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너덜너덜한 생선을 발라 먹었더니
딸을 위한 해명, 아니 진실
23. 3. 9. 엄마는 생선 대가리 말고 몸통을 좋아해< 사진 임자 =글임자 >
"엄마, 우리한테 생선 살은 다 주고 엄마는 우리가 남긴 거 먹는 거야?"
"아니야. 엄마도 생선 많이 먹었어."
"아니잖아. 엄만 우리 먹으라고 다 줘버려서 엄마 먹을 게 없어서 지금 뼈에 붙은 거 다 발라 먹고 있잖아."
"진짜야. 엄마도 먹었어. 걱정 마. 엄마가 너희보다 더 많이 먹었어."
"히잉~엄마. 엄마는 우리를 위해서 다 양보하고."
"아니라니까. 진짜 진짜 엄마가 우리 집에서 제일 많이 먹었다니까 그러네."
아니, 도대체 딸이 무슨 영상을 본 거지?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이런 노래 비슷한 거라도 들은 걸까?
맹세코 나는 아이들에게 양보하느라 생선을 안 먹지 않았다.
양보할 리가 없지.
나는 여느 희생정신 강한, 모성애로 똘똘 뭉친 그런 다른 집 엄마와는 다르다, 고 우리 집 양반은 늘 말해왔다.
부인하지 않겠다.
"아빠, 엄마가 생선 우리 먹으라고 엄마는 안 먹고 우리가 남긴 것만 먹고 있어."
"그럴 리가 없는데?"
"진짜야. 봐봐. 지금 엄마가 우리가 남긴 생선 가시 발라 먹고 있잖아. 히잉~."
"너희가 뭔가 오해를 한 것 같다, 엄마가 그럴 사람이 아닌데."
"아니야. 엄마는 우리를 위해서 좋아하는 조기도 다 양보했어."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 양반은 딸이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음을, 절대 불변의 진실을 말하고 있었으나 딸은 결코 곧이듣지 않았다.
"너희 엄마가 생선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래? 엄마 생선은 따로 있을 거야."
"없잖아. 이거밖에 없는데?"
"너희들 엄마가 조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아 몰라?"
"알아."
"설마 엄마 몫도 안 남겨놓고 너희들 다 주지는 않았을 거야."
"정말?"
"엄마한테 물어봐."
내가 자수하고 광명 찾을 시간이 비로소 닥쳤다.
운명의 날은 오고야 말았다.
"얘들아. 걱정 마. 엄마 조기 몇 마리는 진작 먹었을 거야. 너희 엄마가 생선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래. 안 먹었을 리가 없어. 엄마 다 먹고 너희 준 거니까 걱정 말고 밥 먹어. 아이고, 아빤 먹지도 못하겠다. 엄마랑 너희가 생선 좋아하니까 아빠까지 먹어버리면 너희 먹을 거 없어서 아빤 못 먹겠다. "
과장이 좀 지나치시다.
내가 생선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남의 몫까지 빼앗아 먹는 그런 파렴치한 짓 같은 것은 절대 안 한다.
물론
"이거 안 먹을 거면 나 먹을게."
라고 먼저 상대방의 의향을 물어본 후 뒤처리를 내가 하는 편이지, 내가 언제 먹지도 못하게 했다고 저리 호들갑이실까.
누가 들으면 진짜인 줄 알겠다.
마지막 그 말은 아니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하고 나는 비린내 진동하는 손가락을 닦으며 생각했다.
저 양반이 지금 하는 게 말인가 막걸리인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생선이 바로 조기다.
나는 좋아하는 생선을 아이들을 위해 무조건 양보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사이좋게 나눠 먹으면 되지 엄마라고 해서 모든 걸 아이들에게 다 줄 필요는 없다,는 것이 나의 평소 신념이다.
나도 먹고 아이들도 먹으면 되는 것을.
그날도 15마리 정도의 조기를 구워 1차로 내가 먼저 시식을 했다.
배가 고파 먼저 먹은 내가 빠지고 아이들에게 먹였는데 아이들이 조기를 발라 먹다가 만 것처럼 살이 반도 넘게 남았길래 나머지 살을 발라 먹고 있었던 것뿐이다.
물론 그것이 두 그릇째였다.
음식에 있어서(다른 많은 부분에서도 그렇지만) 내가 먼저지 아이들이 먼저는 아니다.
그런 나를 보고 우리 집 양반은
"무슨 엄마가 그러냐? 다른 집 엄마들은 무조건 애들부터 챙긴다는데."
라면서 핀잔을 준다.
내가 잘 먹고 건강해야 아이들도 잘 키울 거 아냐?
'다른 집 여자들'에서 이젠 '다른 집 엄마들'로까지 확장됐다.
그런 사람은 그런 사람이고 나는 나대로 사는 거지.
그렇다고 내가 애들을 굶기기를 해, 아니면 못 먹을 음식을 주기를 해?
엄연히 나도 챙겨 먹고 애들도 챙겨 주고 있는데 뭐가 그리 불만이실까?
아이들이 괜한 오해를 심하게 하는 것 같아 진실을 고백해야만 했다.
"얘들아, 엄마 진작 밥 먹었어. 엄마는 조기 5마리도 더 먹었어. 아빠 말이 맞아."
"근데 왜 우리가 남긴 걸 먹어?"
"너희가 너무 많이 남겼잖아. 그렇게 대충 먹고 버리면 안 되지. 그래서 엄마가 나머지 발라 먹은 거지."
"진짜야?"
"그럼. 엄마가 왜 거짓말하겠어?"
"엄마 정말 너무하네. 혼자 5 마리나 먹으면 어떡해?"
"미안하다."
나 못지않게 딸도 조기를 좋아한다.
나는 단순히 딸을 낳은 게 아니다.
나의 라이벌을 낳았다.
나와 외모도 많이 닮았지만 식성도 거의 똑같다.
서로 좋아하는 음식이 같으니 견제하지 않을 수 없다.
"난 또 엄마가 먹을 것도 없이 우리한테 생선 다 준 줄 알았지."
딸이 말했다.
"합격아, 너희 엄마 절대 그럴 사람 아니야."
눈치 없는 어떤 양반이 또 끼어들었다.
내가 끼워 준 적도 없는데 어디서 지금 끼려고 그러지?
여기가 도로 한복판인 줄 아시나.
깜빡이를 켜고 들어오려고 해도 안 끼워 줄 판에 말이야,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