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7시 12분, 버스 카드를 찍습니다. ‘삑’하는 단말기 소리는 일종의 신호탄입니다. 회사원이라는 무거운 외투를 벗어던지는 소리이자,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내 방공호로 향하기 위한 티켓이죠.
나는 지금 6018번 버스, 맨 뒷좌석 창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곳은 도시의 틈, 아니 완벽한 진공 상태입니다.
차창 밖의 풍경은 낡은 무성 영화처럼 빠르게 흘러가는데, 내 몸은 정지해 있습니다. 관객 대신 좌석에 앉은 영화 포스터가 된 것처럼 기묘합니다. 하지만 이 이질감이 오히려 나를 안심시킵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강박도, 어딘가에 정착해야 한다는 의무도 없습니다. 남이야 나를 보건 말건, 나는 스크린만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이어폰에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멜로디가 흐르고, 시선은 차창에 비친 희미한 내 얼굴과 그 너머의 차량 헤드라이트 사이, 초점을 잃은 그 어디쯤에 맺혀 있습니다.
이 좁은 좌석 위에서 나는 종이 한 장일 뿐입니다. 팀장님의 눈치를 봐야 하는 사원도 아니고, 부모님의 걱정을 듣는 자식도 아닙니다. 그저 승객이라는 무미건조한 이름 하나만 남습니다. 앞자리에 선 승객만이 얼른 자리가 나길 바랄 뿐, 그 누구도 내게 다른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의 밀도가 가장 빽빽한 이 공간이 가장 완벽한 고독의 요새가 되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닿아 있는 옆 사람과의 어깨. 애써 움직이지 않으려는 그 예의 바른 무관심이 역설적으로 나를 가장 편하게 만듭니다.
혹자는 이 시간을 ‘버려지는 이동 시간’이라 부르며 효율성을 따질지도 모릅니다. 단어장을 보거나, 밀린 뉴스를 봐야 한다고 말이죠. 허나 효율성을 추구하는 그 순간, 이 공간이 또 다른 일터가 되어버릴지 모른다는 당혹감이 앞섭니다.
그래서 나는 이 40분을 기꺼이 멍하게 낭비합니다. 이동과 이동 사이, 역할과 역할 사이. 막대기처럼 뻣뻣했던 온 신경이 느슨해져 부드러운 곡선이 됩니다. 그제야 내 정신은 무언가 채워 넣을 수 있는 빈 괄호가 됩니다.
나는 스쳐가는 가로등 불빛으로, 흘러가는 쓸데없는 잡념으로 그 괄호 속을 부지런히 채워 넣습니다. 그렇게 무용한 것들을 채우고 나서야, 비로소 내 안의 딱딱한 불순물들이 빠져나가는 기분입니다.
“이번 정류장은…”
안내 방송이 나옵니다. 이제 한 번 채워낸 괄호를 내 방공호에서 다시 한번 완전히 비워버릴 차례입니다. 온전히 노곤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절차입니다. 빈자리를 바라던 내 앞 승객의 미소는, 내게도 은은한 미소를 안깁니다.
버스에서 내려, 찬 바람을 흠뻑 맞습니다. 그리고 내 방공호의 비밀번호를 누르며 생각합니다.
내일도 저는, 이 괄호를 만들어낼 예정입니다. 유일하게 나를 모르는 이 40분의 틈만이 허락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