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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 리브로 Mar 25. 2023

부창부수란 이런 것

우리 동네 흰둥이 6

밤엔 아직도 칼바람이 부는 날도 있지만 봄 햇살은 따뜻해졌고 한낮엔 덥기까지 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겨울 강추위에 꽁꽁 얼어붙은 물그릇을 녹여주기 위해 거의 매일 보온병에 끓는 물을 담아  흰둥이에게 갔고 지금도 주중에 두세 번, 주말엔 빠뜨리지 않고 보러 가고 있다.

처음엔 사람의 손길이 그리워 낑낑대는 소리를 내며 몸을 밀착시키고 쓰다듬어 달라고 보채고,  한참 만져준 후에야 간식이든 사료든 받아먹었다.

그러던 녀석이 언제부터인가 내 손과 가방, 옷 주머니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며 먹을 것을 먼저 달라고 한다.


겨울에 몇 번 나와 동행했던 남편은 퇴근길에 좀 보고 오라는 말에 혼자서는 싫다고 주차장에서 내게 전화를 걸어  내려오라고 한 일이 몇 번 있었다. 그 이유가 덩치 큰 흰둥이가  무서워서라는 걸 알고는 한동안 남편을 놀리며 웃었다.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이라는 걸 한 번도 티 낸 적이 없었기에 그 순하고 사람 좋아하는 흰둥이를 보고도 가까이 가지 않는 걸 아마 흰둥이가 천방지축 뛰어오르면서 더러운 발로 옷을 망쳐서 그러는 줄 알았다.

그랬던 남편이 내가 서울에서 일주일 지내는 동안 혼자서 밤마다 흰둥이를 챙겨주는 기특한 일을 해내고야 말았다. 그 후로는 퇴근할 때 전화를 걸어 흰둥이 보고 왔느냐고 물었고, 내가 안 갔다고 하면 자기가 들러서 껌 주고 물 주고 오겠다고 했다.


어느 주말, 남편과 외출했다가 집에 오는 길에 흰둥이에게 가보려고 조금 떨어진 곳의 공터에 차를 세웠다. 공터 바로 옆은 경사가 가파른, 시멘트로 포장된  진입로가 있고 그 끝에 설치된 철문이 닫혀  있었는데 안쪽의 넓은 작업장이 훤히 다 보였다. 그 철문 안쪽에도 백구가 묶여 있었고 차에서 내리는  나와 남편을 보고 컹컹 짖어댔다.

평소에는  우회전 커브를 돌면 바로 있는 그 언덕바지의 건물이나 그곳에 있는 개를 고개 돌려 올려다볼 일이 없었다. 차가 지나쳐  가는 위치였기에 의식하지도 못한 것이다.

그날  처음으로  "개껌 하나 줘볼까?"하고 다가갔는데 그 백구는 날 보고 오두방정 꼬리를 흔들며 펄쩍거렸다. 흰둥이보다 어려 보이는 그 녀석이 그동안 흰둥이에게  우리가 다가갈 때마다 인기척에 그렇게 짖어댔던 아이라는 걸 그때야 알았다.

두 공장의 입구가  서로 마주 보는 위치에 있지 않고 경사길 옆 공터에서 20~30미터쯤 더 들어가야 흰둥이네가 나온다. 백구가 묶여있는 위치에서는 우리가 보이지도 않고 작은 소리로 흰둥이에게 인사를 건네는 내 목소리가 언덕 위쪽까지 들리지도 않았을 텐데 그렇게 짖어댔다니...


그날 이후 내가 챙겨야 할 식구가 하나 더 늘었다.

언덕 위의 백구는 그냥 '백구'라고 불렀었는데 내가 챙기지 않는 불특정 한 백구들과 구분하기 위해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 백구가 철문과 담벼락 사이의 한 뼘 공간을 자유자재로 드나들어서 깜짝 놀랐다. 그렇게 큰 덩치가 쏙 빠져나오는 게 신기한데 담장 안쪽에서 고정된  쇠줄 때문에 밖으로 나와도 문에 거의 바짝 붙어있게 된다.

