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Nov 11. 2024

이젠 선생님 말도 안들으려고?

중학교 입학지원서 앞에서

2024. 11. 9.


<사진 임자 = 글임자 >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라니까!"

"괜찮아. 이렇게 하면 돼."

"왜 하라는 대로 안 해?"

"상관없다니까."

"하여튼 내 말은 안 들어."


또, 확인했다.

안 맞아, 정말 나랑 안 맞아.

왜 친절히 안내하면서 이렇게 하라고 하는데 혼자 마음대로 저렇게 하려고 하는 걸까?

그래도 나는 최소한 시킨 대로는 하려고 하는데 말이다.


"엄마, 중학교 입학 지원서 가져가야 돼."

"알았어. 저녁에 출력해서 챙겨 가."

일요일 저녁, 딸은 나를 재촉했다.

"합격이 등본 출력해야 돼.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안 나오게 한 장만 출력하면 돼."

나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그 양반에게.

딸의 담임 선생님이 그렇게 하라고 신신당부(했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어쨌거나 개인 정보를 다 노출할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하셨기에 그대로 전달한 것이다.

얼마 후, 세대주와 세대원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버젓이 다 공개된 등본이 건네졌다.

"뒷자리는 필요 없다니까!"

방금 그렇게 말했는데 왜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거람?

"그거 상관없어."

상관이 있는지 없는지 왜 본인이 판단을 하려고 하는 거람?

"필요 없다니까. 뒷자리는 공개하지 말라고 했어."

같은 소리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괜찮다니까. 그냥 가져가라고 해."

도대체 뭐가 괜찮다는 건지,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선생님도 아니면서 어떻게 알지?

선생님이 예시까지 친절하게 작성해서 참고해서 하라고 보내주셨는데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저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는지 모를 일이다.

그냥 속 편하게 하라는 대로 하자는 게 잘못된 일인가?

그냥 다시 종이 한 장만 출력하면 되는 일인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거나 돈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닌데?

"맞아, 아빠. 주민등록번호는 뒷자리 안 나오게 하라고 했어, 안내문에."

보다 못한 딸도 출동했다.

"아무 상관없는데 그러네. 하여튼... 사이트도 좀 바뀐 것 같더라."

"아마 이대로 가져가면 다시 새로 가져오라고 할걸?"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거의 그럴 것 같았다.

이 양반이 정말 왜 이러는 걸까?

"그리고 요즘이 어느 때인데 개인 정보를 다 공개하고 그래 가족들 것까지? 만약에 주민등록번호 전체를 다 공개해서 가져오라고 했어도 그건 너무 개인정보 노출이 심하다고 생각할 판에?"

정말 요즘 같은 세상에, (아무리 진작에 개인정보가 다 줄줄이 다 샜다고 해도) 험한 세상에 무슨 전체 공개냔 말이다.

"아, 몰라. 그럼 당신이 해!"

이쯤에서 그 양반은 살짝 버럭 해주시는 걸 잊지 않으셨다.

"알았어. 내가 한다. 내가 해!"

아닌 게 아니라 사이트가 조금 바뀌긴 했다.

오랜만에 들어가 보니 익숙지 않긴 했다.

하지만 결국에 기본 틀은 거의 그대로 같았다.

나름 부분 공개만 한다고 체크한 것이 엉뚱하게 착각해서 성만 공개하고 이름은 비공개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럼 다시 출력하면 되지 뭐.

내가 재도전을 하고 있는데 어느새 그 양반이 곁으로 다가왔다.

"그냥 내가 할게."

진작에 그러실 것이지.

무사히 등본은 선생님의 요구대로 출력되었다.


자고로 옛말에 선생님 말씀을 잘 들으면 무사히 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고들 했다.

그러니까 최소한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좀 듣자.

내 말은 어차피 안 들으니까 선생님 말씀이라도 제발... 이 양반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