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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y 28. 2023

애인 있어요...? 노노! '남의 편 있어요.'

나 혼자 세 그릇 다 먹을 걸 그랬어

< 사진 임자 = 글임자 >

"이거 좋은 쌀로 한 밥 이래. 쌀이랑 물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넣지 않았대."

"그게 뭐 별거 있을 줄 알아?"

"아무래도 몸에 더 좋지 않을까?"

"다 똑같아 어차피. 뭐 하러 그런 걸 사? 햇반이 다 거기서 거기지. 광고만 요란하고 비싸기만 하지"

"아니야. 이건 달라. 쌀부터 좋은 거랬어."

"하여튼 쓸데없는 건 사가지고."

"이왕이면 좋은 걸로 잡수라고 사다 주니까 그게 지금 말이야 막걸리야?"

"좋은 거 안 사줘도 돼! 난 그냥 12개짜리 흰쌀밥 한 박스로 된 거 그게 제일 좋아. 무슨 차이나 있을 줄 알아? 별거 없다니까 그러네."

"진짜! 별거 있다니까 그러네.(=별거 있다고 믿고 싶다.= 별거 있어야 한다.= 별거 없어서는 안 된다.=진짜 별거 없다면 내가 불리하다.)"


이런 걸 고급 전문용어로 '지지리 해 주고도 좋은 소리 못 듣는다'라고 한다지 아마?

이렇게 자꾸 나에게 목욕값을 줄 테야?


5년 만엔가 햇반을 다 사 봤다.

그 양반은 비상용으로 사놓자고 하는 편이지만 나는 반대다.

집에 쌀이 있고 전기가 들어오는데 굳이?

그 양반을 '남의 편'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문제의 그것은 3개가 들어있었고 검정 쌀밥이었고, 무엇보다 쌀과 물 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는 그 말이 나를 혹하게 했다.

물론 결코 저렴하다고는 볼 수 없는 가격이었다.

원래 가격은 거의 만 원에 가까웠으나, 마침 반값 세일 중이었다.

반값 세일의 유혹을 나는 뿌리칠 수 없었다. 그건 그 행사를 진행하는 회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나는 동방 예의지국의 주부다.

고로 구매한다.

그 올가미에 걸려들고야 만 것이다.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 경제가 돌아간다.

그래, 그 양반이 직장 생활한다고 고생하는데 햇반이라도 좋은 걸로 줘야지, 나는 단지 그 마음뿐이었다.

출장이 잦아지니 비상용으로 챙기고 다니다가 요긴하게 쓰일 날이 있으려니 해서 말이다.

물론 아무리  그 양반이 우리 가족을 위해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 보고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원래의 제 가격을 온전히 다 지불하고 그에게 먹일 그 정도까지는 솔직히 아니었으므로 이번 기회를 한껏 이용한다.

반값이라는 말이 없었다면 우리 집에 발도 못 들여놨다.

아무렴, 그렇고말고.

평소엔 밥을 그때그때 해서 먹는 편이라 내가 손수 햇반을 살 일은 거의 없다.

그 양반 부탁으로 멀고 먼 옛날에 기원전 5,000년 경에 '햇반 구입 체험활동'을 한두 번 해 본 적은 있다 물론.


"또 세일해서 샀구먼? 제 가격 주고는 절대 살 사람이 아니지, 자기가."

'또'라는 그 부사가 심히 내 기분을 상하게 했으나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세일해도 절대 싼 건 아니야!."

뜨끔했으나, 나는 '반값 세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햇반치고는 저렴한 가격이 아님을 거듭 강조했다.

귀신같이, 용하게도 그 양반은 이제 나를 너무 잘 안다.

"뭐 하러 그 돈 주고 굳이 이걸 사 와? 그냥 흰쌀밥 사면 되지."

"그래도 흑미가 좋잖아. 블랙푸드 몰라?"

"그게 뭐 별거라고. 아무것도 없다니까."

"생각해서 좋은(물론 내가 생각하기에만) 밥 사 오니까 한다는 소리가 겨우 그거야?"

"아니, 굳이 뭐 하러 별것도 아닌 걸 비싸게 주고 샀냐 이거지."

"그게 무슨 말이야? 난 이 세 개에 5만 원이었다고 하더라도 자기  건강을 위해서라면 몇 상자라도 사서 쟁여놨을 거야. 하나에 만 원씩이라도 자긴 그 정도 한 끼의 흑미 햇반을 먹을 자격이 충분히 있어. 자기가 이렇게나 고생하면서 우리 가족을 위해 힘들 게 일하는데 이까짓 반값 세일해서 산 게 뭐가 그리 비싸다고 그러는 거야? 난 자기를 위해서라면 더 비싼 햇반이라도 얼마든지 살 수도  있어!"

라고는, 입술에 침 바짝 마르는 소리 같은 건 절대 하지 않았다 물론.

그 양반 또한

"세상에 만상에! 이렇게나 나를 끔찍이도 생각해 주다니. 보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기분인걸? 당신 덕분에 내가 이렇게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거지. 역시 당신밖에 없어!"

라고는 결코 말하지도 않았다.사실혼 관계에서 ,그것도 결혼한 지 10년도 넘은 부부가 저런 발언을 했다가는 '무기징역'에 처해진다는 사실을 그 양반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 양반은 법이 없이는 못 살 사람이므로.


"내가 말했잖아. 보통 다른 햇반은 쌀 하고 물이랑 또 다른 걸 넣는단 말이야. 근데 이건 다른 첨가물이 없잖아. 그래서 아무래도 몸에 더 좋을 것 같아서 산 거라니까!"

"그 첨가물이 그렇게 문제였으면 진작에 뉴스에 나왔지. 넣으면 안 되는 걸 넣어서 문제가 생겼으면 진작 난리 났을걸?"


아니, 이 양반이 정말 보자 보자 하니까.

햇반이고 갓 지은 쌀밥이고 뭐고 간에 당장 아궁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매운 연기에 눈물 흘려가며 가마솥에 밥을 안쳐 봐야 정신을 차리려나? 그 밥 다 돼서 누룽지가 한 대접 나와도 박박 다 긁어모아 나 혼자만 먹을 거다.

그 햇반을 내가 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생각해서 좀 더 좋을 것 같아서 산 거라니까 자꾸 '매를 번다'.

이미 적립한 양도 감당 못할 지경인데  언제까지 무한정 '매' 포인트만 쌓을 텐가?


가만히 생각했다.

앞으로 출시될 햇반에는 달랑 쌀과 물만 넣는 것도 좋지만 남의 편을 정신 차리게 할 어떤 성분도 약간 첨가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 밥을 먹는 남의 편들이 아내들에게 엉뚱한 소리나 안 하도록 하는 효능이  확실히 입증된 것으로.

아마 햇반 시장에 크나큰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이라고 나만 확신한다.

이번에도 '남의 편'이 확실함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불현듯 노랫말이 떠올랐다.

* 제목 : 남의 편 있어요 (by글임자)

사람들은 모르죠 내게도 몹쓸 남의 편 있다는 걸

너무도 끔찍해 꼭 숨겨두었죠

그 사람 나만 볼 수 있어요~

내 눈에만 보여요~

우리 집에 영원히 가둬 둘 거야~

가끔씩 차오르는 울화만 알고 있죠

그 사람 남편이란 걸

나는 그 사람 갖고 싶지 않아요, 욕심나지 않아요

(이 노랫말만큼은 한 글자도 첨삭 없이  원곡 그대로 두고 싶다, 진심으로!)

* 애인있어요(이은미)  노랫말을 적극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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