밥그릇과 물그릇은 문 밖에 있는 내가 확인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데 언젠가 한 번 평일 오후에 문이 활짝 열려 있을 때 살짝 들어가 보았더니 그릇이 텅 비어 있었다.

밥때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물은 채워져 있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남의 사업장 안에 들어가서 뭐라고 말할 처지도 아니라 얼른 나와버렸지만 늘 신경이 쓰인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틈새로 드나드는 백구


사람들이 퇴근한 후에는 철문이 잠겨있어서 백구의 그릇을 확인할 수 없지만 혹시 몰라서 물과 사료를  조금씩 준다. 문 안쪽에 그릇을 놓아주기가 쉽지 않고 틈새로 넣더라도 경사져 있는 데다 팔짝거리는 녀석의 발에 차여버릴 것이기 때문에 하는 수없이 그릇을  들고 입에 대준다.


흰둥이의 밥그릇과 물그릇도 요즘엔  비어있을 때가 많은데 밥을 안 준 것인지 다 먹은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사료를 조금만 주고 물을 채워주고 있다. 사람이 먹는 김치찌개 같은 짠 음식을 먹어서 물을 많이 먹어 물그릇이 자주 비어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문이 열려있던 날, 나를 보고 반가워하는 백구


그동안 되도록 공장이 가동 중인 한낮을 피해서 직원들이 퇴근했을 저녁 시간에 흰둥이를 보러 갔는데, 몇 번인가 외국인 근로자들 한두 명이 드나들 때 마주친 이후로는 혼자서 가기가 꺼려진다. 남의 일터  문 앞에서 개를 만지고 있는 낯 선 사람을 곁눈질로 흘끗거리며 자동 셔터문을 열고 들어가거나 나오는 사람을 보자 머쓱해졌고 이상한 사람 취급 당하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내국인을 만났다면 인사라도 건넸을까 모르겠지만 아마 그것도 좀 어색하고 민망할 것 같다.

한 번은 주말 낮에 백구를 보고 언덕에서 내려오는데 공터에 누군가 차를 세우더니 시동을 끈 채로 계속 차 안에서 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당직 근무자인가? 아님 백구를 챙겨주려고 온 사람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집 쪽으로 걸으면서도 계속 뒤가 신경이 쓰이는 건 또 뭐람...

이젠 주말 저녁이나 평일 늦은 시각에 남편과 함께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매일 집 밖으로 나갈 때마다 난 흰둥이와 백구가 날 쳐다보지 않기를 바란다. 나를 보고 기뻐하며 꼬리를 흔들고 밝은 표정을 짓는 그 아이들을 그냥 지나쳐 가는 것이 너무 미안해서...

그저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과 자동차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가족, 나와 남편의 차를 구별해서 반응하는 것이기에 더욱 미안한 마음이다.

볼 때마다 다가가서 만져줄 수도 없으니 한껏 기대를 품은 그 반짝이는 눈빛을 외면하고 가는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 길을 돌아서 갈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라도 보고 싶어서 결국 그 길로 들어서고 가끔 흰둥이가 늘어지게 자고 있는 모습을 보거나 백구의 모습이 안보이기라도 하면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된다. 그러나 그런 날은 아주 드물다.


어쩌다 나는 남의 개들에게까지  마음을 주면서 번뇌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묶여있는 개들의 존재가, 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던 그 생명들이 안타까운 걸 어쩌나...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그들은 길들여진 그 삶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불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려고 애쓴다, 나를 위해서.


흰둥이가 밥그릇에 들어있는 빨간 국물에 만 밥을 이틀 동안 안 먹고 있다가 내가 준 사료를 먹는다.


그래도 봄이 와서 다행이라고, 나를 보는 잠깐이라도 기쁨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자고 생각하려 한다.

혼자서 흰둥이와 백구에게 가는 것이 꺼려지면서부터는 출근하는 남편에게 사료를 챙겨주고 있다. 남편은 늘 물병에 가득  물을 채워 가지고 다닌다. 내가 가지 않는 날은  퇴근길에  두 녀석들에게 들르 집에 들어오자마자 녀석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보따리 풀어놓는다.


남편이 조금 이뻐 보이는 요즘이다.

이 정도면 부창부수라 해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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