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이 있어도 학교 급식이 탐난다, 가끔은.
아침 7시, 내 것 아닌 알림의 설렘
22. 11. 25. 급식은 남의 것, 가내수공업은 내 것< 사진 임자 = 글임자 >
"얘들아, 오늘 너희 정말 맛있는 점심 먹겠다. 날치알 김치볶음밥, 잔치국수, 게다가 우리 합격이가 좋아하는!"
"엄마, 뭐라고? 혹시?"
"닭다리 오븐 구이!"
"우와, 정말이야? 얼른 학교 가야겠다."
아무리 학교를 빨리 간다고 해도, 교문이 채 열리기도 전에 일등으로 그곳에 당도한다고 해도, 점심시간은 12시부터 시작한다는 불변에 진리 같은 건 전혀 안중에도 없는 딸은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제아무리 탄력근무제를 실시하는 곳이라 할지라도 때아닌 시간에 등교 순서대로 급식을 시작하는 학교는 없으리라.
아침마다 아이들의 볼을 비비며 옆에 누워 따뜻한 손길로 유혹(?)을 해도 포근한 이불에 엄마는 매번 지기 일쑤다.
보통 5시에서 6시 사이에 일어나 메모를 하며 반디로 간단히 공부를 한다.
새로운 표현을 배우고 익히는 재미에 지루할 새가 없다.
어쩌면 경건하게 그날을(어쩌면 그보다는 급식메뉴를) 맞이하는 나만의 의식일지도 모르겠다.
듣고 따라 하고 메모하고,
그러면서
'오늘의 메뉴는 뭘까?'
잿밥에 마음이 8할은 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집에서는 거의 항상 내가 가장 먼저 일어나는 편이므로 오전 7시가 되면 학교에서 보내주는 급식 알림을 보고는 이불속에 파묻혀 있으리라 짐작되는 아이들을 향해 그날의 급식 메뉴를 공지한다.
정작 반드시 꼭 보고 확인해야만 하는, 학교에서 올린 공지사항은 뒷전이고 한 달치의 중식 메뉴를 선행학습까지 하기에 이른다.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아.
6시 50분이 넘어가고 7시가 되어갈 때쯤에는 설레기까지 하는 것이다.
오늘은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이 나올까?
나는 맛도 못 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구경도 못하는 급식이지만 못 먹는 급식 메뉴 확인이라도 하자(최소한 아이들이 어떤 음식을 먹고 다니는지는 알아야지 하는 마음도 있다.), 뭐 그런 마음이랄까.
급식 메뉴는 이불도 이기고, 눈꺼풀도 이기고, 따끈한 방바닥도 이기고, 물론 엄마를 이기며, 주 5일 등교의 무료함도 날려버린다.
아,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았다.
"사랑해, 우리 아들, 딸, 잘 잤어?"
라고 말하는 엄마의 (얼른 깨워서 학교로 보내버리고 싶은 마음을 잔뜩 담은, 은근히 기상을 권하는 간접적인) 말 한마디보다 더 큰 힘을 가진 것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오늘 점심 맛있었어?"
"응, 엄마, 정말 맛있었어. 그래서 밥을 두 번이나 먹었어."
"그랬구나, 밥이 얼마나 맛있었으면 두 그릇이나 먹었을까? 엄마도 한번 먹어 보고 싶네."
라고 대꾸한 나는 진심으로, (남이 만들어 준) 그 밥을 먹어 보고만 싶었다, 철 없이.
"근데 엄마가 해 준 거랑은 다르더라?"
"아, 그랬어?"
"응, 이름은 같은데 뭔가 좀 달랐어. 맛이."
"그랬구나. 엄마가 만든 게 맛있었어? 아님 학교에서 먹은 게 맛있었어?"
기어코 나는 엄마 아빠 중에 누가 더 좋냐는 물음보다도 더 유치한 질문을 하고야 만다.
"당연히 엄마가 만들어 준 거지!"
'당연히'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내 발이 움찔하며 저렸기 때문일 것이다.
평소에, 아니 일 년을 가 봐야 거의 외식은커녕 배달 음식도 먹지 않는 우리 집, 엄마가 해 준 음식만 먹고 자라다시피 했으니 '동명이미(同名異味)'의 혼란을 겪지 않을 수 없었겠지.
나는 음식에 뭔가를 첨가하는 것을 (어디까지나 내 기분이 내킬 때) 최소한만 하는 편이다.
