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들은"봄을 탄다" 또는 "가을을 탄다"는 말들을 한다. 여자는 봄에 마음이 싱숭생숭하여 봄바람이 나고 남자는 우수에 젖은 가을 남자가 된다며...
나는 반대로 가을이면 미칠 듯 외롭고 슬퍼서 세상이 온통 회색빛인 것 같았는데, 단풍이 곱게 물들수록 나의 슬픔은 더 짙어졌고 가을이 가기도전에 매서운 겨울이 먼저 찾아들어 내 마음을 온통 집어삼키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 시절 3년을 그렇게 가을마다 가슴앓이를 하며 보냈으며 눈에 콩깍지 낀 대학 시절엔 사계절이 온통 밝았다가 어두웠다가 난리 부르스였으니 말할 필요도 없다.
결혼 후에는 육아에 치여 계절이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생존이 더 급했던, 전쟁 같았던육아 시기가 그나마 한 가지 고마운 점이 있었다면 끝없이 심연으로 빠져드는 가을의 우울감을 느낄 틈이 없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나이 드는 것도 너무나 좋았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을수록 아이들이 무럭무럭 커간다는 사실이 희망으로 다가왔다.
가을이 오면 벌써 마음속에선 '겨울이 곧 오겠구나' 하는 속삭임이 들렸고, 겨울이 깊어갈수록 '이제 조금만 지나면 새봄이야!'라는 생각으로 일상의 고단함을 달랠 수 있었다.
결혼 후 28년 동안 계절을 타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내가 따뜻한 봄기운이 한창인 최근 느닷없이이유 모를 슬픔에 휩싸이곤 했다. 아니 모든 것이 슬픔의 이유가 된다.
내 차의 엔진 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나 제 집에서 뛰쳐나오는 흰둥이를 지나치면서, 백미러에 비치는 그 슬픈(어쩌면 나의 슬픔이 투영된 것일 수도...) 눈빛을 쳐다보고야 만 순간부터 눈물이 차오른다.
주차장 입구의 고물상 담벼락에 묶인 백구의 때가 타서 회색빛으로 변해버린 털을 보고도 눈물이 난다.
황사 때문에 며칠째 탁한 공기에 뒤덮인, 햇살마저 뿌옇게 내려앉은 숲의 풍경에서 진공상태에 갇혀버린 듯 한 답답함을 느끼다가 또 슬퍼진다. 매캐한 공기 입자 하나하나가 슬픔의 입자인 듯...
그리고 30년 동안 아침마다 출근을 해 온 남편의 고단한 삶을 떠올리며 애잔한 마음이 들어 슬프다.
암투병 중인 사촌 동생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죽음이 삶 가까이에 있다는 느낌은 머리로 하는 생각이 아니라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과 잠자리에 누워 잠 속으로 빠져들기 직전의 몽롱한 순간에 나의 영혼이 가장 강하게 느끼는 감각 같은 것이다.
갑자기 내가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아니 나를 둘러싼 세계가 암흑 속으로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면 공포감보다는 슬픔에 압도당하고 울음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베갯머리에 얼굴을 파묻고 숨죽여 흐느끼다 보면 어느새 슬픔은 조금 가벼워지고 <책 읽어주는 남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잠에 빠져든다. 내가 운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을...
봄은 생명이 자라는 계절, 여름을 준비하기 위해 연둣빛 새싹이 돋아나는 희망의 계절이다.
산책 중에 목련의 손가락 한 마디만 한 꽃봉오리들이 보송보송한 솜털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았다. 눈부시게 하얀 목련꽃이 활짝 폈던 대학 기숙사의 언덕이 생각난다.
그때도 봄은 여름의 희망을 안고 날마다 짙어졌으나, 나른한 봄햇살 아래서 연한 슬픔을 느끼던 나에게, 삶은 그냥 주어진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저 그런 따분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20대의 나에게 미래의 꿈이 있었다면 지금의 나와는 다른 내가 되어있었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지금 아쉬워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말한다, 세월이 참 빠르다고, 어린 시절도 대학 시절도 다 엊그제의 일 같다고... 그러나 나는 그 모든 시간들이 까마득한 옛날의 일처럼 느껴진다. 내가 도달해야 할 미래의 어느 시점도 까마득히 멀리 있는 것처럼 도무지 내다볼 수가 없다. 그러니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지금을 잘 살아야 한다.
슬픔에 질식당하기 전에 그 무거운 막을 걷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가야겠다.
꿈을 꾸기에 늦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문제는 나이가 아니다. 거창한 꿈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남은 생이 얼마나 길고 짧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삶의 이유나 의미를 찾느라 고뇌할 필요는 없다. 그런 것이 어딘가에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다만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며 작은 목표들을 세우고 이루어가고 싶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의 순간에 닥쳐서야 그동안 시간을 허비했다고 후회할지도 모르니 지금부터라도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행복을 최대한 느끼며 살아야겠다.
행복해져야겠다고 마음먹을 필요도 없다. 기쁨이나 슬픔과 마찬가지로 행복은 순간의 감정일 뿐이다. 행복감을 느끼다가도 한순간에 불행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삶이 원래 그러하다는 것을 인정하며 거창한 것을 이루려고 애쓰지 말고 무탈한 일상에 감사해야겠다.
깊은 슬픔에 빠질 수 있다는 것도 다시 감성이 풍부해졌다는 좋은 신호가 아닐까 하는 내 맘대로의 해석을 붙여가며 인생이라는 노트에 나의 봄날을 다시 써 내려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