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12. 19. 갈 길 먼 겨울방학< 사진 임자 = 글임자 >
"하루 종일 엄마랑 같이 있을 생각 하니까 난 정말 좋아."
하루 종일 꼭 같이 있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가? 너희가 분유를 먹기를 해 기저귀를 차기를 해? 아니면 두 발로 직립 보행을 하지 못해? 굳이 하루 종일 한 공간에 같이 있어야 할 것 같지는 않은데 엄마 생각에는.
"엄마, 우리 방학하니까 엄마도 좋지?"
좋은 건 너희지, 엄마는 꼭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섣불리 단정 지으면 못써요.
"이젠 점심도 엄마랑 매일 같이 먹을 수 있으니까 진짜 좋다. 그치 엄마?"
글쎄, 엄만 점심 생각만 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다 지끈 거려. 하루 두 끼도 만만치 않은데 무려 세 끼라니. 게다가 간식은 또 어쩌고?
"이제야 겨울 방학을 하다니. 엄마, 난 너무너무 기다렸어."
벌써 겨울 방학이라니.
믿을 수가 없어.
여름 방학 끝나고 개학한 지 일주일도 안된 것 같은데... 매달 각종 자동이체금액 출금되는 날짜가 돌아오는 것만큼이나 이날이 안 왔으면 했는데, 천천히 더디게 왔으면 했는데 말이야.
"아무튼 방학하니까 정말 신나. 아휴 아까워, 벌써 하루가 지났어!"
너희가 방학하니까 엄마는 그러니까,,, 그게 말이지.
어쨌거나 다행이야.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서.
곧 개학하겠지?
앞으로 29일 밖에 안 남았어.
30일이 아닌 것만도 어디야?
물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좋다.
기쁨이 넘치고 더 활기를 띠고 지루할 틈이 없으며 그 말인즉, 앉아있을 틈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힘들다.
어제도 차분히 앉아 내 시간을 가진 게 밤 10시가 훌쩍 넘어서였다.
"엄마, 방학 때는 좀 늦게 일어나도 되지?"
"그럼. 그래봤자 7시 넘으면 일어날 거면서. 실컷 자. 방학 때라도 늦잠 자야지. 언제 또 늦잠 자 보겠어?(=엄마야말로 늘어지게 실컷 원 없이 잠 한 번 자보고 싶다.)"
"맞아. 주말에도 꼭 빨리 깬단 말야. 학교 갈 때는 일어나기도 싫은데 왜 쉬는 날은 그렇게 빨리 눈이 떠 질까?"
"글쎄. 더 일찍 일어나서 많이 놀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닐까?"
아닌 게 아니라 아이들과 남편이 쉬는 날이라도 늑장 부리고 일어나 늦은 시각, 아침 8시에 첫 끼니를 먹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알람 소리 없이도 휴일에도 어김없이 5시가 넘으면 눈이 번쩍 뜨이니 이게 다 웬일인가.
휴일 아침까지 새벽형 주부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아이들과 남편에게는 '쉬는 날'이라도 있지만 나는 그냥 일하는 날만 365일 같다, 고 3년 전부터 느꼈다.
그러나 남편부터도 나는 '집에 있으니까 쉰다.'라고 천부당만부당한 말을 하며 오해를 하고 '정말 놀고 있는 줄' 안다.
짧고 가늘게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고 내가 출근을 했을 때 일주일 정도 살짝, 내가 보기엔 정말 아주 경미하고도 티도 안 나고 스치듯 안녕하듯이 살림과 육아라는 것을 아주 살짝 했을 때 남편이 너무너무 힘들었다며 내게 양심고백을 해 왔을 때 그깟 일주일 가지고 뭐가 그리 힘들다고 그러는지 진심으로 이해되지 않았지만, 평소에 하도 아무것도 안 하다시피 한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 눈엔 내가 하는 일의 백분의 일도 채 안 되게 주부 역할(더 정확히는 흉내 낸 정도)을 한 것처럼 보였지만 당사자는 또 입장이 달랐다.
