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이지만 남편은 출근을 했고, 전날 잠을 설친 핑계로 다시 이부자리로 기어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고자 무작정 집밖으로 나갔다.
처음엔 입주민 단톡방에서 누군가가 말한 등산로를 찾아볼까 하고 그 방향으로 걸었으나 이내 되돌아와야 했다. 차량통행이 적은 왕복 2차선 도로는 양쪽 모두 인도에 바짝 붙여서 화물차들과 지게차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고 사람들의 통행도 거의 없는지 보도블록엔 잡풀들이 우거져 정글을 이루고 있었다.
어쩌다 이런 공단의 한 구석에 혼자 우뚝 선 주거 단지에 입주하게 되어 겪는 여러 가지 불편들 중의 하나이지만 나의 순간의 선택이 가져온 결과이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발길을 돌린 나는 평소에 주로 이용하는 도로는 아니지만 전철역으로 아이들을 마중 나가거나 데려다주면서 차를 타고 지나다니는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그쪽으로 난 보도블록은 비교적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있었고 공단 내 사업장들의 정문 주변으로 아기자기한 작은 화단이 보이기도 하고 가로수들도 가지런히 가지치기가 되어 있었다.
그쪽 도로는 남편이 출퇴근할 때 늘 이용하는 도로이며 매일 밤마다 남편이 퇴근길에 들러서 간식을 주고 있는 강아지들(이라고 하기엔 엄청 큰) 두 마리가 있는 있는 회사 건물이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다. 그 강아지들을 보러 가기로 맘먹었다.
지난겨울 동안 내가 거의 매일 만나러 갔던 백구 두 녀석들을 3월 말부터 주로 남편이 보러 다니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는 새로운 개 두 마리를 알게 되었다며 남편은 아침마다 사료와 개껌을 따따블로 챙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밤마다 피곤에 찌들어 퇴근 후 곧바로 방으로 들어가 누워버리던 사람이 새로 사귄(?) 개들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느라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딱 한 번, 언젠가 주말에 남편과 함께 가까이에서 보았던 그 개들도 흰색이었는데 한 녀석은 진돗개 백구였고 다른 녀석은 삽살개 종류로 털이 어마무시하게 자랐는데 관리가 되지 않아 떡진 채로 무겁게 눌려 있었다.
그 개들은 묶여있지 않고 펜스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나무 한그루도 없는 시멘트 바닥 위에 개집 두 개가 놓여있을 뿐이어서 땡볕을 피할 공간이 없었다. 혹한의 추위에 바람을 피할 수 없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여름의 초입에 있는 오늘, 아침부터 햇빛은 강하고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날씨였는데 펜스의 안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그릇들엔 물이 한 방울도 없었다. 개껌을 하나씩 주고 돌아서다 마음에 걸려 가방에서 물병을 꺼냈다. 펜스의 창살 사이로 손을 집어넣고 물을 손바닥에 부어주니 두 녀석들이 함께 입을 대고 허겁지겁 물을 핥아먹었다. 먹는 양보다 땅바닥으로 흐르는 물이 더 많았지만 조금이라도 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쯤하고 말까 하다가 개의 주인에게 문자를 넣었다. 전에 그 사업장의 상호를 보고 같은 단지에서 살고 있는 주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입주민들의 오픈채팅방을 통해 개인톡으로 삽살개의 털이 너무 덥고 무거워 보인다고 미용을 하면 좋겠다는 건의를 했었다. 아무리 완곡하고 정중하게 얘기를 한들 무례할 수도 있는 일인 줄 알면서도 삽사리가 더위에 얼마나 고생일까 생각하니 내 마음이 너무 무거웠던 것인데, 다행히 그분은 여름에 털을 깎아주려 하고 있다는 답장을 보내주었다. 이름을 물어보니 '룰루'와 '랄라'라고 했다.
오늘은 물이 하나도 없더라는 내용의 문자를 넣었는데, 남편이 저녁에 집에 오면서 들러서 보았더니 물이 채워져 있었다고 한다. 앞으로는 더 이상의 간섭을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삽사리 룰루 & 진도견 랄라
이렇듯 관심을 갖는 대상이 늘면 걱정과 염려가 늘고 마음이 늘 불편해진다. 남의 개들에게 간식을 주고 그 주인에게 간섭하는 말을 하게 되니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불쾌할 것이며 걱정을 사서 하는 나는 또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인가 싶기도 하다.
