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카드 빚

경매로 넘어갈 뻔 한 친정집

by 엘 리브로

아버지는 한 두 달에 한 번씩 급하다며 200~300만 원 정도를 빌려달라고 하셨다. 통장에 입금해 드리면 며칠 혹은 1주일 이내에 다시 되돌려 주셨는데 신용카드 대금을 내는 것이었다. 보험회사에서 수수료를 받아서 갚아주신다고 하셨고 빌려 가신 돈은 어김없이 입금이 되었다. 수수료 입금일과 카드대금 결제일이 달라서 그러려니 했다. 그렇게 매월 돈을 빌려가신 것이 1년이 넘었는데 어느 날 친정집에 가보니 모 카드회사에서 연체금에 대한 독촉장이 와있었다.

"이게 뭐예요? 카드대금 연체됐어요?" "별거 아니다, 신경 쓰지 마라."


언제부터인가 각종 고지서며 우편물들이 쌓이기 시작했지만 내가 일일이 열어서 확인하는 것을 아버지는 몹시 싫어하셨다. 가끔 아버지가 집에 안 계실 때 고지서를 열어보면 각종 세금들과 신용카드 사용 대금, 카드사에서 대출받은 내역들이 수두룩했다. 어떤 것들은 연체된 날짜가 오래돼서 현재 납부가 된 것인지, 연체료가 더 붙어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해당 기관이나 카드사에 전화를 걸어 자세히 물어보려고 하니 본인이 아니면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내가 지금 알아보자고 하면 아버지는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신경 꺼라"라는 대답으로 일관했고 좀 더 강하게 얘기하면 불같이 화를 내셨다. 뭔가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는 느꼈으나 개입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집이 경매에 넘어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요양보호사를 통해서였다.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와상으로 누워계시는 엄마가 요양등급을 받아 하루에 3시간씩 주 5일 요양보호사의 재가서비스를 받고 계시는 중이었다. 청구서는 자꾸만 쌓여가고 법원에서도 우편물이 오기 시작했으나 아버지는 봉투를 열어보지도 않고 이곳저곳에 방치하고 있었다. 주말에만 친정에 드나들었던 나는 관공서와 카드회사, 은행 등을 방문하며 일을 처리하기 위해 금요일에도 친정에 가게 되었다. 주 4일 일하는 파트타임이었기에 가능했다.

우선 급한 불부터 꺼야 했다. 밀린 카드 대출금을 갚고 법원에 경매절차 중지를 요청하는 등 할 일이 많았다. 한 숨 돌릴만하면 또 다른 카드사에 연체된 금액 때문에 다시 경매로 넘어갈 위기가 왔다. 나는 보험 약관대출을 받고 연금보험을 해지하는 식으로 아버지의 카드 빚을 갚았지만 다른 카드사의 연체금 독촉 전화가 수시로 걸려왔다. 아버지는 시도 때도 없이 돈 없냐고 곧 갚아줄 테니 빌려달라고 했고 난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카드가 몇 개냐고, 얼마나 빚을 진 거냐고... 지금도 카드사에 빚을 못 갚아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는데 무슨 수로 나한테 갚을 거냐고. 아버지에게 소리를 질렀지만 사실은 나 자신에게 화가 났었다. 그 지경에 이르도록 아무런 눈치도 못 챈 나에게...


아버지는 그동안 경제적으로 힘들면서도 내색을 안 했고 여러 개의 카드로 돌려 막으면서 생활비를 메꿨던 것이다. 치매로 인해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것이 혼자 감당하기에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을 텐데 본인은 그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돈에 대한 걱정과 집까지 찾아와 문을 두드리고 소리쳐대는 채권추심단의 독촉에 엄마는 불안증과 불면증에 시달렸고 아버지의 판단력도 점점 더 흐려졌다. 그 와중에도 새로운 카드를 발급받으라는 전화가 수시로 걸려왔고 발급 신청을 하는 아버지의 전화기를 낚아채며 난 소릴 질렀다.

"지금 장난해요?, 돈 몇 십만 원만 연체돼도 강제경매 넘기면서, 빚 갚고 카드 해지했더니 또 새 카드 신청하라니, 당신들이 빚쟁이 양산하고 있는 거 알아요?" 애꿎은 카드 판매원한테 화풀이하고 있는 나.

아버지 앞으로 집과 차가 있으니 연체대금만 없으면 어느 카드사에서건 쉽게 카드 발급이 됐다.


집을 팔아서 빚을 갚고 나면 두 분이 사실 집을 새로 구해야 했다. 40년 된 변두리의 작은 아파트라서 시세가 낮아 빚 갚고 남을 돈이라곤 원룸 월세 보증금 정도였다.

아버지는 그런 모든 상황에 대해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했고 큰소리치기만 했다. "누구 맘대로 집을 판다고? 내 집 놔두고 뭔 이사를 가? 내가 언제 니들한테 빚 갚아달라고 했냐? 내가 다 알아서 할 거니까 간섭하지 말아라! 내가 알아서 처리한다니까!"

친정집을 내놨지만 집을 보여주려고 부동산 중개인이 오면 아버지는 집 안 판다고 사람들을 내몰았다. 내가 어렵사리 아버지를 설득해서 자리를 만들어 거의 계약을 하게 되는 상황에서도 갑자기 없던 일로 만들어버렸다.


결국 아버지가 사시는 집을 동생에게 팔고 그 돈으로 모든 카드 빚과 주택담보대출을 갚기로 했다. 남은 돈은 내가 관리하면서 생활비로 쓰시도록 했다. 작은 평수의 월세나 영구임대 아파트를 구해서 사는 게 현실적으로는 타당했으나 다른 곳으로 절대 이사를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아버지를 설득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전동침대에 누워만 지내는 엄마에게도 베란다 밖 뒷산의 경치를 볼 수 없고 살림을 다 버리고 좁은 집으로 들어가 산다는 것은 가혹한 일이었다. 두 분 사시는 동안은 그 집에서 편히 지내시고 나중에 집을 팔게 되면 남동생과 내가 절반씩 지분을 갖기로 했다. 나와 동생은 각자 마이너스통장, 보험 해지, 적금 해지 등으로 돈을 마련했다.

그렇게 빚을 정리한 뒤 아버지는 치매로 요양등급을 받아 재가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엄마와 아버지 두 분 합산해서 하루에 5시간씩 주 5회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으며 일상생활은 큰 불편 없이 유지되는 듯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치매 증상은 나날이 심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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