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하긴 하지만, 먹지는 않겠어.

아무리 그래도, 먹을 게 따로 있지.

by 글임자
22. 12. 19. 이 사진으로 갈음합니다.

< 사진 임자 = 글임자 >


* 주의 : 임신부, 비위가 약하신 분들의 각별한 주의를 요합니다.


"엄마, 이 인형들은 내가 빨게. 나 옛날에도 빨래 잘했던 거 몰라?"

"우리 아들이 할 수 있겠어?"

"엄만 걱정하지 마요. 내가 잘할 수 있어. 깨끗이 빨게."

"그래. 우리 아들은 잘하지. 유치원 다닐 때부터 빨래해 봤던 어린이니까."


학교에서 바자회가 있던 날 인형 두 개를 헐값에 공수해 와 '완전 거저'라며 얼마나 뿌듯해하던지 그때의 그 표정은 그 얼마나 뿌듯함에 넘쳤었던가.

자기 물건이므로 손수 세탁을 하겠다고 고집하고 나섰다.

이런 고집은 적극 장려할 만하다.

불현듯 몇 년 전의 '구수하면 잡솨 봐~' 사건이 떠올랐다.


< 아들 6살 적에... >

"엄마. 나 팬티에 똥이 묻어 버렸어. 어떡하지?"

"어떡하긴, 빨면 되지."

"어떻게 빨아?"

"엄마가 알려 줄게. 그대로 해 봐."

나는 그냥 한 번 해본 소리였을 뿐이다.

"알았어. 할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할게."

"유치원생이 팬티를 빨겠다고?"

"내 똥이 묻은 거잖아. 내가 묻힌 거니까 내가 할게."

"그래. 6살이면 자기 속옷은 빨아 입을 나이지. 하지만 엄마가 해 줄 수 있어. 한 번 손세탁 하고 세탁기에 넣으면 돼."

"아니야. 이번에 내가 해 볼게. 어떻게 하는지만 알려줘요. 엄마 힘들잖아."

"하나도 안 힘들어. 냄새는 좀 날 수 있겠지만 그 정도는 엄마가 할 수 있지. 우리 아들 똥인데 뭐. 엄마는 하나도 안 더러워."


옆에서 모자의 이 모든 광경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당시 초등2학년 딸이 불쑥 말했다.

"에이 말도 안 돼, 엄마. 똥이 더럽지 왜 안 더러워?"

물론 약간은 더러울 수도 있지만 기분상, 나는 그 유치원생의 엄마였으므로 심하게 더럽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어떤 흔적을 남긴 그것은 엄마 눈에는 그저 애교스러웠다.

"아니야 합격아. 엄만 너희들 똥 안 더러워. 똥이 똥이지 뭐. 어차피 음식 먹고 남은 찌꺼기지. 엄마는 너희들 똥 냄새도 구수하기만 하더라."

"그래? 진짜 우리 똥이 구수해?"

"그럼. 우리 아들 딸 것인데 뭐 어때? 얼마나 구수하다고!"

"정말 구수하단 말이지? 그렇게 구수하면 먹어, 엄마."

"뭐?"

"구수하다며? 구수하면 먹어 봐."

"구수하다고 했지, 먹고 싶다고는 안 했다!"

"구수하다면서 왜 못 먹어?"

"구수하긴 하지만 안 먹을 거야!"


한창 승강이를 하고 있는데 아들이 어느새 제 속옷을 다 빨아 자랑스럽게 내게 내밀었다.

"엄마 어때? 나 잘했지?"

"정말 깨끗하게 잘 빨았네. 우리 아들은 어쩜 빨래도 이렇게 잘할까?"

"엄마. 또 빨래할 거 어디 없어? 쉽네. 내가 도와줄게. 이것도 재미있다. 엄마 혼자 하면 힘들잖아."

"아니야. 우리 아들 힘들었겠다. 고생했어."

"해보니까 안 힘드네. 이제 빨래를 어떻게 하는지 알았어."

그 와중에도 '구수하면 한 번 먹어 보시라'라고 줄기차게 강요하는 2살 연상의 다른 어린이는 왜 말과 행동이 다르냐며 따지고 들었다.

"엄마가 구수하다고 한 건 거짓말이야. 구수하면 먹어야지. 왜 어린이한테 거짓말을 해?"

"거짓말이 아니라 구수하다고 다 먹을 필요는 없잖아."

"구수하면 먹어 보라니까."

"구수하다고만 생각하지 먹고 싶지는 않아."

"그러니까 엄마 말은 거짓말이야."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지. 지금 너무 얼토당토않은 걸 서로 연관시키고 있단 생각은 안 들어?"

가끔 딸은 엉뚱한 곳에서 끝장을 보려는 성미가 있는 것 같다.


그 '구수한 사건' 이후 아들과 딸은 큰 볼일을 보고 난 후 항상 나를 호출했다.

"엄마, 빨리 와서 맡아봐. 구수해? 진짜?"

아니... 얘들아.

그게 말이지... 구수했던 적은 아주 드물었던 것 같아,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말이야.

어쩌면, 엄마 생에서 딱 한 번뿐이었을지도 몰라.

그것도 아니면 엄마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겠어.

그래, 이 엄마가 잘못했다 잘못했어.

자식의 분비물을 먹어야만 낫는 중병을 엄마가 앓고 있는 것도 아닌데 이건 아니잖아.


요즘도 가끔, 아주 가끔, 딸은 호들갑스럽게 화장실에서 뛰쳐나오며 나를 급히 찾는다.

"엄마. 얼른 와서 맡아봐. 구수하다며. 얼른!"

하지만 몇 년 사이 그것은 독해졌다.

독하디 독하다.

어른의 그것을 능가하기 일쑤다.

어린이의 것이 아니다 더 이상.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난 비위가 약한 편이다.

"합격아, 엄마 비위 약하다고 했잖아! 얼른 문 닫아! 얼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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