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없는 공무원 구하기', 정신 나간 술판에서
작전명:아빠를 구출하라!
2023. 5. 11. 누구는 좋아하지만 다른 누구는 아닌데< 사진 임자 = 글임자 >
"내 문자 봤어, 안 봤어?"
"왜?"
"얼른 확인해 봐. 이 사람이, 내가 문자 보낸 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확인도 안 하고 말이야. 얼른!"
"보내긴 뭘 보냈다고 그래?"
또 무슨 일로 저리 호들갑이실까?
남편이 다짜고짜 전화해서 따져 물었다.
수신 문자 중에서 남편 이름을 찾았다.
"전화. 합격이? 이게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긴. 척하면 척, 알아 들어야지. 전화하라고 해, 합격이한테!"
"그럼 아까 말할 것이지. 무슨 문자를 이렇게 보내?"
"지금 벌써 10 잔째야. 막 마시고 있어. 쉴 틈을 안 줘. 이러다 죽겠어. 얼른 합격이한테 전화하라고 해. 알았지?"
"그래. 죽으면 안 되지."
남편은 누가 들을 새라 소곤소곤 염탐꾼이 남몰래 작당이라도 하듯 내게 말했다.
나는 바로 상황 파악을 했다.
벌써 3일째다.
매일 술판이다.
회식이라 쓰고 '정신 나간 술판'이라고 읽는다.
"진짜 걱정돼서 잠이 안 오네. 어디 도망갈 데도 없고 어쩌면 좋을까?"
"내가 비법을 알려 줬잖아. 술 취한 척하고 미친 척하고 팀장 앞에서 토해버리라니까. 술판을 엎어 버리든지."
"어휴."
"날마다 그렇게 스트레스받고 어떻게 살아? 사람들이 무슨 술을 그렇게 좋아한대? 먹고 싶으면 먹고 싶은 사람들끼리나 먹을 것이지."
"그러게. 나도 진짜 이해 안 돼."
5일간 출장을 떠난 남편은 지레 겁부터 먹었다.
술을 좋아하는 팀장과 전혀 그렇지 않은 팀의 막내(=남편)는 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이었다.
"진짜 대단해. 저번 출장 때도 매일 술 마셨어."
"그게 가능해? 나이도 좀 있을 텐데? 몸이 어떻게 버텨?"
"나도 그게 신기하다니까. 진짜 매일 술이야."
"아니, 요즘 세상에도 그런 사람이 있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술이 좋으면 조용히 혼자 숙소 들어가서 마실 일이지 날마다 직원들 데리고 뭐 하는 짓이야?"
"정말 너무 싫다."
회식의 '회'만 들어도 진저리를 치는 남편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듣고도 믿기 힘들지만 그 팀장은 술 마시는 일에 있어서는 보통이 아니란다.
"일은 일대로 다 하고, 술은 또 술대로 다 마셔야 한다."
라고 주장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라테'타령을 시작한단다.
대충, 옛날에 내가 7급일 때는 더 했다, 지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등등의 아무 의미 없는 말들을 늘어놓는 것이다.
난 그 회식 자리에 참석한 적도 없지만 듣고만 있어도 취하는 것 같다.
"내가 신호를 줄 테니까 그때 전화해. 나 좀 살려줘."
오죽했으면 남편은 좀처럼 내게 안 하던 아쉬운 소리를 다 했다.
"애들한테도 전화하라고 하고. 알았지? 그래야 전화받는 동안이라도 좀 쉬지. 계속 마시고 있다가는 나 죽게 생겼어."
남편은 정말 간절했다.
"그러니까 적당히 시늉만 하고 말라니까. 그냥 팀장 얼굴에 술을 확 부어버려. 윗사람이면 다야? 무조건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다 하려고 그래. 회식도 하루 이틀이지, 어떻게 매일 그렇게 술을 먹여? 술 못 먹는다는데, 몸도 안 좋다는데 왜 자꾸 억지로 먹이냐고! 아직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진짜.이거 어디에 신고하면 돼?"
매번 최소한 5잔에서 10잔 정도는 기본으로 '먹인다'라고 했다.
마시라고 권하는 게 아니라 '억지로 먹였다.'라고 했다.
내 상식에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직장 상사다.
내 기억에 나는 10년 전쯤에나 그런 경우가 있었지(그것도 내가 안 마시겠다고 계속 사양하면 그만두던데), 저렇게 심한 회식은 거의 없었다.
남편의 구조 요청에 따라 나와 아이들은 시나리오까지 작성해 가며 '아빠 구출 작전'을 펼쳤다.
아이들과 한참 동안 영상통화를 하고, 다시 나와 통화를 하면서 남편은 시간을 벌었다.
그나마도 통화 시간이 10분이 넘어가자 다른 직원이 남편을 다시 강제로 끌고 가기 위해 나왔다.
남편에게 들어가자고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이렇게 전화하는 동안에는 술 안 마실 수 있잖아."
이렇게 말하는데 그 순간 나는 그가 너무 안쓰러워 눈물이 날 뻔했다.
나라도 출동해서 그 술판을 확 엎어야 하나?
무사히 1차만 하고 끝냈다며 안도하는, 어찌 보면 기쁘게까지 생각하는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짠하기도 하고, 그 팀장에 대한 역겨움이 올라왔다.
전생에 술을 못 먹어서 죽은 구신이 붙었나 왜 그렇게 술타령을 하는 걸까, 혼자서 조용히 마실 수는 없는 것일까, 꼭 직원들을 억지로 데리고 다니며 술시중을 시키며 강제로 먹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일까?
그 윗분이 매일 술을 먹고 억지로 먹인다는 사실보다, 아직도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힘없는 다른 직원을 못살게 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나는 경악했다.
공무원도 이런데, 사기업을 더할까? 그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내 상식선에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사람이다.
'적당히'를 알아야 할 것이다.
그건 회식도 무엇도 아니다.
그냥 술판이다, 아주 몹쓸 난장판.
무엇이든 지나치면 안 좋은 법인데, 그 과보를 다 어찌 받을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