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가 아파서 며칠 동안 치료를 받으러 다니던 중 어느 날, 물리치료가 끝나고 나서 무음 모드를 해제하려고 휴대폰을 열어보니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친구 J였다. 말할 기운이 없어 '나중에 전화해야지' 생각하며 그냥 차에 시동을 걸었다.
한 달 전 갑자기 J가 함께 여행을 가자며 스페인 여행 패키지 상품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결혼생활을 해 온 J는 외동딸이 타 지역의 대학으로 간 후로는 종종 혼자서 여행을 해왔고 "언제 나도 같이 떠나자"라는 나의 말을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행 제의를 해 온 것이다.
그때 나는 스페인어를 좀 더 공부한 후에 가고 싶었고, 사촌 동생의 상태가 안 좋으니 언제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멀리 가고 싶지 않아서 친구에게 그런 사정을 얘기했다.
그리고 나의 불안이 현실이 되어버린 사촌 동생의 장례식 직후 J에게 문자를 했다. 오래전에 사촌 동생과 조카를 데리고 J의 가족과 식사를 한 기억도 있었고 나와 사촌 동생의 사이가 각별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J는 나를 걱정해 주었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김밥을 사 와서 집에서 점심을 먹고 나니 바로 출근을 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강아지들의 밥과 물을 챙겨주고 배변판을 씻어놓고, 물을 끓여 이온칼슘을 타서 물병에 담고 나니 시간이 촉박했다.
서둘러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타고 시동을 켜면서 아까 J에게서 전화가 왔었다는 생각이 갑자기 났다. '저녁에 전화할까?' 하다가 '아니지, 그러다 또 깜박하고 잊어버리면 금세 며칠 지나가 버릴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을 운전대 위쪽 폰 거치대에 끼우고 스피커폰을 켠 후에 부재중 표시가 되어있는 친구의 번호를 보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가고 차도 서서히 앞으로 움직이고 있을 때 J가 전화를 받았다.
"전화했었네? 아까는 병원에서 물리치료 중이라 못 받았어."
"그랬구나, 다른 별 일은 없는 거지?"
"응? 무슨 일?"
"아니... 그냥... 꿈에 네가 보이길래 혹시 무슨 일 있나 하고 전화했어."
"응, 아무 일도 없어. 어깨만 조금..." 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서서히 액셀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출구 방향으로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고 다시 쑤욱 나가려는데 갑자기 우지끈 소리가 났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오른쪽 뒤편으로 돌려보니 차의 뒷좌석 문이 주차장의 기둥에 바짝 붙어있었다.
"아아! 어떡해! 어떡해!"나의 외침에 깜짝 놀란 친구의 다급한 목소리가 뒤따라 나왔다.
"어어? 왜? 왜, 무슨 일이야?"
"아휴, 주차장에서 나가는 길인데 기둥에 뒷좌석 문이 긁힌 것 같아."
"아이고, 어쩌냐? 심한 것 같아?"
"아니, 살짝 닿았어. 지금 출근 중이니까 이따 봐야지."
"그래, 전화 끊고 운전 조심해, 조심히 가!"
"그래,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말이 살짝이지... 우지직 소리가 날 정도였으니 문짝이 어떻게 되어 있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수업을 나가는 학교까지 운전하는 내내 조심성 없는 나 자신을 자책했다. 잊을만하면 1~2년에 한 번 꼴로 접촉사고를 내는 나의 덜렁대는 성격도 문제다 싶고, 저녁에 전화하면 될 것을 뭐가 급해서 운전 중에 통화를 하겠다고 그 사달을 낸 것인지 정말 한심했다.
무슨 안 좋은 꿈을 꿨는지도 모르는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별일 없다고 말하며 별 일을 만들어 버린 셈이다.
학교에 주차하고 나서 살펴보니 문짝이 심하게 우글거렸다. 게다가 문을 감싸고 있는 플라스틱 프레임과 철판 사이가 1센티미터 이상 벌어져서 정말 꼴불견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더니 남편은 노발대발 소리를 질러댔다. 내가 뭘 잘 못 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기둥과 옆 차에 닿지 않게 핸들을 반대편으로 틀어서 나간 다음에 크게 회전을 해야 한다고, 도대체 왜 그걸 아직도 모르냐며 소리를 질렀다.
안다고, 아는데... 이제 어떡하냐고. 공업사에 물어봐야 할지, 보험사에 먼저 물어봐야 할지... 난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남편은 계속 화만 냈다. 알긴 뭘 아느냐고, 아는 사람이 늘 같은 사고를 내느냐고... 알아서 하라고, 당신 돈으로 고치든지 말든지 맘대로 하라고.
구겨진 차의 문짝보다 더 구겨지는 자존심.
하아... J야, 넌 도대체 무슨 꿈을 꾼 거냐?
친구의 꿈 때문에 재수 없는 일이 생긴 것은 아닐 테고...
그렇다고 더 큰 불행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을 이것으로 액땜했다고 생각하기엔 내가 꿈이나 해몽을 믿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물론이거니와 내 주변 사람에게 예지몽을 꾸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뭔가 나쁜 일이 생길 것 같다고 믿는다면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살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 꿈 얘기를 하려고 하면 난 "개꿈이야, 꿈은 그냥 꿈일 뿐이야!"라고 일축해 버리고 자세히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꾼 기분 나쁜 꿈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쉽게 잊어버린다.
꿈이라는 게 거의 논리도 안 맞고 과거의 경험과 상상과 누군가에게서 들은 이야기, 영화, 드라마 혹은 어디선가 읽은 내용들의 짬뽕일 때가 많다. 그러니 꿈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언젠가 여동생이 말했다, "이가 빠지는 꿈을 꿨어. 이 빠지는 꿈은 가까운 사람이 죽는다는데..."
난 대답했다, "그 말이 맞다면 내 주변엔 지금 아무도 없어야 돼. 난 맨날 이가 빠지고 흔들리고 그랬어"
사촌 동생의 상태가 나빠지고 있을 때도 삼촌이나 동생들이 그랬다, 꿈자리가 안 좋은 것이 아무래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고... 그럴 때마다 난 생각했다, 동생의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나쁜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나빠지고 있는 동생의 상태를 보고 계속 걱정을 하고 있으니 안 좋은 꿈을 꾸는 것이라고.
공업사에 차를 가지고 갔더니 문 한 짝을 통째로 바꾸면 100만 원이 넘는다고 했다. 보험처리를 하자니 보험료 할증이 무섭고 보험회사에 물어보니 자기 부담금이 50만 원이나 된다고 했다. 결국 비보험으로 50만 원 주고 판금. 도색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친구가 나에 관한 꿈을 꾼 것은 세상을 떠난 사촌 동생에 대한 나의 문자를 받고 친구가 나를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접촉 사고를 낸 것은 나의 부주의함 때문이다.
친구에게 예지몽의 능력이 있다 한들 그 정도 사고가 뭐 그리 대수라고 친구의 꿈으로 알려주겠나 싶은 나는 수리비로 나갈 아까운 내 돈 생각에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