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May 21. 2023

부녀가 만들었다, 마늘종 장아찌

김장하는 마음으로

2023. 5. 10. 맛있어져라~

< 사진 임자 = 글임자 >


"이것을 다 잘게 잘라야제 그대로 하믄 쓴다냐?"

"바쁜데 언제 다 자르고 있어?"

"내가 할란다."

"길게 해서 김밥 쌀 때 단무지 대신 넣으면 되는데. 그럼 아빠가 잘라 주셔. 내가 와서 장아찌 만들게. 다 씻어 놨으니까 물기 잘 말리시고."


어떻게든 장아찌를 만들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나와 그래도 '이왕이면' 할 거면 제대로 하자는 주의의 아빠는 종종 나와 부딪치곤 한다.

음식을 만드는 일에 있어서는 거의 내가 주가 되긴 하지만, 옆에서 거드는 것 하나 없이도 아빠는 충고와 조언의 말씀을 아끼지 않으신다.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잔소리'라고 한다지 아마?

(말이 그렇다고요, 아빠.)

하지만 올해는 엄마가 안 계신 관계로 아빠와의 협업은 불가피해 보였다.


"이거 튀김 해 보믄 어쩌겄냐?"

"또 어디서 뭘 보셨어? 이런 걸 무슨 튀김을 한다고 그러셔? 매울 것 같은데?"

"맵기는 뭣이 맵다냐? 익으믄 괜찮제."

"그렇긴 하겠네. 한가할 때 한 번 해 봅시다."

마늘종 튀김을 해 보라고 하신다.

태어나 그런 음식은 듣도 보도 못한 나는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음식인가 싶었다.

아빠는 언제나 새로운 걸 시도하길 좋아하신다.

덕분에 엄마와 내가 피곤해질 때가 있다.

밖에서 농사일에 매달리지 않을 때면, 70대의 아빠는 아이들처럼 핸드폰을 들여다보시며 각종 정보과 뉴스를 내게 전달해 주시곤 한다.

건강에 관한 것이 8할이다.

게다가 거기엔 내가 (의무적으로) 시도해 봐야 하는 새로운 것들이 꽤나 있다.

그럴 때면

"그런 것은 뭐 하러 만든다냐? 바쁜디."

라며 엄마는 언제나 아빠의 최신 추천 메뉴를 가뿐히 흘려듣곤 하셨다 물론.


그나마 나와 아빠는 죽이 잘 맞아서 내가 아빠의 요구 조건을 들어줄 때가 많다.

아빠는 서 너 번 '마늘종 튀김'을 언급하셨지만, 매우 바쁜 나는(직장이 없다고 해서 맨날 집에서 놀고 있는 게 아니므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일주일, 이 주일을 그냥 흘려보내버렸다.

참회하는 마음으로 대신 마늘종 장아찌를 만들기로 했다.

병원에 입원하지 않으셨다면 엄마가 내 일을 좀 거들어 주셨을 것이다.

엄마가 집에 계셨다면 아마도 아빠는 엄마를 재촉해 끝끝내 마늘종 튀김을 해서 대령하라고 하셨을 것이다.

엄마는 귀찮아하면서도 결국엔 하셨을 테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엄마는 당신의 몸이 안 좋은데 한낱 마늘종 튀김 같은 것이 안중에 있을 리 없다.

엄마가 입원 중이 아니었더라도 아빠는 계속 만들어 달라고 하시고 엄마는 귀찮다고 하실 것이고, 그러면 아빤 나에게 '엄마가 그런 것도 안 만들어 준다'며 거절당한 사연을 구구절절 읊을 것이며 마지못해 내가 그것을 만들어내고야 말 것이다.


"엄마, 집에 마늘종 장아찌 만들어 놨네. 나중에 냉장고에 넣어야겠어."

"얼마나 했냐? 쬐끔만 하제 그랬냐?"

"조금 했어. 안 그래도 바쁘고 일도 많은데. 올해는 10킬로도 안돼."

"뭣한디 그라고 많이 했냐, 귀찮기만 한디."

"그것이 뭐가 많아? 나눠 먹으면 되지."

"아이고, 귀찮다."

원래 내 몸이 아프면 만사가 귀찮아지는 것이다.

정작 장아찌를 만든 사람은 나인데 왜 엄마가 귀찮아하시는 거지?

언제부터인지 엄마는 살림을 귀찮아 하기 시작하셨다.

몸이 점점 안 좋아지고 난 후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아플 땐 먹는 일, 그 단순하고 하찮아 보이는 그런 일까지도 짐스러울 때가 있는데 그 대단한 '살림'이란 것은 오죽하랴.


마늘종을 제때 뽑아주지 않으면 마늘이 굵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영양분이 위로 다 올라가기 때문에 초장에 잡아줘야(?) 한다며 엄마는 5월 초가 되면 마늘종을 뽑아 반찬을 만들어 주시곤 했었다.

올해는 아빠 혼자서 농사일을 도맡아 하시다 보니 일에 쫓긴다.

내가 출동하는 수밖에 없다.

단순히 서서 마늘종을 뽑기만 하는데 허리가 아프다.

겨우 몇 시간 했을 뿐인데 감히 힘들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저걸 다 뽑아서 여기저기 나눠먹을 생각을 하니 그 욕심이 진통제가 된다.

하루쯤 허리가 끊어지게 일한다 해도 죽을 리는 없을 것이다.


정말 올해는 마늘종 장아찌 흉내만 냈다.

그동안은 기본적으로 10킬로 이상씩은 만들었는데 살짝 아쉬움이 남는다.

지인들에게 실컷 나눠주고도 많이 남은 것은 장아찌가 딱이다.

이튿날 집에 가니 아빠가 그 많은 마늘종을 길이도 서로 비슷하게 다 잘라두셨다.

언제나 엄마는 '조금만'이라고 하시고, 아빠는 '가능한 한 많이'라고 하신다.

나는 어쩔 땐 '조금만' 어쩔 땐 '최대한 많이'다.

나는 융통성이 있는 딸이니까.

이번엔 아빠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있는 대로 모조리, 그러나 가볍게 10 킬로만' 만들었다.

지금쯤 친정 냉장고에서 새콤 짭짤하게 맛이 잘 들고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 집 핵인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