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Nov 13. 2024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하라고 하신 대로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협조가 안 돼요

2024. 11. 9.

<사진 임자 = 글임자 >


"여기는 서명 또는 인이야. 사인하지 말고."

"하여튼 당신은 답답하게 한다니까."

"선생님이 그렇게 직접 적어줬다니까. 사인하지 말라고."

"당신 같은 사람 보면 정말 누구랑 똑같아."


누구랑 똑같든지 어쩌든지 발가락이 닮았든 안 닮았든 나는 그냥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만 작성해서 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종이 한 장 때문에 또 나는 (그 양반입장에서만) 세상 제일 답답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정말 답답한 건 나였다, 정작.


"아무렇게나 막 쓰지 마. 선생님이 예시 보내 줬다니까."

거침없이 뭔가를 써 내려갈 기세로 달려드는 그 양반을 제지하며 나는 다시 당부를 했다.

했으나, 역시나 내 말 같은 건 가볍게 흘려듣는 사람이 그 양반이시다.

"그래가지고 옛날에 어떻게 일했어? 일할 때도 그랬겠지? 답답하게 했겠지?"

남이 답답하게 했든 말든 지금에 와서 그게 본인과 무슨 상관이라고 이렇게 아무 말 대잔치람?

내 말은, 하라는 대로 하자 내지는 최소한 하는 시늉은 하자, 이거다.

나라고 그 양반 하는 일이 일일이 간섭하며 딴지 걸고 싶겠는가? 어떻게 나올지 뻔히 아는데?

저렇게 나오리란 것을 기원전 1 억년경에 이미 눈치챘는데?

가만 보면 그 양반은 본인과 남이 스타일이 좀 다르면 일단 답답하다고 섣불리 단언하는 것 같다.

"사인하지 마, 아무튼."

"그냥 하면 돼."

"그냥 정자로 이름 쓰라고. 서명하라고, 서명!"

그러나,

나의 기대에 전혀 어긋남 없이 (내가 보기에는) 사인에 가까운 것을 성하셨다, 마침내.

'도장 또는 정자 서명(싸인 X)'

라고 분명히 선생님이 작성 예시까지 친절히 안내해 주셨단 말이다.

이걸 들이밀어도 그 양반은 막무가내였다.

"진짜 중요한 게 뭔지 모른다니까. 그런 건 아무 상관없어."

아무래도 그 양반은 '상관없어 병'에 걸렸다 보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다 상관없다고 한다.

아마도 불치병임에 확실하다.

왜 자꾸 본인이 상관없다고 단언하는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선생님이 왜 굳이 저렇게 안내를 하셨을까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오는데.

아직도 서명을 하라고 하면 '서명=사인'이라고 생각하고 별로 신경 안 쓰고 마구 사인을 하는 사람이 있긴 하다.(어학사전을 검색하면 '유의어'에 '사인'이라고 나와서 더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인을 하라고 하면 도무지 이름을 알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무슨 기호나 그림 같은 것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선생님의 안내사항에 한해서'만 언급하는 것이다, 일단은.)


서명(署名)(네이버 어학사전)

자기의 이름을 써넣음. 또는 써넣은 것.

명사 본인 고유의 필체로 자신의 이름을 제삼자가 알아볼 수 있도록 씀. 또는 그런 것.


서명의 뜻이 무엇인지나 아냐고 다짜고짜 물어도 먹히지 않았다.

대개 저런 일에는 '자신의 이름을 제삼자가 알아볼 수 있도록 쓰는 것'을 의미하지 않은가.

(게다가 고맙게도 선생님도 그런 의미로 안내하셨다. '사인'은 아니라고 못 박으셨단 말이다.)


"일일이 그런 거 다 따지면 피곤해. 저래가지고 어떻게 일했을까?"

갈수록 아무 말 대잔치가 화려해지셨다.

내가 뭘 따지겠다는 건 아니었다.

담임 선생님이 저렇게 '굳이'써 주시고 안내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양반처럼 나를 답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러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그저 그 안내사항을 가급적이면 그대로 따르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안내된 기본 사항에 따르는 태도가 답답하게 보인다니 더는 대화하기가 힘들다고 느꼈다.

종종 그 양반은 저런 식일 때가 있었으므로 경험상 더 진도를 나가봤자 시간낭비였다.


그냥 최소한 따르라는 것은 따르고, 하라는 대로 하는 것, 그게 그렇게 답답하게 보이는 걸까.

그걸 따른다고 해서 인류 평화가 깨진다거나 세계 경제가 파탄 난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 양반이 나를 세상 융통성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처럼 대할 때면 나야말로 답답하다.

잘 몰라서 그러나 본데 융통성 하면 또 한 융통성 하는 사람이 나란 사람인데, 다만 때와 장소에 맞게, 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 그런 기준이 나름대로 있어서 그런 것뿐인데 말이다.

가끔 나에게 너무 원리원칙대로만 한다고 타박도 한다.

알고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은데 말이다.

한 번에 끝내고 싶었다.

결정적으로 두 번 일 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라는 대로 안 해서 반려될까 봐. 간혹 그런 경우가 있었으므로. 이런 걸 고급전문 용어로 '빠꾸 당했다'라고 한다지 아마?


그 양반은 사인과 서명 어드메쯤, 작성하긴 하셨다.

이미 그 양반의 이름을 아는 '제삼자가 알아볼 수 있는'만큼, 어중간하게 딱, 그 정도로.

아는 사람 눈에만 보이는 그 세 글자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