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그 사람이 왜 그러실까?

택배 기사님의 방문이 잦아지려나?

by 글임자
2023. 4. 25. 깨끗해졌다.

< 사진 임자 = 글임자 >


"아휴, 저 방충망만 청소하면 소원이 없겠네 정말."


옆에 있는 남편에게 똑똑히 들리라고 선명하고도 확실한 발음으로 그동안 가슴속에 품어놨던 진심을 내뱉었다.

아침 8시가 조금 넘은 시각, 이른 아침부터 부부가 감히 대화를 시도한다는 게 조금은 어리석어 보이긴 했지만 일단 던져놓고 보는 거다.

뒤에 이을 남편의 지청구는 얼마든지 감당할 의향이 있었다.

단, 내 소원을 들어주기만 해 주신다면 말이다.


"아침부터 무슨 방충망 타령이야 또?"

물론 남편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요즘 송홧가루가 너무 많이 날려. 매일 닦아도 창틀이 노래. 황사도 계속 심했잖아. 그냥 닦으면 깨끗하게 안돼. 빼서 전체를 씻어버리는 게 최곤데."

며칠간 내가 아무리 창틀 오염의 심각성을 피력해도 남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방충망 청소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몇 달 안 됐잖아?"

전혀 협조할 마음이 없지는 않은 것 같군, 더 분발하면 되겠다.

"얼마 안 되긴? 벌써 일 년 다 됐어! 작년에 빼서 청소했잖아."

물론 1년까지는 아직 안 됐다. 8개월 전에 대대적인 그 일을 했으니까. 약간의 과장법은 용서받을 수 있으리라. 인심 좀 쓰자면 8개월에서 12개월까지는 얼마 차이 나지도 않으니까 어쨌거나 6개월은 넘었으니까 내가 보기엔 1년 다 됐다.

"무슨 소리야? 나 휴직할 때 했었는데?"

남편은 자신이 분명히 작년에 한 번 정도는 그 일을 거들었음을 주장하려고 하고 있었다.


"7월에 복직했잖아. 그때가 언제야? 암튼 거의 일 년 다 됐어!"

내 잘못된 기억으로는 그가 복직하기 전에 방충망 청소를 했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아니라니까. 몇 달 안 됐다니까 그러네."

남편도 나 못지않게 자신의 잘못된 기억을 확신에 차 밀고 나갔다.

"휴직했을 때가 아니야. 정확히는 작년 8월 27일이야. 벌써 1년 다 된 거 맞잖아!"

고작 8개월 밖에 안 지났으면서 심하게 과장해 1년씩이나 됐다고 나를 몰아세우는 대신 갑자기 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난 이미 포기를 하고 자리를 떴다.

1차 협상 실패다,

라고 생각했다.


"빨리 와! 이거 잡아 줘!"

남편이 거실에서 소리쳤다.

설마?

그분(그 당시는 '그분'으로 추앙받아 마땅하셨다.)이 일을 내셨다.

부리나케 달려가 보니 남편이 거실 방충망 한쪽을 다 빼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안 할 거 같더니 웬일이야?"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쳐다보더라."

"걱정 마. 자기 쳐다본 게 아니라 방충망만 쳐다본 거야. 내가 항상 말했잖아, 얼굴만 가리면 돼."

잽싸게 보조 역할을 하고 그 방충망을 받아 들고 욕실에서 씻고 또 씻었다.

"어휴, 이 먼지 좀 봐. 정말 시커멓네. 아이고 속 시원해라! 역시 자기가 최고라니까. 방충망도 다 빼 주고, 역시 자기밖에 없어!"

남편이 귀 기울여 듣지는 않는 것 같았지만 방충망 청소를 하는 내 마음이 얼마나 기쁜지, 그가 그 일에 협조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거듭 강조했다.

물론 항상 남편이 최고인 것은 아니지만 그 순간만큼은(분명히 순간이다.) 남편이 정말 최고였다.


"방충망 청소하니까 그렇게 좋아?"

"응, 정말 좋아. 내가 전부터 저걸 얼마나 청소하고 싶었다고! 혼자는 못 빼니까 빼달란 거였지."

"하여튼 자긴 이상한 강박증 있는 것 같더라. 왜 그렇게 방충망에 집착을 해?"

"이왕이면 깨끗하면 좋잖아. 환기할 때 바람 세게 불면 진짜 먼지가 집 안으로 다 떨어지는 게 보인다니까. 빼주기만 하면 내가 다 청소하잖아. 남들은 방충망 청소도 안 하고 살아서 걱정이라는데 자긴 내가 청소 다 하겠다는데도 그러네."

물론 마지막 그 말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다.

다들 방충망 청소는 주기적으로 하고 사는 것 같았지만, 그 일급비밀은 남편만 모르게 하기로 한다.

"하긴, 안 하는 것보단 하는 게 낫지."

"그래도 이렇게 방충망까지 빼 주는 남편은 자기밖에 없을 거야. 고마워."