그리고 다양한 음식을 만들지도 않는다.
가급적 원 재료 그대로를 최대한 살려서, 그러다 보니 가끔은 너무 싱겁고, 별 맛도 안 느껴질 때도 있다.
변명하자면 최근에는, 시간이 아까워서이다.
최근 들어 요리하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주말에도 하루 세끼를 만들어 먹으며 간식을 내놓고 그다음 메뉴를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그런 마음이 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알약 하나를 간절히 바란다.
먹으면 배도 부르고 영양소도 다 갖춰져 있어서(그러면 메뉴 걱정 안 해도 되고 요리도 안 해도 되리란 단순한 생각에) 알약 하나로 아이들까지 다 길러낼 수 있는 꿈의 신약, 언제쯤에나 만나 볼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매일 급식 알림을 받고는 당장에 아이들과 함께 학교로 향하고 싶은 간절함을 억누를 길이 없다.
모순의 인간,
요리하기는 귀찮고, 가끔 먹는 것 자체도 귀찮고, 사 먹는 건 싫고, 마법의 어떤 신약을 기다리면서도 초등학교 급식 메뉴에 귀가 솔깃해지는 앞뒤가 안 맞는 사람.
아들이 유치원에 입학했을 때 학부모들을 초대해 학교 급식을 제공한 적이 있었다.
실제로 아이들이 먹는 급식을 학부모도 먹어보고 평가도 하고 좋은 의견을 받고자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호사(?)는 처음이었으므로, 마침 육아 휴직 중이었으므로, 참석란에 동그라미 크게 치고 가정 통신문을 유치원에 되돌려 보냈었다.
물론 나는 잘 먹었고, 너무 요란하지 않게 설문지에 성실히 응답함으로써 밥값을 대신했다.
나는 학교 급식 세대가 아니다.
내가 고 3일 때 학교 급식실을 막 짓기 시작해서 나는 그 귀한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채워지지 않은 욕구가 엉뚱하게 지금에서야 아이들의 급식 메뉴를 보며 매일매일의 설렘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사실 알고 보면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반찬들이다.
남편에게도 종종 묻는다.
"오늘 뭐 나왔어?"
"급식? 몰라? 뭐 먹었더라?"
"아니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그것도 기억 안 나?"
"진짜 기억 안 나네. 근데 그걸 자기가 왜 궁금해해?"
"좀 궁금해하면 안 돼?"
"몰라. 아무튼 별로였어. 요즘 급식 진짜 맛없어."
어차피 모든 이의 입맛에 다 맞기는 어려운 법이다.
가진 자의 오만함 내지는 무례함.
어쩌면 급식 먹는 자의 여유로움이랄까.
저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호강에 겨웠다'라고 한다지 아마?
남이 해주는 음식을 그저 먹기만 하면 되는 그 일이 얼마나 은혜로운 일인데.
요리하는 거 여간 힘든 일이 아닌데, 얼마나 신경 쓰이고 머리 무거운 일인데.
컨디션이 안 좋거나 딱히 무슨 반찬을 준비해야 하나 막막할 때면 종종 급식 메뉴를 확인하고는 돈을 주고 살 수만 있다면 그것을 사 와 저녁을 해결해 버리고 싶을 지경이다.
영양소는 오죽 골고루 잘 맞췄겠어? 하면서 말이다.
하루에 도시락을 두 개 안 싸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그 옛날 동생의 도시락까지 싸주며 학교 다니던 시절, 매일 내가 반찬을 만들었으므로(갑자기 내가 너무 옛날 사람 같고 한 번도 시청한 적 없는, 소문으로만 듣던 6남매의 장녀라도 된 기분이다.) 메뉴가 무엇일까 하며 기대감에 도시락 뚜껑을 여는 두근거림 같은 것은 먼 나라 이웃나라 얘기일 뿐이었다.
점심시간이 기다려지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자주 점심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그것을 먹어 치우곤 했다.
언제나 끈끈한 우정으로 결집된 나의 멤버들과 함께.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고, '도시락도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먹는 게 낫다'는 게 당시 (나를 비롯한 점심 도시락 얼리 어답터) 여고생들의 신념이었다.
급식 메뉴 게시글을 거슬러 올라가며 확인하면서 밥 한 번 먹고, (반찬 만드는 일조차 귀찮아서) 메뉴 한 번 쳐다보고, 김치 한 번 집어먹고 메뉴 한 번 쳐다보는 2022년의 어느 자린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