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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y 29. 2023

그런데 의원님, 손은 왜 잡으시는 거죠?

굳이 손까지 잡을 필요가 있었을까요?

2023. 5. 25  

< 사진 임자 =  글임자 >


"임자야, 너 지금 뭐 하고 있냐? 얼른 일어나라!"

"네???"

"저기 밖에 의원님 오셨잖아! 빨리 일어나! 얼른!!!"


글쎄요,

제가 벌써부터 일어나야 하는 거였나요?

아직 가까이 오시지도 않았는걸요.

나는 그저 내 업무에 집중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믿는다. 최소한 졸고 있지는 않았다.)이다.

능력이 없으면 눈치라도 있어야 했는데, 그 시절 나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자, 직원님들 OOO 의원님께서 오셨습니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서 주십시오."

나를 겨냥한 말인가?

뜨끔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말씀하신 분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일어섰던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당시 내 자리는 면사무소 한쪽 벽을 등지고 입구 쪽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내 눈 안에 면사무소가 훤히 다 들어왔다.

면장님께서는 벌써 의원님(나는 감히 못 알아봤지만 사람들이 의원님이라고 하니까 의원님이 맞겠지)의 두 손을 감싸 쥐고 악수를 나누면서 세차게 흔들고 계셨다. 다른 계장님들도 벌써 면사무소 입구까지 마중을 나가 두 손들을 내밀 준비를 마치셨다.

나를 비롯한 다른 직원들, 그러니까 7급부터 9급 공무원 시보(발령받은 지 한 달도 안 된 나 혼자만 해당된다.)를 비롯한 직원들(평직원?, 하위직?,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제 자리에서 일어서 있기만 했었다.

의원님이 오시는지 가시는지, 아무런 관심도 없고,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도, 여유도 전혀 없는 신규자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다만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만 빼고 다들 근무한 지 몇 년이 지난 직원들이었으니까 면사무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눈치채고 진작에 그분은 맞을 준비를 마친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규자만 속 빼놓기 있기 없기?


"지금 네 나이가 몇인데 그런 걸 일일이 다 가르쳐 줘야 하냐? 눈치껏 알아서 해야지."

라고 대놓고 핀잔을 주지는 않았지만, 어디까지나 내가 지지리 눈치도 없어서 상황 파악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지만, 사무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내게는 당황스러운 경험이었다.

물론 전날이나 그날 아침에 그분의 방문에 대해 직원 중에 누군가가 언급했을지도 모른다.

했는데 내가 새겨듣지 않았는지도.

하지만 출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이 점을 적극 강조하고 싶다. 나는 이를 '신규자 찬스'라 일컫는다.) 사람이 그곳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다 알아채는 것도, 받아들이기도 쉽지만은 않았다.

뒤늦게 눈치 없이 엉덩이를 의자에 딱 붙이고 요지부동인 나를 깊은 우물물 길어 올리듯 옆의 주사님께서 끌어올리셨다.


내가 알던, 아니지, 정확히는 TV에서 보던 그분의 얼굴이 아니다.

아, 나는 새로운 사실을 비로소 알았다.

연예인만 실물과 화면상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의원님(의원이라니까 의원인 줄 알지 밖에서 만나면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할 게 뻔한 분)은 그동안 TV에 나오던 그 분과 좀 달랐다. 아니 달라 보였다.

나는 난생처음 연예인 구경을 하는 사람처럼 '신기하게' TV에서나 보던 그분을 보았다.

내가 너무 어리숙하게 행동했는지

"아, 여기는 이번에 새로 온 신규잡니다. 발령받은 지 며칠 안 됐습니다."

라며 친절히도 그분께 소개해 주신 직원도 계셨다.

그러나, 나는 그 의원님의 이름도 정확히 알고 있지 않았다.

철없는 젊은이는 정치에 그다지 관심도 없었고 그 지역의 의원이 누구인지 크게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공무원이 되고 나니 어떤 사람이 당선되는지에 따라 공직 사회가 대단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고, 직원들 또한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하면 나라가 어떻게 된다던데, 정신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한다던데.

물론 선거 때마다 누군가를 뽑고 오긴 했지만 얼마나 마음에 담아 두기나 했었을까, 내가?

결정적으로 나는 선거 때 그분을 뽑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만 빼고 다들 의원님과는 안면이 있는 사이 같았다.

그 군중 속에서 신규자는 소외감마저 느꼈다.

의원님께서

"어이, OO! "

이러면서 알은체까지 해 주시는 데에야.

그렇다고 내가 그분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건 그분도 마찬가지였을 테고.

공무원은 어디까지나 정지적 중립의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또 그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도 같은 것 같은 느낌, 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나?


의원님이 행차하시니 볼 일 보던 민원인도 벌떡 일어나셔서 그분의 손을 부여잡으신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진심으로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내 손도 어느새 의원님의 두 손에 붙들렸음은 물론이다.

이 분, 왜 이렇게 일방적이신 거지?

나는 그냥 고개로 까딱 인사만 하고 싶은데 말이다.

"잠시만요, 의원님. 아무리 의원님이라 하시더라도 먼저 저에게 악수할 의향이 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하는 게 기본 아닌가요? 의원님이 손 내밀면 무조건 악수를 해야 합니까? 전 개인적으로 손 잡는 거 별로 안 좋아합니다. 남자친구랑도 손 잘 안 잡아요. 남의 손 닿는 거 기분 별로거든요. 게다가 손이 신체 중에서 세균이 가장 많다잖아요? 벌써 많은 직원들과 악수를 하고 오시지 않았나요? 이 사람 저 사람 손 다 잡고 다짜고짜 제 손을 덥석 잡으시면 어떡합니까?"

라고는 결코 말하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면사무소에 의원님도 출동을 하시구나.

그분 뒤에 몇 분(수행비서를 비롯해서)이 또 뒤따라 들어오셨고 순식간에 좁은 면사무소는 사람들로 북적대기 시작했다.

그런 분위기, 나는 정말 적응되지 않았다.

그보다도 난생처음 만난 이에게 다짜고짜 손을 붙들린 그 뜬금없는 기억이, 내 손을 우악스럽게도 쥐고 흔들던 그  기억이 아직도 느닷없을 뿐이다.


아마도 암암리에 나는 알지 못하는 공무원의 의무가 또 하나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의원님이 방문하시는 날에는 마음껏(물론 공무원의 의사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악수해 줄 의무', 그런 것 말이다.

모든 게 성문화되어 있지는 않을지언정 생각해 보면 은근한 의무인 듯 의무 아닌 의무가 참으로 많기도 많았다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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