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강아지

강아지 돌보기는 치매환자에게 좋을까?

by 엘 리브로

내가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늘 집에서 개를 키웠다. 어린 강아지를 데려와 두세 달쯤 키우면 제법 덩치가 커졌는데 어느 정도 자란 개는 마당 한 모퉁이에 놓인 커다란 개집 옆에 묶여 지내게 되었다.

아버지는 나무판자에 못질을 해서 튼튼한 개집을 만들었고 안에 헌 이불이나 옷가지를 넣어 폭신한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학교에 갔다 오면 강아지를 끌어안고 뒹구는 나에게 늘 "벼룩 옮을라, 너무 가까이 있지 말아라" 또는 "사람 손 타면 개가 안 큰단다." 하는 잔소리를 하면서도 은근히 강아지를 좋아하셨다.


아파트에서 살게 되면서부터 우리 집에서는 더 이상 개를 키우지 않았다. 세월이 어느덧 30년 이상 흐른 뒤에도 여전히 개는 마당에서 키우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다 몇 년 전 사촌 여동생이 키우기 시작한 작은 강아지를 자주 돌보게 되면서 난 차츰 아파트에서도 강아지와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1년 동안 반려동물 관련 방송 프로그램들과 유투버들의 영상들을 보면서 고민하다가 드디어 강아지를 입양했다. 유기견 보호소에 있던 생후 2개월 된 강아지를 데려왔고 아버지에게도 자주 데리고 갔다.

엄마는 동물을 싫어했지만 워낙 작은 꼬물이가 귀여운 듯 쓰다듬기도 했고 아버지는 손주 보는 것처럼 좋아했다.

"우리도 하나 키워볼까?" 하는 아버지의 말씀에 엄마는 펄쩍 뛰며 손사래를 쳤지만 난 반색했다.

치매환자를 다룬 TV 방송에서 반려동물을 돌보는 것이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된다는 사례를 봤기 때문이다.


종일 TV 앞에만 앉아계시는 것보다 강아지 산책시키고 배변판도 치워주면서 활동량을 늘리는 것이 아버지의 건강에 좋다고 엄마를 설득했다.

정서적으로도 도움이 되고 인지적으로도 자극이 많이 될 것이라는 나의 말에 엄마는 허락하셨다.

그렇게 해서 나의 반려견과 남매인 수컷 강아지를 데려오게 되었다.


갈색의 치와와 믹스 견종을 아버지에게 보여드리자 "지난번에 데려온 하얀 놈이 더 이쁘더구먼..." 하시며 아쉬운 표정을 지으셨다.

사실 누가 봐도 같은 배에서 한 날 한 시에 태어났다고 보기 힘들 만큼 두 녀석은 완전히 다른 외모를 가졌다.

내가 2주 정도 먼저 데려왔던 암컷은 머리와 엉덩이, 등에 검정 털의 무늬가 있는 포동포동한 흰색 강아지였다.

아버지의 강아지는 마르고 크기가 더 작았으며 전체적으로 짙은 갈색이었고 목에서 가슴 쪽으로 순백의 털이 덮고 있었다. 포동포동 강아지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까부는 천방지축이었고 비쩍 마른 갈색 강아지는 얌전하고 겁이 많았다.

아버지는 은근히 하얀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하셨지만 2주 사이에 두 딸들과 나는 정이 흠뻑 들어버려서 바꿀 수가 없었다.


엄마는 강아지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전동 침대에 눕거나 앉아서도 팔을 침대 아래로 늘어뜨려 강아지를 한 번씩 쓰다듬었고 가끔 내가 침대 발치에 올려두어도 싫어하지 않았다. 동물을 정말 싫어했었는데 병든 몸으로 갇혀있다 보니 뭔가 의지할 만한 대상이 필요했나 보다.

단기 기억이 저장되지 않아 방금 했던 얘기도 잊어버리고 계속 반복하는 아버지와 티격태격 싸우면서도 강아지의 재롱을 보면서 금방 웃음을 되찾곤 했다.


보호소에서 2주 늦게 나온 아버지의 강아지와 누이인 나의 강아지

버지는 사랑이를 데리고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산책을 나가셨고 집 근처 유원지 가는 길에 있는 카페에 들러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간혹 배변판을 비우지 않아서 밤에 봐놓은 소변이 거실 바닥으로 넘쳐있을 때도 있었고 대변을 치우지 않아 냄새가 날 때도 있어서 요양보호사가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래도 대체적으로 사랑이는 이름처럼 사랑을 받고 있었다. 아버지 방식의 사랑이었다.

TV를 볼 때도 무릎에 올려놓고 쓰다듬었고 빵이나 고구마 같은 간식도 나눠먹고 밖에 나갈 땐 항시 데리고 다녔다.

그런데 사랑이가 커가면서 차츰 베란다에 묶어두는 시간이 많아졌다. 베란다가 너무 더우니 실내로 들여보내라는 나의 말에 "개를 마당에서 키우는 것이지 더럽게 방에다 키우는 게 말이 되냐?"며 화를 냈다. 여름엔 너무 더워서 절대 안 된다고 했더니 아버지는 거실의 화장실과 주방 사이의 벽에 못을 박아 강아지 목줄을 묶어두었다. 줄을 길게 해 주자는 나의 요구사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배변판 바로 옆에서 웅크리고 자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친정집에 갈 때마다 목줄을 풀어주는 나와 묶으라는 아버지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곤 했다.

"묶어두시기만 할 거면 제가 데려다 키울 거예요!"

"뭔 소리? 내가 언제 묶어두기만 했다고? 풀기도 하고 묶기도 하는 것이지. 상관하지 말아라!"


사랑이는 나와 산책을 하기도 하고 집안일을 하는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놀다가 내가 집에서 나올 때면 따라나서려는 걸 아버지에게 붙들려 구슬프게 울곤 했다.

'사랑아 미안해, 묶여있게 해서 너무 미안해...' 친정에 갔다가 오는 길엔 늘 사랑이가 마음에 걸렸으나 아버지의 친구 역할을 해주는 사랑이를 두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차츰 행동반경이 좁아져서 집과 집 근처의 유원지, 동네 카페만 왔다 갔다 했다. 같은 카페에 아침저녁으로 가기도 했고, 낮에 드신 단팥죽을 저녁에 또 드시면서도 너무 오랜만이라고 했다.

주중에는 요양보호사가 점심을 챙겨드리고 저녁에 드실 반찬을 만들어놓고 갔다. 주말이나 공휴일엔 내가 반찬을 가지고 가거나 장을 봐서 음식을 만들어놓고 포장 음식을 사다 드리기도 했다.

그렇게 2년 정도 강아지를 돌보면서(어쩌면 강아지가 아버지를 돌본 것인지도...) 치매환자인 아버지와 와상환자인 엄마의 일상은 별 탈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사랑이의 정기 예방접종이며 동물병원 진료, 목욕시키기, 이곳저곳 병원에서 부모님의 약을 타다 드리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운전을 그만둔 후로 아버지는 멀리까지 나가지 않았고 길을 잃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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