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와 운전

운전대를 놓으라고?

by 엘 리브로

운전대를 놓으라고? 아버지는 노발대발하셨다. 치매 환자의 위험천만한 운전과 그로 인한 교통사고에 대한 뉴스를 접하고 나서 불안감에 휩싸인 나는 아버지에게 운전을 그만하시는 게 어떠냐고 넌지시 얘길 꺼냈다.

"그게 뭔 소리냐? 차 없이 어떻게 다니라고?" "집 앞까지 시내버스 들어오잖아요. 시내까지 운동 삼아 걸어 다니셔도 되고."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또 그 '내가 알아서'라는 단골 멘트다.

"아네, 아빠 지난번에도 신호위반이랑 과속 딱지 또 받았잖아요. 요즘 길도 잘 헷갈리시는 것 같던데. 안전하게 대중교통 이용하시면 좋잖아요."

"내가 뭘 얼마나 위반하고 다닌다는 거냐. 운전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아빠 기분은 알겠는데요, 연세 드시면 그게 생각처럼 몸이 잘 안 따라줄 수도 있대요. 아무래도 위기 상황에서 반응이 생각만큼 빠르게 안 나온대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누굴 노망난 노인네 취급하는 거냐?"

아버지랑 대화가 길어지면 같은 말이 계속 반복되고 점점 화가 났다. 처음엔 두세 차례 부드러운 말로 설득을 해보려 하지만 본인은 아무 문제가 없다며 계속 고집을 부리는 모습에 내 목소리는 짜증이 묻어나고 나중엔 소리를 지르게 되었다. 그러면 아버지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고 나중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그딴 소리 할 거면 당장 너네 집에 가라!"라고 했다. 그러면 나는 정말 나가버렸다.



학교에서 수업을 하다가도 수시로 전화벨이 울렸다. "서부 경찰서입니다." "동부 경찰서입니다." "북부 경찰서입니다."

하나같이 아버지의 뺑소니 운전으로 신고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아버지를 모시고 동서남북 경찰서를 다 찾아다녀야 했다. 내가 언제 사고를 냈냐고 그 장소에 간 일도 없다고 펄쩍 뛰시던 아버지는 상대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을 보여주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생각해 보니 며칠 전에 거길 간 것도 같긴 하다..." 주로 병원이나 약국 아니면 커피숍에 다니시면서 주차되어 있는 다른 차를 스치고 와버리거나 후진하면서 살짝 부딪치거나 해놓고 아무 조치 없이 그냥 와버려서 신고를 당하는 것이었다. 한 번은 주행 중에 신호위반으로 회전하면서 다른 차량의 운전석에 살짝 부딪쳐 운전자와 연락처를 주고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며칠 동안 소식이 없고 전화도 안 받자 상대방이 신고를 했다. 사람이 다친 것은 아니었지만 얼마나 화가 났을지 짐작이 가는 상황에서 아버지의 치매 상태를 설명하며 사과를 했다. 상대 운전자는 그제야 화를 풀었고 우리 쪽에서 차량 수리를 해주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합의를 해주지 않으면 법원으로 사건이 넘어가고 벌금을 내야 한다고 경찰이 설명했다. 그 운전자는 생각해 보고 연락을 준다더니 다음 날 200만 원을 요구했다. 사람이 다친 것도 아니고 운전석 문만 긁힌 것이었는데 말이다. 지금 경제적으로 힘드니 죄송하지만 금액을 낮춰주시면 안 되겠냐고 사정해 봤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차라리 벌금형을 택하기로 했다. 별것 아닌 걸로 돈 없는 노인네를 이용해서 한몫 챙기려 드는 여자가 괘씸해서 합의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벌금은 150만 원 정도 나왔던 것 같다.


안저 신문고에 글을 올렸다. 치매 환자의 운전을 법적으로 금지해달라고 읍소 수준의 글을 썼다. 이러다 정말 큰 사고가 날까 봐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러나 장문으로 보내온 담당자의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아버지를 설득해서 자동차 키를 뺏거나 폐차를 하고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라는 것.

대화로 가능했으면 진작했을 일이다. 또 다른 방법은 치매 진단 소견서를 가지고 아버지를 직접 모시고 법원에 가서 증명을 하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아버지의 동의가 필요하다니 그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후로도 아버지는 거의 매일 운전을 하며 외출을 했다.


