나라도 살려야지. 떡잎이라도 봐야지.

2024. 10. 4.


어느 날 바질이 크고 있는 컵에서 새 생명이 싹을 틔웠다.

어쩌다가 바질 씨앗이 아닌 다른 씨앗이 거기 들어간 건지 너무 느닷없이 말이다.

투명해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뭐가 돋아났어도 모르고 살 뻔했다.

이건 나보고 잘 거두어 주라는 하늘의 계시가 분명해.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도 그 깨만 한 것을 내가 발견해 냈으니 말이다.

사실 속으로는 아마 저건 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미 그 운명은 정해진지 오래겠지만 인간적으로 하나 정도는 다른 허브로 자라나야 했다.

그래서 이참에 발견한 그것이 (가능성은 아주 낮지만) 페퍼민트로 자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에 나는 중대한 결심을 했다.

저렇게 흙 속에 파묻혀 있다가는 숨도 못 쉬어서 죽게 생겼다.

하루빨리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해 줘야지.

팠다.

꺼냈다.

심었다.

꺼내놓고 보니 더 풀 같기도 하고, 허브 같기도 했다.

코에 걸든, 귀에 걸든 내가 걸기 나름이었다.

유전자 검사를 해 볼 수도 없고 이것 참.


화분에 있는 저 흙을 친정 집에서 가져왔는데 혹시 풀 씨가 떨어져 있다가 돋은 것인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허브로 신분 세탁을 했다. 풀이라고 해서 나쁠 건 또 없으니까. 자세히 보면 예쁜 풀들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만에 하나 정말 내가 풀을 키운 거라고 하더라도 실망하지는 말아야지.

그나저나,

나중에 뭐가 되려고,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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