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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Oct 27. 2024

잘 시간에 또 그런다

그러니까 또 복사하지

2024. 10. 26.

<사진 임자 = 글임자 >


"밥을 먹은 것도 같고 안 먹은 것도 같고 그러네."

"밥을 먹은 것 같은 게 아니라 먹었어."


또, 이제 곧 자야 할 시간인데 밤 10시가 다 되어 가는데 또 그런다.


"밥 먹었어?"

"몇 번을 물어봐? 난 진작 다 먹었다니까."

"왜 난 밥을 안 먹은 것 같지?"

"밥만 안 먹었지 다른 건 다 먹었잖아. 피자 먹고 배도 먹고 애들이랑 치킨도 먹고 먹을 건 다 먹었구만. 그게 저녁밥이지."

나만 집에 없어서 나만 빼고 나머지 세 멤버가 패스트푸드로 살짝 이른 저녁 먹었다고 들었다.

"이제 자야 하는데 뭘 또 먹으려고 그래? 밥이랑 빵도 있고 유부초밥도 만들어 놨잖아. 토마토도 있고 감도 깎아 놨고 고구마도 쪄 놨잖아. 배고프면 아무 거나 그냥 다 먹어. 뭐가 문제야?"

"문제없어."

그러니까 아무거나 그냥 잡수라고.

설마 나보고 한밤 중에 밥을 차려내라는 건 아니겠지?

밥을 직접 해서 먹으라는 것도 아니고, 밥이 안 당기면 다른 거라도, 구황작물이나 과일이나 정제된 탄수화물이나 아무 거나 그냥 먹고 싶은 걸로 골라서 드시라니까 자꾸 나보고 밥 먹었냐고 물었다.

나는 안 먹었어도 먹었다.

"참, 찌개 있지?"

기억력도 참 좋다, 이럴 때는.

"냉장고에 넣어 봤는데, 방금 넣어서 차갑진 않을 거야.(=알아서 꺼내서 잡솨) 투명한 유리그릇에 있어."

하지만 난 또 다 큰 남의 아들이 못 미더워 친히 냉장고까지 동행해 주었다. 그 양반이 내가 말한 그 반찬통도 못 찾을까 봐서. 마침내 그 양반이 바로 그 찌개가 든 반찬통을 제대로 찾아내는 모습을 목격하고 나서야 나는 안도할 수 있었다.

"그거 어디 있어? 안 보이는데?"

이런 식으로 가만히 있는 나를 일으켜 세우기 일쑤인 분이 바로 그 양반이시다. 왜 냉장고에 버젓이 들어 있는 것도 못 찾을까?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먹을 거면 진작에 먹었어야지. 이렇게 늦었는데 음식을 먹으면 어떡해?"

라고 잔소리 몇 마디 하는 것도 나는 잊지 않았다, 물론.

걸핏하면 저녁을 다 먹고도 출출하다느니, 뭔가 허전하다느니, 배가 덜 찬 것 같다느니, 잠잘 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이면 이렇게 말하는 어린 멤버가 우리 집에 있다.

우리 집 최연소자인 그 멤버도 걸핏하면 자야 할 시간이 닥치기만 기다렸다는 듯이 꼭, 하필이면 그때 먹고 싶다고 하신다.

가만, 그러고 보니 다 보고 배운 거였구나.

생각해 보니 그 양반이 하는 대로, 그 양반이 활동을 개시하는 그 시각에, 그 양반의 틀에 박힌 레퍼토리로 딱 그렇게 하고 있다.

이렇게 은연중에 하는 교육의 힘은 무섭다.

물론 누가 교육한 적은 없지만 말이다.


자식은 부모가 하는 대로 한다고 했겠다?

자식은 부모를 보고 배운다더니 옛말 틀린 거 하나도 없다.

그러니, 최소한 나처럼 아이들이 모두 잠든 후에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하는 성의라도 보이는 시늉을 해 주십사 하고 언제 한번 토킹 어바웃 해봐야겠다. 물론 한밤 중에 라면이라도 한 그릇 놓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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