겨우내 마음을 무겁게 했던 묶여 있는 개들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이 결국은 나의 집착임을 인정하고 내려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마침 날씨가 풀리니 걱정이 덜어지는 부분도 있었기에 백구들을 향한 발걸음을 줄일 수가 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 왜 안 가느냐며 애석해하던 남편이 처음엔 주말에 한 번씩 가더니, 자기를 보면 좋아서 엉덩이를 흔들고 반가워하는 그 애들이 눈앞에 어른거려 그냥 집으로 들어오기가 힘들다고 어느새 매일 들르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어떤 식으로든 마음의 짐을 덜게 되었고 남편은 즐거움과 함께 걱정을 떠안게 된 셈인데 지금은 챙겨야 할 식구가 늘었으니 한심한 일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하는 도중에 또 다른 커다란 개를 보게 되었다. 그 녀석도 전부터 눈에 띄게 공장 담벼락 밖으로 나와 있었는데 벽돌담 옆으로 철망으로 된 펜스가 둘러져 있고 개가 드나들 수 있도록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다. 남편이 인사를 건네려고 차를 도로가에 세우면 컹컹 짖어대고 담장 안으로 들어가 버리더라는 얘기를 했었다.
엄청난 덩치에 황색의 긴털이 빼곡한 그 개는 가까이서 보니 차우차우를 닮았다. 폭설이 내리던 날에도 눈을 맞으며 밖에 나와 앉아서 오가는 차들을 쳐다보고 있었던 장면이 떠올랐다.
쇠줄에 묶여있기는 했지만 혹시나 짖거나 달려들지 않을까 싶어서 천천히 다가가는 나를 향해 녀석은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었다. 다른 개들처럼 깡충거리지도 않고 그저 천천히 꼬리를 흔들며 느릿느릿 내 쪽으로 걸어오면서눈은나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피는 것 같았다. 순순히 개껌을 받아먹고 나서 킁킁대는 그 녀석의 코에 다시 손등을 갖다 대어 보았다. 가까이서 본 얼굴의 크기가 거의 황소의 얼굴만 해 보였다.
발길을 돌리는 나를 향해 헤벌쭉 입을 벌리고 웃는 모습에는 경계심이 보이지 않았다.
차우차우를 닮은 덩치 큰 녀석
시간은 오전 11시가 넘었고 햇볕은 더욱 강렬했지만 그대로 집으로 들어가기엔 서운해서 흰둥이과 빼꼼이에게도 들렀다. 우리 집 단지의 정문으로 들어가 후문 지하 주차장 쪽으로 나가서 흰둥이에게 먼저 갔다. 여전히 김치찌개의 빨간 국물에 말아준 밥은 겉이 마른 채 먹지 않은 상태로 있었고 개집 주변엔 개똥이 수북했다.
사료는 저녁에 남편이 챙겨 줄 것이니 나는 껌만 줘도 됐다(사료를 챙겨가지 않기도 했고).
어제저녁에는 흰둥이의 쇠줄이 풀려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을 발견한 남편이 다시 쇠줄을 걸어서 묶어두었다고 했다. 지난겨울엔 목줄에서 연결고리가 벌어져서 탈출했지만 이번엔 기다란 쇠줄을 끌고 다니고 있어서 더 위험해 보였기에 잡아서 묶어놨다고 했다. 가끔 한 번씩이라도 그 줄을 풀어서 잡고 산책시켜주고 싶다는 남편의 마음도 내 맘과 같지만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은 이상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눈 밑에 커다란 진드기를 붙이고 앉아있는 빼꼼
빼꼼이는 일주일 전 내가 딸과 함께 저녁에 보러 갔을 때 줄이 풀려서 도망가는 걸 봤는데, 다음날 남편이 보고는 다시 묶여있더라고 했다.
