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풀기 보다 더 어려운 일
<사진 임자 = 글임자 >
"이건 점수를 줘야 돼? 말아야 돼?"
아드님의 과학 문제집을 채점하다가 갑자기 제동이 걸렸다.
점수를 준다면 도대체 얼마나 줘야 하는 거지?
저게 점수를 1점이라도 받을 수 있는 답인가?
혹시 마이너스도 가능할까?
하지만, 틀렸으면 틀렸다고 하지 차마 마이너스까지는 할 수 없었다.
"엄마,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아드님이 후다닥 달려왔다.
"이거 말이야. 문제가 원하는 답은 아닌 것 같은데..."
아무리 엄마라도, 아무리 인심 넉넉하게 쓴다고 해도 맞았다고 하기도 그렇고 매정하게 틀렸다고 하기도 애매했다. 선생님이 채점하셨다면 어떻게 처리했을까?
"우리 아들, 잘 봐봐. 여기에서는 곰팡이나 세균이 사라진다면 우리 생활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 물어봤잖아. 근데 네가 쓴 답은 좀 거시기하다. 안 그래?"
차마,
"5학년씩이나 돼 가지고 답을 이렇게까지밖에 못 쓰겠어? 문제에서 원하는 답이 과연 네가 쓴 그런 답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야. 엄마가 만든 요구르트를 먹지 못한다고 불편할 일이야? 이거랑 그거랑은 좀 연결이 안 되잖아? 더 잘 생각을 해 보고 답을 써야지. 이건 땡이야 땡. 무조건 땡!!!"
이라고는 입도 뻥긋 안 했다 물론.
"그나저나 이거 점수를 줄 수 있을까?"
제 새끼가 무척이나 함함했던 어미는 어떻게 해서라도, 1점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에 이리저리 머리란 것을 굴려 봤다. 솔직히 아무리 뜯어봐도 문제에서 원하는 그런 종류의 답은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적어도 거리가 먼 답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갑자기 아드님이 세상 침울한 얼굴로 다가와 내게 말하는 것이었다.
"엄마, 나는 엄마가 만들어 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요구르트를 못 먹게 될까 봐 그런 건데. 엄마가 만든 요구르트가 제일 맛있는데, 그걸 못 먹는다고 생각하면 너무 슬플 것 같아서 그런 건데..."
라며 연민에의 호소에 돌입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아무리 후하게 해 주려고 해도 아닌 건 아닌 거 아닌가?
게다가 엄마가 만든 요구르트를 먹지 못한다고 불편해질 것까지야 없는 노릇 아닌가?
못 먹어서 좀 아쉽다거나, 속상하다거나 차라리 그런 식으로 결말을 지었어야 옳았다고 나 혼자만 속으로 안까워했다.
나도 잘은 모르지만 일종의 호응의 불일치랄까?
그러니까 앞뒤가 안 맞다.
호응 관계가 좀 거시기하게 보였다.(물론 어디까지나 나만의 생각이다.)
과학 과목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드님의 국어는 도대체 어떤 지경(?)인지 갑자기 불길해졌다.
세상 단순한 문장을 쓰는 것조차도 이렇게 자유분방하게 만들어버리면 어쩌자는 거지?
"이걸 틀렸다고 해야 하나? 맞았다고 해야 하나?"
그 순간만큼은 죽느냐 사느냐의 햄릿보다 더 나는 내적 갈등을 겪으며 선뜻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 아예 틀린 건 아니지. 안 그래?"
그렇다고 완전 맞은 것도 아니지, 안 그래?
틀렸다고 빗금을 그으려다가 급히 수정해서 반달을 만들었다.
그나저나 6점짜리 문제인데 그럼 점수는 과연 얼마나 줘야 한단 말인가.
온전한 동그라미가 아니라 반달이니까 3점?
그 정도면 아주 후하다.(고 나만 또 혼자 합리화했다.)
그래,
넓은 의미에서,
곰팡이나 세균이 사라지면 내가 요구르트도 못 만들게 되겠지?
그러면 우리 아드님 말마따나 그걸 먹을 수도 없겠지?
그러면 결국 난 아이들에게 다른 대체 간식을 줘야 하겠지?
그러자면 또 어떤 간식을 줘야 하나 하면서 나는 심각하게 고민한 후에 선택해야만 하겠지?
그 과정은 필시 번거롭고 불편한 일이 될 수도 있겠지?
어쩜!
우리 아드님 답이 맞았네.
결국에는 '불편하겠다'.
맞네, 맞는 말이네.
우리 아들이 이렇게나 깊은 뜻을 가지고 답을 적으셨다니!
하지만 동시에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에 선생님이 채점하셨다면 아마도 국물도 없었을 것이라고.
1점이라도 주신다면 그저 감지덕지해야 할 것이라고.
이건 어디까지나 혈연에 연연한 지극히 엄마 입장에서의 주관적인 줏대 없는 채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