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에 가족들과 같이 살 때도 혼자 자취를 할 때도 뭐든 먹고 배가 부르면 그게 나는 밥이었다.
끼니때가 거의 가까워져서 먹은 간식도 그걸로 배가 찼으면 그냥 그게 밥이 되는 거였다.
끼니마다 반드시 밥을 먹어야 하는 건 아니었으므로, 무조건 밥으로 마무리를 해야 하는 건 아니었으므로.
그런데 그 양반은 아무리 별의별 음식을 다 먹어도 종국에는,
"밥은?"
이런 말을 하기 일쑤였던 거다.
"아까 이것저것 먹었잖아. 배 안 불러?"
라고 대꾸하는 내가,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밥도 안 주는 줄 오해하기 딱 좋게 말이다.
살아온 방식이 다르니 그런가 보다 하면서도 아무 거나 먹고 배가 부르면 그만 아닌가 싶다가도, 아니, 그렇게 많이 먹고도 밥을 더 먹을 수 있는 공간이 배 속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 밥이 다 어디로 들어가는 걸까? 그렇다고 해서 그 양반이 어마무시하게 많은 양의 음식을 먹는 것은 아니다. 그냥 마무리는 단지 밥으로 하고 싶다는 것 같았다.
어쩔 때는 밥 하는 것도 귀찮아서 대충 집에 있는 음식들로 끼니를 때우려는 불순한 의도로 내가 최대한 골고루 다 먹이고 나면 느닷없이 마직막에 한다는 소리가 항상 '밥'이었던 거다.
"그래도 나는 아무리 다른 걸 먹어도 마지막에는 밥을 먹어야 뭘 먹은 것 같더라."
라는 말을 나는 매번 들어야만 했다.
어쩔 때는 내가 밥을 차리기 싫어서 잔머리 굴리느라 밥만 빼고 오만가지 음식을 다 대령했을 때도 그 양반은 밥을 찾곤 했었다.
한국인은 밥심, 그 양반도 밥심인 건가?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공시생 시절에 (밥을) 못 먹고살아서 그런가도 싶었다.
"나 옛날에 고시원에 있을 때는 하루에 한 두 끼 정도만 먹었었어."
언젠가 그 말을 들은 것도 같다.
절대 가난한 수험생이라서가 아니라, 밥 먹을 시간도 없이 공부에만 매달려서도 아니라 내가 보기엔 순전히 나태하게까지 보이는 그의 습성 때문에.(라고 나는 확신한다)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면 아침 먹기 그렇고 해서 그냥 아점 겸해서 먹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밥도 잘 안 먹고 라면 같은 거 그런 것도 자주 먹었고."
밥 먹는 게 귀찮다니? 밥을 안 먹으면 배고파서 어떻게 공부를 한다고?
"밥 하기도 귀찮잖아. 언제 밥 하고 있어? 그냥 대충 먹고 나가서 식당 가서 사 먹기도 하고 그랬지."
눈물 없이도 들을 수 있는 공시생 시절의 이야기다.
"하여튼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태한 건 알아줘야겠구만. 밥 하는 게 뭐가 귀찮아서 밥을 굶어? 새 밥 지어서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난 그땐 더 많이 먹고살았는데."
가끔 우리는 공시생 시절에 누가 더 처량하게 살았는가 내지는 누가 더 악착같이 살았는가에 대해 내기라도 하는 사람들처럼 유치하게 대결하고는 한다. 이제 와서 안 겪어 본 사람은 절대 이해 못 할 그 시절을 곱씹으면서 말이다. 그러다 보면 난데없이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는데도 서로가 애처로워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 짓은 다시는 못할 짓'이라며 매번 진저리를 치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 일도 잊지 않는다.
나는 대식가까지는 아니더라도 밥을 굶고는 못 산다. 배고프면 먹어야 한다.
귀찮음보다는 배고픔이 먼저다. 그래서 나는 공시생 시절에도 잘 먹고 잘 살았었다. 절대 밥을 굶는 행위 따위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었다. 오히려 마구 먹어서(그때는 시험 스트레스 때문었다고 무조건 우긴다) 평소보다 몸무게가 7kg이나 쪘다. 공부하려면 일단 먹어야지, 먹어야 기운도 나고 공부도 하는 거지.
"저녁 먹어야지?"
"난 배 안고픈데? 입맛도 없어."
오늘도 그 양반은 입맛이 없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 말에 속아서는 아니된다.)
순식간에 오랜만에 끓인 김치 콩나물국을 한 그릇 야무지게 말아 드시더니 듣고도 믿기 힘든 말을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