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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17. 2024

병아리, 너희는 모르지

병아리만 보면

2024. 10. 20.

< 사진 임자  = 글임자 >


"이렇게 큰 믹서기가 왜 집에 두 대나 있어?"

"하나는 우리 쓰고 하나는 병아리가 쓰제."

"병아리가 뭐 하는데 믹서기를 써?"

"아빠가 날마다 사료 갈아서 주신단다. 커서 못 먹는다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들깻가루도 갈고 콩물도 만들고 야채며 과일 할 것 없이 이것저것 요긴하게 다 갈아버리던 그것이 요즘엔 병아리를 위해 갈고 있단다.

그 옆에서는 못 보던 믹서기가 전에 쓰던 것만큼이나 커다란 믹서기가 얌전히 놓여 있었다.

그리고 거실 한쪽에서는 쉴 새 없이 '삐약삐약' 소리를 내며 왕성하게 활동 중이신 갓 부화한 병아리 8마리가 있었다.

올해 세 번째로 부화한 병아리들이다.

나는 그 작은 생명체를 '3기 병아리'라 부른다.

한 주먹도 안 되는 동글동글한 것들이 상자 안에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빠가 병아리 효자네. 사료도 다 갈아서 주고."

신생아가 태어나면 출산 준비물을 챙기듯 병아리가 부화했다는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고 사료를 샀다.

가루와 약간의 건더기(?) 내지는 알맹이 같은 것이 섞여 있는 것이었는데 가만 보니 병아리들이 아주 작은 알갱이는 좀 먹는 것 같은데 좀 더 큰 덩어리는 못 먹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빠가 믹서기씩이나 동원해서 병아리 먹이를 만들고 계셨던 거다.

만약에 병아리가 우유를 먹을 수 있는 동물이었다면 아빠는 젖병이라도 구입하셨을 거다.

옛날에 우리 집에서는 소를 키웠었다.

그때도 막 태어난 송아지가 젖을 빨 힘이 없어서 어미젖도 못 먹고 있으면 어디선가 주사기를 구하고 우유를 구해서 먹이곤 했던 기억이 있다.

가만 보면 아빠는 동물들에게 지극정성이시다.

추석이 막 지나고 부화한 '2기 병아리'들은 벌써 거실을 벗어나 바깥에서 적응 중이었다. 아직 큰 닭들과 함께 둘 수 없어 조금 더 바깥생활에 적응시킨 후 합칠 생각이시다.

친정에 갈 때마다 다 큰 암탉들이 오늘은 댤걀을 몇 개나 낳았는지, 2기 병아리들은 적응을 잘하고 있는지, 3기 병아리가 제 몸은 건사하게 되었는지 이런 것들을 살피느라 나만 쁘다.

그 옛날 과학 시간에 다 배운 것이겠지만 그 작은 달걀 안에서 어떻게 먹지도 않고 그냥 품어주기만 하는데 3주 후에 병아리로 짠~하고 부화하는지 볼 때마다 신기하기만 하다.

더욱 신기한 것은 어떻게 암탉은 매일 달걀을 하나씩 꼬박꼬박 착실하게 낳는가 하는 것이다.

사람은 아기를 낳을 때 극심한 산고를 겪는데 암탉은 달걀을 낳을 때마다 아프진 않을까?

그런 생각까지 다 해 봤다.

닭에게 무통 주사가 웬 말이며 가족계획이 웬 말이냐.

출산휴가는 무엇이고 육아 휴직이 다 무어란 말이냐, 닭에게.

옆에서 보면 (남의 일이라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르겠으나) 그냥 퐁 하고 쉽게 낳는 것처럼도 보였으나 매일 그 일을 해내는 닭들이 대견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는 것이다.

비록 이번 병아리들도 암탉이 품어서 부화한 것은 아니지만 기계의 힘을 빌려 태어난 것들이지만 보고 있으면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먹고 자고, 싸고 놀고, 또 먹고 자고 싸고 놀고, 너희가 무슨 걱정이 있겠냐 싶으면서도 언젠가는 조용히 사라지게 될 목숨이란 걸 뻔히 알기 때문에 안쓰러운 마음은 어쩔 도리가 없다. 사람이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라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세상 이치가 다 그렇고 그런 거 아니겠냐며 어느새 합리화하게 된다. 인간이 이렇다.

그래도 기르는 동안에는 섭섭하지 않게, 입힐 필요는 없으니 그건 생략하고라도 먹이고 재우는 일만큼은 신경 쓰고 있다. 최소한 뉘 집 고양이인지도 모르는 낯 모르는 고양이들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줄 의무는 주인에게 있으므로.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얼른 잘 먹고 튼튼히 잘 자라서 바깥구경을 해야 할 텐데.

쌀쌀해질 거라는 일기예보에 친정에 있는 병아리 생각부터 나는 건 집에서 기르는 동물에 대한 최소한의 인지상정이 아닐까.

보고만 있어도 귀여워서 자꾸 만져보고 싶고 우리 집으로 데려와 며칠 키워보고 싶어도 자꾸 손 타면 아프기라도 할까 봐, 스트레스받을까 봐 과감히 포기하고 그저 눈으로만 쓰다듬고 오는 이 인간의 마음을 병아리들은 알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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