엄마가 허리 수술 후 3개월 동안 요양병원에 계시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매일 하루에 두 번씩 병원에 드나들었다. 다른 환자들의 눈치가 보여서 하루에 한 번만 오라고 엄마는 얘기했지만 아버지는 늘 잊어버렸다. 혼자 계시는 게 적적해서라고 해석하고 싶었다. 때로는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가던 길을 바로 되돌아가서 그날 처음 가는 것처럼 행동하거나 엉뚱한 길로 잘 못 들어서서 긴 시간이 소요되기도 했다. 찐 달걀 한 개를 달랑 들고, 아니면 두유 한 개를 전해주기도 했다. 집에서 차로 40분 거리의 병원까지 왕복 운전을 할 때마다 사고가 날까 봐 조마조마했다. 사고 다발 터널 구간도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아버지의 휴대폰에 몰래 위치 추적 앱을 다운로드해 내 휴대폰과 연동해서 매일 실시간으로 확인을 했다.


결국 1년 이상의 기간을 난 아버지의 운전 문제로 매주 어르고 달래다가 다퉈야 했고 어느 날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 아버지를 몰아세웠다.

아버지의 귀가 시간이 늦어질 때마다 엄마의 불안은 극에 달했고, 수시로 날아오는 과태료, 범칙금 고지서를 처리할 때마다 나는 화가 나곤 했었다.

"더 이상은 안돼요, 더 큰 사고가 나기 전에 운전을 그만하셔야 된다고요!"

"내가 운전 경력이 얼만데 그런 말을 하는 거냐?"

"아버지, 제발... 다른 어르신들도 차츰 민첩성이 떨어진다고 스스로 운전을 그만두겠다고 하신대요.

그냥 편하게 택시 타시거나 멀리 이동하실 땐 제가 모시고 다닐게요."

"됐다! 절대 그럴 일은 없다. 내가 운전 못할 때까지만 살아라!"

난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며 폭발하고 말았다.

"알았어요. 오늘 이후로 발길 끊을 거예요. 생활비도 안 드릴 거고요. 노령연금 30만 원으로 생활비도 하시고 관리비, 공과금 다 내고 자동차도 계속 타고 다니세요!"


나의 치사한 협박에 아버지도 몹시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며 자동차 키를 집어던지셨다.

"어디 네 맘대로 해라. 차를 팔던지 폐차를 하던지 네 맘대로 해!"

얼른 차 키를 집어 들고 밖으로 나가 휴대폰으로 검색해서 폐차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를 가져가려고 레커차가 오는 동안 나는 아버지의 차 안에서 고급 털 방석이며 등산용 스틱 등 쓸만한 물건들을 꺼냈다.

차는 언제 어디서 박았는지 보닛 아래 펜더가 떨어져서 덜렁거리고 있었다. 업체에서 폐차 등록까지 대행해 주기로 했다.

진작 처분했어야 했지만 그래도 그 상황에서는 마음이 아팠다. 아버지가 10년 이상 애지중지했던 건데...

" 오래 탔다. 죽기 전에 한 번쯤 더 새 차로 바꿔야겄지?"

아버지는 가끔 그렇게 말하고 씩 웃으셨다.


혹시라도 중고차 값을 받을 수 있을까 했으나 무리였다.

차에서 꺼낸 물건을 들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을 때 아버지는 나를 쳐다보지 않고 멍한 표정으로 TV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힘없이 숙여진 구부정한 등을 보자 눈물이 흘러나와 얼른 베란다로 나갔다. 내 손에 들려있던 두툼한 털 방석을 보고 엄마는 "그걸 뭐 하러 가져왔냐?"라고 했고, 아버지는 "너 필요하면 가져가라" 하셨다.

"지금은 더워요, 담에 가져갈게요." 하고 방석을 베란다 구석 선반에 두었는데 나중에 아버지는 강아지의 방석으로 사용하셨다.


그렇게 강제로 아버지의 차를 폐차시키고 집으로 가는 길, 운전대를 잡고서 많이 울었다. 아버지를 위해서, 안전을 위해서라는 명분도 그 슬픔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치매로 직장생활을 할 수 없게 된 아버지의 유일한 낙을 나는 그렇게 빼앗아버린 것이다.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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