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엄마의 그 딸은 아닌 걸로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혹시 내 샤프 못 봤어?"
"내가 그걸 어디서 봐?"
"그럼 혹시 내 영어책은 못 봤어?"
"엄만 구경도 못 했어."
"그게 어디 갔지?"
"엄마가 미리 일주일 전부터 준비해 놓으라고 했잖아."
"아, 맞다. 가방 싸야지."
"다 싼 거 아니었어?"
"가방이 어딨더라?"
"엄마가 진작 가방 빨아놨잖아?"
"괜찮아, 괜찮아. 아직 시간 있어."
이 무슨 여유의 아이콘이란 말인가!
내일이 개학인데, 자그마치 오늘이 개학 이브인데 벌써부터 등교 준비를 하신다.
밤 10시가 진작 넘은 시각이었다.
이런 선구자를 보았나!
"이제 방학했으니까 제발 가방 좀 빨아라. 너무 지저분하더라."
"괜찮아, 엄마."
"인간적으로 반년에 한 번 정도는 빨아줘야 하는 거 아니야?"
"걱정 마. 깨끗해."
"그래도 비도 좀 맞고 했는데 젖은 김에 빨아버리는 게 어때?"
"어차피 또 비 오면 젖을 건데 뭐."
"그래도 한 번 정도는 빨 수 있잖아, 방학 기념으로?"
"이 정도면 깨끗한데?"
"인간적으로 2학기 때 새 출발 하는 기념으로 빨 수도 있는 거잖아!"
"내가 보기엔 하나도 안 더러운데?"
"엄마가 보기엔 너무 더러운데?"
"내가 쓸 건데 뭐 어때?"
"그래, 그렇긴 하지."
방학하던 날부터 날마다 가방 한 번만 빨라고 노래를 부르다가 결국 내가 빨았다.
자꾸 그것이 눈에 밟혔다.
아니 나는 어쩌면 밟아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깨끗하다니?
괜찮다니?
하나도 안 더럽다니?
내 눈에는 상당히 거슬렸다.
그 가방이 자리 잡은 그 공간까지 눈에 거슬렸다.
도대체 딸은 눈을 안 뜨고 산단 말인가?
얼핏 봐도 가방은 지저분했다.
연필자국, 정체 모를 얼룩 비슷한 것, 그리고 과연 저게 지워지기나 할까 싶을 정도로 내 심기를 건드리는 '핫 스폿'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개학을 일주일 정도 앞둔 어느 날 나는 급기야 결심했다.
네가 안 하면 내가 한다.
네가 안 나서면 내가 나선다.
결국 '더러운 꼴(?) 못 보는 놈이 가방 빤다'는 그 말, 옛말 그른 거 하나 없다.
목마른 자는 우물을 팔 일이고, 딸의 가방이 더러워 보이는 어미는 가방을 빨아낼 지어다.
어떻게든 딸로 하여금 제 가방을 빨게 하려고 했건만, 물거품이 됐다.
빨아도 빨아도 반년 가까이 목욕하지 않은 딸의 가방에서는 새카만 물이 계속 나왔다.
이런 걸 고급 전물 용어로 "땟국물'이라고 한다지 아마?
이렇게 더러운데 안 더럽다고?
어쩜 이런 가방을 보고도 아무렇지가 않을 수 있지?
물론 내 기준에서만 지저분해 보였는지도 모른다.
깨끗한 가방을 더 사랑하는 자가 약자임에 틀림없다.
아마도 딸은, 그걸 노렸는지도 모른다.
"합격아, 너 명찰 아직도 거기 있더라?"
"어, 그래?"
"인간적으로 방학식 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3주 동안 거기 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안 잃어버리고 좋잖아?"
설마 방학 내내 그대로 둘까 싶었다.
생각나면 제 방에 갖다 놓든지 하겠지 생각했다.
계속 치우라고 잔소리하면 한 번쯤은 듣는 시늉이라도 할 줄로 착각했다.
"인간적으로 이제 교복에 명찰 좀 달아 놔라. 어차피 내일 달 건데."
마지막 애원마저 딸은 깡그리 무시해 버렸다.
그리하여 그녀의 명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저러다 명찰 안 차고 학교 가기 십상이지.
인간적으로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
인간적인 나,
참으로 인간적인 나,
이렇게나 인간적인 엄마의 딸은 왜 그렇게도 엄마 말에 콧방귀도 안 뀔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