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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n 28. 2023

같이 안 살아봤잖아요!

살아 보시고 다시 판단해 주시길 바랍니다.

2023. 6. 24.

< 사진 임자 = 글임자 >


"사람들이 다 그러더라. 부인 일 그만두라고 한 거 진짜 대단하다고."

"왜 또 갑자기 그 소리야?"

"아니, 저번에 무슨 말하다가 그 얘기가 나와서."

"그만두고 나서 작년부터 지금까지 본인이 나한테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에 대해서는 말 안 했지?"

"내가 처음에 반대했었다고 말했지."

남편이 그만두라고 했다는 건 엄밀히는 사실과 다르다.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아니, 아직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느낀다.

남편의 지인들에게 그는 언제나 대~단한 사람이 되고, 나는 몹쓸 사람이 된다.


말했겠지, 나는 반대했었다, 하지만 부인이 그만뒀다. 대략 이랬겠지?

"그리고 본인은 신혼여행 갔다 오자마자 국가직 그만뒀다는 그 얘기도 안 했지? 그 얘기는 왜 속 빼? 그 얘기도 해봐. 나도 사실 결혼하자마자 공무원 그만둔 전과가 있다, 집에는 그만뒀다고 말 못 하고 '휴직했다고 거짓말했었다' 이렇게 말해 보라니까. 공시생이 공부는 않고 주식에 정신 팔려서 거기 빠졌었다고 말해 보라니까. 그때 내 속을 누가 알겠어?본인도 그만둔 적 있으면서 내 얘기만 그렇게 하지 말고."

라고 당장 응수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렇게 말하면서 그의 전과를 들추는 일도 이제는 아무 의미 없어 보였다.

다 지난 일을 자꾸 끄집어내서 어쩌자는 건가 싶으면서도 뜬금없이 저런 얘기를 꺼낼 때면 정말 느닷없고 느닷없다.


나보고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눈 부라리면서, 책임감이 없네, 아이들을 망칠 수도 있네, 왜 본인 생각만 하냐, 이런 말들을 수도 없이 했던 거, 그리고 이미 일을 그만 둔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걸핏하면 미련이 남아서 "그때 그만 안 뒀으면 지금쯤 어쨌을 텐데, 나 혼자 얼마나 힘들게 고생하고 사는지 알기나 하냐?"

라는 말로 시작해서 도대체 집에서 하는 일이 뭐가 있냐, 일도 안 하면서 이런 것도 안 하냐, 대체 아이들을 왜 방치하냐, 직장도 안 다니니까 세상 물정도 모르네, 조직생활이 얼마나 힘든 줄 아느냐,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느냐, 매일 나는 힘들게 스트레스받아 가면서 고생고생 하는데 직장도 안 다니니까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사니까(도대체 뭘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산다는 건지 모르겠으나) 걱정도 없어서 오래오래 살 거다, 얼마나 좋냐 등등, 이런 말 따윈 결코 입도 뻥끗하지 않으셨겠지?


물론 남편이 하는 말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라도 그 입장이면 충분히 할 수도 있는 말이다.

누구라도 그럴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내 보라 생각하면 받아야 마땅하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말들이 계속 이어진다는 게,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되풀이된다는 게... 아니 그것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자세한 속사정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저 아내의 의원면직을 '호기롭게(전혀 호기롭게도 아니었는데)' 받아들인 세상에 둘도 없는 이해심 많은 대단한 남자라고 오해하는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사람들이 나보고 가정적일 거라고 그러더라. 상대방 말에도 잘 공감해 주고 집에서도 잘할 것 같다고."

왜 갑자기 남편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하지 그랬어? 그 사람들은 같이 안 살아봐서 그러겠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충분히 그렇게 오해 할 수 있는 일이지. 사람 겉만 봐서는 모르지. 같이 안 살아보면 아무도 내 속 몰라."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난 그냥 들은 대로 말한 것뿐이야."

남편은 강조했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딱 오해하기 좋다니까."

나는 더 강조했다.

물론 남편에겐 같이 사는 사람으로서 나만 느낄 수 있는 좋은 점, 그렇지 않은 점이 있다.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란 걸 잘 안다.

"나도 하고 싶은 말 많아. 나라고 다 마음에 드는 줄 알아?"

남편은 덧붙였다.

"다 마음에 안 들어하는 거 나도 다 알아."

정말 나는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이 그래도 내가 당신 일 그만둔다고 해도 받아들여서 대단하다고 하더라."

또 나는 무슨 말을 더 해야 할까?

그래, 대단한 일일 수도 있다.

그 사람들 생각은 그 사람들의 생각일 뿐이니까.

남편은 나의 의원면직을 허락(?) 해 준 대단한 사람이고, 나는 지금 그로부터 간헐적 원망을 들으며 살고 있다, (고 나는 나는 느낀다.) 가끔은 이 정도면 핍박 수준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물론 괜히 나만 혼자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만 그가 뱉어내는 말들, 행동들 그 많은 것들을 나는 사사로이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것이다.

나라고 해서 어찌 혼자서 직장 생활하며 고단하게 사는 남편 입장을 이해 못 하겠는가.


그가 나를 원망한 것은, 나도 그 마음을 어찌해 볼 수 없다.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남편의 지인들에게 남편은 세상 다정하고 가정적이며 부인의 결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대~단한 사람이다. 동시에 요즘  공무원 월급으로 어떻게 살려고 일을 그만두었는지, 끝까지 나를 말리지 않은 남편을 뒤늦게 탓하며 알지도 못하는 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대는 일도 지긋지긋하다.

잊힐 만하면 그런 사람들이 들쑤시는 통에 사이가 삐걱거리게 된다.

넌덜머리가 난다.

누군가의 하소연도, 원망도, 남의 일이라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쉽게 말하는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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