그리고 그 개구리는 태어나서 올챙이 시절을 뛰어넘어 알에서 바로 앞다리, 뒷다리 쑥쑥 나와 개구리로 변신해 처음부터 폴짝폴짝 뛸 수 있게 된 줄 착각한 모양인지 올챙이 적 시절을 까마득하게 다 잊어버리고야 말았던 것이다.
내 아이들 정도면 성가실 게 하나도 없겠다고, 할 일 있으면 알아서 하고, 내가 도와 달라는 집안일이 있으면 잘 도와주고 나를 귀찮게 하지도 않는데(물론 가끔은 귀찮게 하는 한 어린이가 있다. 신변 보호를 위해 둘 중 누구라고는 밝힐 수 없지만) 뭐가 그리 문제냐고 지인들은 배부른 소리 그만하라고 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가 마냥 편하고 한가하고 여유로운 것은 결코 아니다.
나에겐 아들이 있다.
다이어트가 필요하다고 하는 지인들에게 나는 진심으로 강력히 권하곤 한다.
"내 아들 데려가서 일주일만 같이 살아볼래? 입맛이 바로 없어져. 자동 다이어트가 된다니까. 먹어도 먹어도 살이 안 찌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거야.(내가 산증인이다.)"
나를 자꾸 시험에 들게 하시는 아드님, 엄마를 현실에 안주하게끔 하지 않고 부단히 노력하도록 하시는 아드님, 존재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중년의 나잇살 따위가 무언지 구경도 못하게 늘 한결같은 몸무게로 나를 유지시켜 주는 고마운 아드님,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맞춤형 무보수 개인 트레이너.
나의 기쁨, 나의 번뇌...
다행히 딸이 아들과 잘 놀아주고 맞춰주고 누나 몫을 톡톡히 하고 있어서 큰 힘이 된다.
이래서 다들 딸, 딸 하는가 보았다.
나의 기쁨, 나의 구원자.
딸은 새벽 6시에 깨어도 상관없다.
아무 걱정이 없다.
그러나 다른 어린이는 그렇지가 않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아들만, 그 아드님만 늦게 늦게 일어나게 해 주옵소서.
겨울 방학 동안 이 엄마의 소원이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그 아드님만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고난주간의 시작이다.
번뇌의 굴레는 씌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내가 호강에 겨웠지.
이런 시간들이 앞으로 있으면 얼마나 더 있으랴 싶기도 하다.
지나고 보면 후회스럽고 아쉽고, 그때 더 잘해주고 더 많은 시간 옆에 있어줄 걸 하고 몇 년 후 그렇게 같은 미련을 가질 거면서 당장 육신의 고단함에 눈멀어 배부른 소리만 하고 있구나.
튼튼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는 아이들, 모난 데 없이 말 잘 듣는 아이들을 옆에 두고 무슨 호강에 겨운 쓸데없는 소리란 말인가.
이게 다 등 따습고 배불러서 복에 겨워 그러는 거지.
유일하게 다니는 합기도 학원, 하루 중 그 한 시간이 내게 주어진 자유 시간이다.
그것만도 어디냐.
그래도, 아들에게 진지하고도 심각하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온 진심을 담아 권해본다.
"실컷 자. 늦게 일어나도 돼. 엄마가 절대 절대 안 깨울게. 그동안 못 잔 거 겨울 방학 때 많이 많이 자. 어린이는 잠을 많이 자야 되는 거야. 알았지 우리 아들? 그리고 제발 부탁인데 매번 끼니때마다 메뉴가 뭔지 좀 묻지 말아 줄래? 엄마도 괴롭다. 그냥 엄마가 주는 대로 먹으면 안 될까?"
누군가의 겨울방학 시집살이가 무서운 어느 겨울밤을 무사히 보내고 방학 첫날부터 아침 7시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상하는 새나라의 어린이가 한 명 있었다...
"엄마. 벌써 7시야? 학교 안 가도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지요. 나 다 잤어.근데 오늘 아침 메뉴는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