흰둥이가 전에 그랬던 것처럼 하룻밤의 외출이 준 훈장인지, 오늘 보니 눈밑에 진드기 같은 것이 꽉 달라붙어 있었고, 떼어보려고 해도 미끈거려서 잘 잡히지 않았다. 피를 빨고 있을 텐데 아프거나 가렵거나 하지는 않는지무슨 병이라도 옮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지만, 잠긴 문 안쪽의 담장이나 개집에 고정된 줄을 풀 수도 없고 남의 개를 맘대로 병원에 데려갈 방법은 없으니 어쩌랴...
어두워서 그랬는지 저녁에 들어온 남편은 눈 밑을 잘 못 봤다고 했고 내일 신경 써서 보고 떼어보기로 했다. 상처가 날 수도 있으니 안연고를 챙겨줘야겠다.
흰둥이들과 한 동네에 사는 나의 근황이 이렇다.
최근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라이브 방송을 보면서 어느 질문자의 사연이 깊게 와닿았다. 유기견들을 하나둘 돌보다가 지금은 개체수가 상당히 많아졌고 개인적인 이유로 돌봄을 그만두어야 하는데 후임을 찾지 못해서 괴롭다는 내용이었다.
스님의 답변은 하는 데까지만 하고 그냥 내버려 두라는 것이었다. 그냥 야생에 산다고 생각하라고, 인간이 가두어 두고 음식을 주는 것이 과연 그들을 위하는 것이냐는, 자기 마음 편하려고 하는 짓이지 정말 그것이 동물들을 위하는 것이냐는 말씀이었다.
갇혀 있는 동물들을 볼 때마다 나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개들을 키우고는 있지만 애견샵에서 사 온 것은 아니다. 길에서 태어나 유기견 보호소에서 자란 강아지들이고 나는 그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며 사랑을 베풀고 있다고 확신했다. 강아지 공장의 문제점이 드러난 펫산업의 어두운 이면이 이슈가 되었을 때 적어도 난 그런 악순환의 고리에 가담한 소비자는 아니라는 생각에 의기양양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사실은 아이들이 커서 떠나버리고 나자 나의 외로움 때문에 강아지가 필요한 것이었다.
공단에서는 어떤 이유와 경로로 강아지들을 데려다 사업장의 한 귀퉁이에 묶어놓거나 가두어놓고 키우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개들이 과연 행복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보안시스템이 잘 되어있는 요즘 세상에 맹견도 아닌 저 강아지들이 경비견의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묶여있어서 외부인이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침입은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건물을 지키기는커녕 외로워서 사람만 보면 낑낑거리고 한 번 봐달라고 만져달라고 하는 개들이다.
공단의 개들을 소유한 사람들도 나도 결국은 자기들의 만족감을 위해 개들을 먹이고 있는 것이다.
내 차가 지나갈 때마다 벌떡 일어나던 흰둥이는 내가 방문을 거의 하지 않고 한두 달이 지나자 지금은 내 차를 보고도 꼬리만 살짝 흔들뿐 자리에서 일어나지는 않고 바닥에 누운 채 고개만 들어 차의 움직임을 시선으로 좇는다.
또 다른 백구인 빼꼼이(창살 틈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고 반긴다며 남편이 그렇게 이름 지었다)도 내 차가 지나갈 때마다 펄쩍거리며 날뛰더니 차츰 움직임이 줄어서 요즘엔 몇 걸음 왔다 갔다 하는 정도다.대신에 남편의 차가 지나갈 때마다 흥분해서뛰고 짖는다고 한다.
항상 기대를 저버리고 지나쳐버리는 것이 미안하지만 그렇게 지나치기로 했다. 남편이 밤에 챙겨줄 거라는 위안이 있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남편은 나보다 생각이 덜 복잡한 사람이니 슬쩍 그에게 바통을 밀어버렸다 해도 괜찮을 거다.
뭐 어쨌든 그것도 남편의 선택이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되 결과에 연연하지 말아야겠다.
갇혀있지 않다는 이유로 길고양이들이 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내 맘대로 해석하는 것이겠지.
살아간다는 것이 인간이나 동물이나 힘든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떤 환경이 더 나을 것인가 하는 것도 나의 관점인 것이고 그들을 보고 즐거운 것도 괴로운 것도 나의 감정일 뿐이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아무리 괴로워한들 누구에게도 이익되는 것이 없는데 보면서 마음 아파하고 그래서 안 보겠다고 하고 그러면서도 계속 신경은 쓰이는 요상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