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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 리브로 Mar 16. 2023

환자를 위한다면...

전동침대는 필수

아버지가 계셨던, 그리고 내가 한때 근무했었던 요양병원에 최근 서류 발급을 위해 방문할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방문한 병원의 1층 로비가 은은한 조명과 화사한 인테리어로 마치 카페 같은 이미지로 변신해 있었다. 내가 근무하고 있을 때에도 늘 부산스럽게 로비의 치장에 열을 올리느라 화분이며 탁자며 소파 등을 새로 들이고 이리저리 배치하면서 부산을 떨었었는데 팬데믹으로 인한 면회금지가 풀리면서 보호자들의 방문이 늘자 확실히 더 신경 쓴 흔적이 보였다.

병원의 얼굴인 로비를 멋지게 단장하는 것이 중요하긴 할 것이다.

부모나 형제를 요양병원에 맡긴 보호자들에게 적어도 시설 좋은 곳에 모셨다는 자기 위안은 꽤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현실적으로 24시간 동안 직접 환자를 돌볼 수 없는 상황에서 기왕이면 죄책감을 덜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나도 마다하지 않겠다.


문제는 겉으로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고 실제 환자들의 생활과 밀접한 부분은 전혀 개선이 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10년 이상 사용한 환자의 이불은 여기저기 해지고 색이 바래고 누더기처럼 돼버린 것이 많아서 그것을 덮고 있는 환자를 보고 있자면 그렇게 짠할 수가 없었다. 닳고 닳은 데다 누벼진 솜의 공기층이 납작하게 죽어서 포근함이라고는 없는 이불 한 장으로 추운 겨울을 보내는 환자들이었다. 병실에 들어와 볼 수 없으니 보호자들은 알 리가 없고 나처럼 부모님을 병원에 모시고 있는 직원들은 집에서 이불을 가져다 덮어드렸다.

히터가 고장 난 방에  있는 환자들은 이불을 턱까지 끌어올리고 웅크리고 있었다. 같은 병실에서도 환자들마다 추위나 더위에 민감한 정도가 달라서 여름에도 에어컨 때문에 제대로 된 얇은 이불이 필요하지만 누덕누덕한 누비이불로 세 계절 혹은 네 계절을 지나야 하는 상황이었다.

여름에는 반대로 냉방이 잘 되지 않아서 천장에 매달린 선풍기 하나를 회전시키며 4명의 환자들이 푹푹 찌는 더위를 견뎌내고 있는 병실도 여러 군데였다.

병원장이 회진을 돌 때마다 냉난방을 얘기했지만  "네, 고쳐야죠."라고 건성으로 대답만 하고 고쳐주지는 않았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추위(혹은 더위)도 곧  다 끝나가네요, 담에 고치죠 뭐." 하면서 넘어가 버렸다.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환자들은 식사시간이나 간식 시간에도 누군가가 침대의 머리 부분을 세워 주어야 한다. 개인 간병인이 있거나 각 병실마다 상주하는 간병인이 있는 병원이 아니다 보니 공동 간병인 네다섯 명이(저녁 근무 시간에는 두 명) 해야 할 일이다.

간병인이 처리해야 하는 일의 가짓수는 많고 환자는 100여 명인데, 20여 명의 와상 환자들과 움직일 수는 있으나 기력이 없어서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 힘든 환자들의 침상을 수시로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무리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세운 지 오래된 그 병원에서는 아직도 전동침대를 쓰지 않고 손으로 손잡이를 돌려서 침상머리를 세우거나 눕히는 침대를 사용하고 있다. 침대의 높이를 조절할 수도 없고 너무 낮아서 허리를 숙여 처치를 해야 하는 거의 모든 간호와 간병의 행위는 허리의 통증을 유발했다.  


간호사도 조무사도 각자 맡은 업무가 많은 데다 상태가 안 좋은 환자들에게 많은 시간이 쓰이니 병실에 들어가 환자들을 들여다볼 시간이 거의 없다. 주사를 연결하거나 바늘을 빼거나 투약시간을 빼고는 환자의 얼굴조차 볼 시간이 없는데 어쩌다 병실을 한 번 둘러보면 입이 쩍 벌어질 때가 많았다.

식사 시간이나 간식 시간에 90도 각도로 세워서 환자를 앉혀둔 채 몇 시간이 지났는데 아무도 다시 침대를 원상으로 놓고 환자를 눕히지 않은 것이다.  몸을 못 가누는 환자가 침대의 발치 쪽으로 흘러내려 목이 앞으로 꺾이고 상의는 가슴까지 밀려 올라가 몸이 차가워진 채로 있거나 몸이 침대 난간 쪽으로 기울거나 팔이 몸에 짓눌려 있거나 했다. 환자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으나 소리 내어 도움을 청할 줄 모르거나 기력이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거나 했다.

부랴부랴 환자의 자세를 고쳐주고 침대 머리 부분을 낮추는데 뻑뻑한 손잡이를 잡고 돌리는 어깨와 손목이 금세 뻐근해졌다. 그 상황을 간병인들에게 얘기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퉁명스러웠다. "아니 이따 밥 먹을 때 또 세워야 하는데 언제 그 짓을 또 하냐고요? 우리는 다른 일 안 하고 맨날 침대만 올렸다 내리고 있으라고?"

최소한의 측은지심도 없나 너무한다 싶으면서도 간병인들 탓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대를 전동으로 바꾸면 훨씬 수월할 텐데 아무도 원장에게 말하려고 안 했다. 들어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겉치레는 열심히 하지만 환자들을 위해서 돈 쓰는 것을 싫어하는 원장이라며...


병원에서 직접 일해보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을 요양시설에 보내야 하는 상황에서 그런 시설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을 못 할 것이다. 병원도 사업이니 돈이 되는 부분에 투자를 하려고 하는 것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고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병원은 대대적인 리모델링 업을 하여 병실 수를 늘리고 고가의 장비와 인력을 새로 들여 돈이 잘 벌리는 진료 과목을 추가했다. 더 많은 환자를 유치하는 것에 성공한 듯하니

앞으로는 벌어들인 돈으로 기존 환자들의 (거의가 남은 여생을 그곳에서 보낼 환자들이다) 생활환경에도 신경을 써준다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함께 일했던 조무사에게  물어보니 병동 환경은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다고 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나가야 한다고 했던가...

마음대로 나갈 수도 없는 환자들은 어떡한단 말인지...


내 집에서 편히 있다가 조용히 세상을 뜰 수 있다면 좋겠으나 많은 사람들이 결국에는 거쳐갈 수밖에 없는 곳이 요양 시설이다. 꼭 나이가 많아서 가는 곳도 아니다. 불치의 병에 걸리거나 사고로 뇌나 척추를 다쳐서 들어가는 젊은 사람들도 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경우는 놔두고라도 식습관과 운동 등 건강관리를 잘못해서 병에 걸리는 상황만은 면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를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의사를 만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간절하다.



병원을 경영하는 분들은 환자를 받기 위한 시설에만 투자하지 말고 환자를 위한 투자를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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