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트인 들판 멀리서부터 딸 혼자만 쓸쓸히 걸어오고 있었다는 것을 먼발치에서 이미 보고 계셨으면서 굳이 물어보셨다.
나만 괜히 멋쩍어졌다.
양쪽에 아들 하나, 딸 하나 손에 손 잡고 갔어야 했는데, 아니 같이 갔으면 좋았을 것을...
"이번 주말에 애기들이랑 같이 와서 땅콩 캐라. 땅콩이 많이 달렸더라."
며칠 전 엄마가 또 나의 주말 스케줄을 확정 지어 주셨다.
"알았어. 애들한테 말해 볼게."
하지만 더 이상 외손주들은 그런 종류의 체험학습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미 할 만큼 다 해 봤다, 기원전 5,000년 경에.
캐 볼만큼 캐 봤고 따 볼 만큼 따 봤고, 구경할 만큼 구경도 했으며 먹어 볼 만큼 먹어 봤다.
그래서 내가 아무리 같이 가자고 유혹을 해도 내 잔꾀에는 잘 안 넘어온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얼마나 자신들을 기다리는지 잘 알면서 한 번씩 가자고 하면 얼마나 튕기는지 모른다.
어릴 때는 그렇게 가자고 졸라대더니, 이젠 제발 같이 가 달라고 애원하고 붙들어도 야멸치게 거절하기 일쑤다. 이런 걸 고급전문 용어로 '배가 불렀다'라고 한다지 아마?
한 밤만 자고 가자고, 오늘 갔는데 내일 또 가자고 외가에 도대체 무슨 보물단지라도 숨겨 둔 아이들마냥 정말 귀찮을 정도로 가자고 노래 부르던 때가 정말 얼마 전 같았는데 말이다.
지금 아이들이 같이 땅콩 밭에 간다고 해도 썩 도움이 되지는 않긴 할 것이다.
5분 정도나 버틸까?
어릴 때는 땅콩이 주렁주렁 달린 그 모습만 보고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더니, 이따금씩 정체 모를 것을 발견하고 땅콩도 아닌 것이 금은보화도 아닌 것이 어린것들 눈에만 뭔가 대단하게 보여서 그것이 '만에 하나' 황금 덩어리는 아니냐고 '우리 이제 부자가 된 게 아니냐고 호들갑을 떨며 기뻐하던 때가 분명히 있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다 지난 일이다.
땅콩을 캐다가 굼벵이를 보고 정말 굼벵이에게 구르는 재주가 있는지 지켜보자고 하기도 하고(아무리 기다려도 그러나 굼벵이는 굴러주시지 않았다, 다만 굼벵이가 굼뜬 것만은 확실하게 똑똑히 목격했을 뿐이다) 남매가 서로 누가 더 많이 땅콩을 따는지, 땅콩을 가득 담은 그릇들 중에서 서로 많은 것은 자기가 들겠다며 누가 더 힘이 센지 대결하자고 호기롭게 도전하던 때가 분명히 있었는데 말이다.
어린것들이 빠진 땅콩 밭에는 침묵만 흘렀다.
부모님과 나는 별말 없이 땅콩을 캐고 땄다.
갑자기 침묵을 깨고 아빠가 한마디 하셨다.
"왜 안 왔냐?"
아니, 이미 끝난 일 아니었나?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리셨나 보다.
"일어나지도 않았다네."
그건 사실이었다.
딸은 내가 집을 나설 때까지도 방에서 자고 있었다.
아들은 나보다 더 일찍 일어났지만 나와 동행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내게 전달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