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온틈 Essay

3만 볼트의 안부

by ontm

소리가 먼저였는지 통증이 먼저였는지 알 수 없다. 택시 문손잡이를 잡으려던 손끝에서 파란 스파크가 튀었다. 아주 짧고 신경질적인 비명. 택시 안으로 몸을 구겨 넣은 후에도 손끝은 여전히 아릿하다.


기사님은 백미러로 나를 힐끔거린다. 나는 죄를 지은 사람처럼, 혹은 전기 실험의 실험체라도 된 양 몸을 움츠린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주머니에 손을 푹 꽂고 핸드폰을 꺼내 검은 화면만 들여다본다.


건조하다. 서울의 습도가 30% 아래로 떨어졌다. 이는 곧, 내 몸이 걸어 다니는 발전소가 되었다는 뜻이다. 울 함량이 높은 코트, 그 안에서 마찰하는 폴리에스테르 니트. 한껏 비벼진 슬랙스와 피부는 갓 만난 연인이라도 된 양 잔뜩 엉겨 붙어 있다.


겨울만 되면 나는 세상과 불화한다. 날카로운 칼바람 탓일까, 혹은 엎치고 덮친 한 해의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이른 탓일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때도, 사무실의 철제 손잡이를 잡을 때도, 억지 미소를 지으며 명함을 건넬 때도 정전기의 공격을 받는다. 아니, 공격을 받은 건지 가한 건지 확신할 수 없다. 잔뜩 찌푸린 미간에서 새어 나온 무의식의 발현일지도, 혹은 제발 미간 좀 펴라는 따끔한 일갈일지도 모르겠다.


인파로 가득한 목적지에 택시가 멈춘다. 코트 주머니로 손을 단단히 감싸고, 머플러 속으로 턱을 밀어 넣고 그 틈을 부단히도 헤집는다. 그러다 어깨들 틈 사이로, 환하게도 흔들리는 손 하나가 보인다. 방공호 깊숙한 곳에서 옴짝달싹 않던 나를 기어이 세상 밖으로 불러낸 친구다.


나를 불러낸 건 ‘오랜만에 얼굴 한 번 보자’는 짧은 이유였지만, 내가 이곳까지 온 건 수많은 부연 설명 때문이다. ‘연초이니 한 번 쯤은’이라는 핑계, ‘책임 없는 외출’이라는 해방감, 사실은 사람의 온기가 그리웠다는 작고 구질구질한 이유들.


마지 엄중한 비즈니스 미팅이라도 되는 듯, 친구가 깨끗한 미소로 악수를 청해온다. 코웃음을 한번 치고 무방비하게 손을 내민다.


탁. 여지없이 파란 불꽃이 튄다. 친구는 손을 터는 대신 멋쩍게 웃으며 말한다.


“많이도 반가운가 봐? 짜릿하네, 아주.”


그 말에 픽, 하고 김 빠지는 소리가 난다. 내 입에서. 잔뜩 웅크리고 있던 어깨가 툭 떨어진다. 아프다고 호들갑을 떨거나, 왜 핸드크림을 안 발랐냐고 타박하는 대신 던진 그 농담이 묘하게 통쾌했다.


“그러게. 내가 오늘 좀 고압적인가 봐.”


나는 짐짓 거만하게 대꾸하며 얼얼한 손끝을 코트 주머니에 다시 찔러 넣는다. 하지만 아까와는 다르다. 주머니 속은 여전히 까슬거리지만, 더 이상 그곳이 나를 숨기는 차가운 방공호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겨울 내내 나를 괴롭히던 정전기는, 세상과 불화하느라 생긴 가시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저 갈 곳을 찾지 못해 내 안에서 맴돌던 갈 곳 잃은 전압이었나 보다. 혼자 웅크리고 있을 때는 나를 찌르는 날카로운 흉기였는데, 누군가와 닿아 흐르고 나니 비로소 따뜻한 체온의 일부가 된다.


고개를 살짝 들어 주위를 바라본다. 거리는 온통 짝을 지어 걷는 사람들뿐이다. 저들 사이에도 수없는 스파크가 튀고 있을 테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만 개의 파란 실들이 이 도시를 촘촘하게 엮고 있는 상상을 한다.


건조한 서울의 밤. 습도는 여전히 30% 아래다. 하지만 마음의 습도와 온도는 이제야 적당해진 것 같다.


3만 볼트의 짜릿함이 비로소 안온함으로 바뀌는, 1월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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