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영과 원조 부인집과 반려견 선물세트

슬픈 나의 노화

by 글임자
22. 12. 19. 정화하는 시간

< 사진 임자 = 글임자 >


"탈영을 하자, 탈영을 하자."

예전에 한창 아이들이 무슨 노래를 자꾸 반복해서 부른 게 있었다.

처음엔 동요인가, 전래동요 같은 건가, 국악 시간에 배웠나 했다.

그런데, 초등학생이 부르기엔 건전하지 못하게 들렸다.

자꾸 무슨 탈영을 하자는 건지...


정체는 '호랑수월가'란다.

그게 뭐야?

BTS 신곡인가?

남편에게도 세대차이 난다며 말이 안 통한다고 핀잔을 곧잘 듣는 내가 그나마 아는 척하는 가수가 BTS였다. 어지간하면 무조건 BTS인 거다.


노래 가사 중에 '탈영을 하자' 그런 내용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작년에 한창 마침 그 멤버 중 누가 군대에 가야 하네 어쩌네 했던 내용을 모닝스페셜 뉴스 기사에서 들은 것도 같다. 이미 갔는지도 모르겠다.

아들이 자꾸 '탈영을 하자'그러면서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 어디서 들었어?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어?"

"응, 우리 선생님이 알려 주셨는데. 누나도 알아."

이러는 거다.


탈영?

탈영을 하자고?

이건 전혀 교육적이지 않은데.

뭔가 문제가 있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2학년, 9살밖에 안된 아이들에게

탈영 권하는 노래를 가르치시다니.

그 선생님 그렇게 안 봤는데.

설마?


요즘은 선생님들의 개인적인 취향이 수업 시간에도 많이 반영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뭔가 사고가 남다르신 분인가?

그래도 그렇지 나야 지금 당장 군대 가면 좋겠지만, 아직 군대 영장을 받아보려면 십 년 가까이 남은 어린이에게 자꾸 탈영을 하자고 권하시면 곤란한데.


마침 아들이 마라카스를 만들어 와서 연주를 하길래 그 노래를 한 번 불러 보라고 했다.

언제나 준비된 자세를 취하며 행동에 옮긴다.

누나는 옆에서 마라카스를 흔들어 대며 연주하고 동생은 신나게 탈영 노래를 부른다.

아무리 들어도 밑도 끝도 없이 탈영을 하자는 그 노래는 좀 그렇다.

"근데 얘들아. 왜 자꾸 가사에서 탈영을 하자고 그러는 거지?"

"우리도 몰라."

하긴, 너희가 그 깊은 뜻을 어찌 알겠느냐.

교육상 이건 바람직하지 못해.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싶었다.

저 노래의 진상을 밝히고 치맛바람이라도 일으켜야 할 것 같았다.

도대체 그 노래 정체가 뭔가 싶어 찾아보았다.


'탈영을 하자'라는 게 아니라 허무하게도 '타령을 하자'였다.

내 사상이 불순했었나?

그래도 어쩜 타령을 탈영으로 들을 수가 있지?

하긴 신성한 배움터에서 선생님이 탈영 권고 노래를 아이들에게 가르쳤을 리가 없지.

애먼 BTS만 의심했다.


비단 나이 탓만은 아니겠지만 눈에 헛것이 보이고 귀에 헛것이 들린다.

노화 현상을 겪고 있는 것이려니 하지만 나조차도 어이없을 때가 종종 있다.

언젠가 어느 분의 블로그에서 제목이 '원조 부인집 방문 후기' 이런 글을 보았다.

나의 본능은 뭔가 자극적인 내용을 기대하며 잽싸게 제목을 클릭했고, 도대체 원조 부인집은 어떤 부인집인가 꽤나 흥미를 갖고, 기대에 부풀어 글을 읽어 내려갔다.

아뿔싸.

내가 은근히 기대해 마지않았던 그런 내용의 글이 아니었다.

나는 제목만 얼핏 보고 원조 부인이 되지 못한 새 부인이 원조 부인네 집을 찾아간 그런 내용인 줄 알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다시 제목을 똑바로 들여다봤다.

'원조 부안집 방문 후기'

어느새 없던 점 하나가 찍힌 것일까.

왜 자꾸 헛것이 보이는 거지?


뿐이랴,

한창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줄 것을 검색하다가 내 시선을 확 잡아 끄는 것이 있었으니.

'반려견 선물세트'

반려견을 어떻게 선물 세트로 한다는 거지?

반려견들이 곶감을 좋아하나? 제목과 사진은 통 안 어울려 보였다.

거기 나온 사진은 주황색 곶감이 예쁘게 선물 세트상자에 담겨 있었다.

나는 반려견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요즘 반려견들에게 저런 걸 간식으로 주기도 하나 보다 했다.

그런데 다시 자세히 보니 그것은 '반건시 선물 세트'였다.

반건시와 반려견은 서로 얼토당토않은 사이인데 그럼 그렇지.

나의 노안이 빚은 참사다.

그래도 벌써부터 이러면 안 되는데 싶었다.


점 하나에 님이 되고 남이 되는 무시무시한 인연보다도 더 긴박감을 늦출 수 없었던 나의 '원조 부인집'과 '반려견 선물 세트'.

루테인을 주문해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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