내가 생각하기에도 다소 과장이 심한 것은 아닌가 싶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주워 담지 않기로 한다.

과한 칭찬은 남편이 다른 방충망도 빼게 만들지니...


"어휴, 근데 걱정이네."

"또 뭐가?"

"사실 베란다가 더 지저분하거든. 거긴 작은 것 같아서 내가 혼자 몇 번 빼 보려다가 못 뺐어. 아휴, 저것만 빼서 청소하면 소원이 없겠는데 말이야. 자긴 이제 힘들어서 안 되겠지? 아휴, 너무 지저분해. 볼 때마다 심란해. 하지만 자긴 이제 베란다 방충망까진 안 빼주겠지? 아휴, 베란다 방충망 한 번 빼서 청소해 봤으면 소원이 없겠네. 아휴~ 연속 두 개나 빼는 건 힘들겠지? 어쩔 수 없지. 그냥 내가 베란다에 매달려서 닦아봐야지 뭐. 내가 청소하다가 떨어지기밖에 더하겠어?"

남편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 대신 몸을 움직이셨다.

갑자기 베란다로 나가더니 혼자서 방충망을 빼 오신 것이다.

"이것도 뺀 거야? 꼭 빼 달란 얘긴 아니었는데. 고마워. 역시 자기가 최고야!"

뭐든지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겠지만 또 일단 남발하고 본다.


"다시 끼우게 좀 잡아 봐."

"알았어. 먼저 119에 전화할 준비 좀 하고! 자기 떨어지면 얼른 신고해야지."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럴 리도 있으므로, 만에 하나 사고에 대비해서이다.

그러나 우리 집 창틀은 높은 편이라 일부러 의자 딛고 창틀로 올라가지 않는 이상 절대로 사람이 추락할 일은 없다, 방충망이 추락할 일은 있어도.

혹시라도 아래에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있는지 샅샅이 살피고 무사히 일을 마쳤다.

베란다 방충망까지 청소를 마치고 남편과 2인 1조가 되어 창틀에 끼우는 일까지 순조롭게 끝냈다.


"얘들아, 오늘 아빠가 방충망 빼줘서 엄마가 청소했어. 어때? 깨끗하지?"

"우와. 난 방충망이 없는 줄 알았어. 진짜 깨끗하다, 엄마."

하교한 아들이 과장되게 반응했다.

내 친아들이 맞구나.

역시 사회생활 잘하겠어.

암만, 누구 아들인데.


"오늘 내 숙원사업을 다 끝마쳐서 정말 속이 다 시원하네."

"무슨 숙원사업씩이나?"

"진짜야. 난 저게 항상 거슬렸다고. 덕분에 청소하고 이젠 당분간 깨끗이 쓸 수 있겠다. 보기만 해도 좋다."

"그래. 자기가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네."

"역시 자기가 최고라니까! 당분간 푹 쉬어!"

언제 그가 집에서 쉬지 않은 날이 있었냐마는 기꺼이 내 숙원 사업을 해결해 준 그를 위해 안식년을 남발한다.

그리고 배은망덕한 아내가 되지 않기 위해 그 은혜를 뼈에 새기며 나는 점심으로 굴밥을 해서 대령했다.

친정 로컬푸드 달래 양념장은 덤이다.


"이 달래 집에서 캐 온 거야."

"자긴 하여튼 이상하더라?"

"뭐가?"

"자기 집에서 가져온 건 무조건 다 만병통치약인 줄 아나 봐?"

"무슨 소리야?"

"항상 그러잖아. 자기 집에서 가져온 건 좋다고."

"내가 언제 만병통치약이라고 했어? 그냥 달래의 출처를 밝힌 것뿐이지."

"아무튼 자기 집 것은 다 좋다고 하잖아."

"무조건, 다 좋다고는 안 했어!"

기껏 잘해 놓고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리람?

하루라도 티격태격하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기라도 한단 말인가?


달래 사건으로 인하여 고비의 순간은 있었으나 위기의 부부도 가끔은 이렇게 화기애애할 때가 다 있다.

결혼 생활도 오래 하고 볼 일이구나.

하긴, 나도 숨 좀 쉬고 살아야지.

보통은 나의 기쁨 < 나의 고통이지만,

그날만큼은 나의 기쁨 > 나의 고통,이었던 그 남자.

365일 중에 360일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5일 정도 기쁨에 넘치도록 하는 그 남자.

거의 모든 날들을 고통받게 하는 것 같은 것은 단지 기분 탓, 이겠지?

365일 전부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게 하지 않은 것만도 어디냐.


그나저나, 일요일에도 그렇고 그날도 그렇고, 이렇게 이틀 연속 타의 모범을 보여주면 도대체 어쩌자는 거지?

그 사람이 왜 그러실까?

왜 갑자기 다른 남편들에게 위화감을 불러일으킬 행동을 일삼는 걸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남편이여!

그날만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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