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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Oct 21. 2024

그래, 수탉만 자유로운 건 불공평했어

이젠 공평해진건가

2024. 4. 24.

< 사진 임자 = 글임자 >


"참, 요새는 이런 것으로 다 한다고?"

"남들은 다 이렇게 한다고 합디다."


물론, 남들이 다 그렇게 한다는 말은 내 말이다.

하도 닭이 알을 품지 않는다고 애면글면 하시길래 내가 중대결정을 내렸다.


올봄에 처음으로 아빠는 병아리 부화기를 사셨다.

그동안 내가 여러 차례 그것을 제안했었다.

암탉이 알을 품으려다 말고, 잘 품고 있다가도 한참을 나가서 안 들어오니 고스란히 썩어 버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오래전에는 달걀을 품는 암탉이 아주 많았는데 닭들의 세계에서도 세태가 변한 것인지 요즘 닭들은 알 품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닭이 품어서 부화를 해야제 기계로 하믄 못써."

라고 완강히 거부하시더니 동네 분 중에 부화기로 병아리를 부화시켰더니 세상 편하고 좋더라는 속보를 들으시고는 마음이 바로 바뀌셨다.(고 확신하는 바이다)

"하나 주문 해 봐라."

하시면서 내게 권한 위임을 하셨다. 하셨지만 내가 추천하는(정확히는 상품평이 좋은 순서대로 계속 추천을 해드려도) 그것들을 번번이 딱지를 놓으셨다. 그러면 직접 검색해 보시면 될 텐데 또 그건 절대 하지 않으신다. 

몇 번의 퇴짜 끝에 하나의 부화기를 선택했고 그 신문물이 친정에 도착했고 친정 집에서 기르던 암탉들이 낳은 달걀을 부화기에 넣었고 3주 후 병아리들은 태어났다. 15개의 달걀을 넣었던 것 같은데 고작 7 마리만 부화에 성공했다.


"이것이 작동이 되는 것이 맞냐?"

"어째 시원찮다."

"속은 거 아니냐?"

"이런 것이 어떻게 병아리를 부화시킨다고 그러냐?"

"이러다가 병아리 구경 한 마리나 하겄냐?"

"곧 부화 날짜가 다 돼가구만 어째 아무 소식이 없다."

단지, 그 부화기를 중간에서 알선하고 최종 주문했다는 이유로 나는 아빠의 저런 숱한 의심 가득한 미덥지 못한 마음이 한껏 묻어나는 잔소리에 버금가는 말씀을 들어야만 했다. 최소한 3주 동안이나 말이다.

아빠는 딸에게 속은 것인지, 아니면 그 부화기 판매업자에게 속은 것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려는 사람처럼 달력에 커다랗게 부화예정일을 표시하고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시는 눈치였다.

부화 예정일이 다가오자 내가 더 초조해지고 말았다.

"아빠. 무슨 소식 있수?"

"아빠, 병아리 나올 것 같수?"

"아빠 이제 며칠 안 남았는데 상황이 어떻수?"

"아빠, 곧 부화할 거 같수?"

"아빠, 혹시 부화 안되더라도 그런가 보다 하셔야 돼. 처음이라 잘 안될 수도 있어."

급기야는 비겁한 변명으로 미리 선수 치며 실패를 회피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만에 하나라도 한 마리도 부화하지 않으면 그 비난의 화살을 나는 결코 피하지 못하리니.

내가 주문하긴 했지만 나도 자신은 없었다.

어떻게 저런 물건으로 병아리를 부화시킨다는 건지 말이다.

하지만 후기는 정말, 사진까지 첨부한 후기며 동영상을 덤으로 추가해 주는 센스를 보여주었던 그 사람들이 나를 상대로(도대체 내가 뭐라고?)다 사기를 치는 건 아닌가 싶게 친정의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져 보이기까지 할 때쯤이면 그만 나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일단 3주 후를 기다려보기는 하겠다마는 어째 점점 자신이 없었다.

저 플라스틱 쪼가리 몇 개 조합해 놓은 걸로 병아리는 무슨 병아리?


병아리는 보통 3주면 부화를 한다.

부화 예정일이 가까워지자 나는 매일 아빠에게 전화해서 진행 상황을 보고받았다.

생각해 보니 아빠의 안부가 궁금해서 매일 전화드린 적도 없었는데 말이다.

아빠만큼이나 나도 어지간히 기다렸던 것이다.

다행히 부화기에 들어간 지 3주 정도 지나자 그 병아리란 놈들이 하나둘씩 껍데기를 깨고 나오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에 한 놈 나왔다."

라는 말씀을 시작으로 최종적으로 모두 7마리의 병아리는 그렇게 우리 친정에서 처음으로 '기계로 부화한 1기'가 되었다.


더 이상 암탉은 하루종일 달걀을 품고 있지 않아도 되었다.

잘 품고 있다가 들락날락하다가 결국엔 품는 일을 포기해 버리는 중도 이탈자가 발생하더라도 더 이상 우리는 속상해할 필요도 없었다, 이젠.

알을 품느라 한껏 예민해진 암탉 옆을 최대한 눈치 보며 다른 달걀을 수거하는 수고로움 같은 것도 더는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왠지, 

기분은 뭐랄까?

묘했다고나 할까?

어미닭이 품어주지 않아도 기계로 맞춰놓은 온도와 습도만 있으면 3주 만에 달걀이 병아리로 탄생하는 그 신비로움이 놀랍다가도 뒷맛 씁쓸해지는 것처럼 뭔가 허전했다.

그래도 알 낳는 것도 암탉, 앞 품는 것도 암탉, 이건 좀 뭔가 불공평해 보이긴 했다.

수탉은 암탉이 알을 품는 3주 내내 마음대로 돌아다니는데, 그렇다고 해서 옆에서 한 몸처럼 매일 보초를 서 주는 것도 아니고 교대를 해 주는 것도 아닌데 암탉은 최소한 3주 동안 거의 꼼짝 않고 알을 품어야만 한다.

그런 면에서 이쯤 되면 최소한 부화기는 암탉에게 자유를 보장해 주는 존재가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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