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출근길에 내 차가 서서히 지나가자, 제 집에 기댄 채 시멘트 바닥에 누워서 자고 있던 흰둥이가 머리를 살짝 들더니 차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고개만 돌렸다.
마치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처럼...
'음, 역시 그냥 지나가는군. 지금은 간식 때가 아니지.'
몇 미터 지나 왼쪽 언덕을 쳐다보았더니 빼꼼이가 보이지 않았다.
'어? 웬일이지? 더워서 집 안에서 자고 있나?'
차가 앞으로 진행하면서 슬쩍 보았기에 내가 지나간 후에 나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몇 시간 후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지나칠 때도 빼꼼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날 밤, 남편이 들어오며 말했다. 빼꼼이 눈에 붙은 진드기를 확인해 보려고 했는데 강아지가 없더라고.
"엥? 무슨 일이지? 지난번처럼 또 풀려서 어디로 도망가버렸나?"
다음날인 화요일은 현충일이었다.
빼꼼이가 궁금해진 남편과 나는 아침부터 확인하러 나갔다.
휴일인데도 공장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평소에 문 옆에 바짝 붙어서 폴짝거리던 강아지는 없었다.
작업자들이 멀리서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본 우리는 가까이 갈 수가 없어서 나중에 다시 가보기로 했다.
흰둥이에게 가서 간식과 사료를 주고 녀석을 쓰다듬어 주는 동안 껑충거리는 흰둥이의 쇠사슬이 철컥철컥 펜스에 부딪히는 소리에도 저 위쪽에선 아무 기척이 없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흰둥이에게 다가가는 기척에 컹컹 짖으며 자기에게 와 달라고 성화였던 아이였는데...
해 질 무렵에 다시 가보았을 때는 공장의 문이 잠겨 있어서 가까이 다가갔다.
"빼꼼! 빼꼼아~~"하고 불러보아도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안이 훤히 다 보이는 창살문 너머로 커다란 중장비들과 문 옆에 놓인 개집만 보일 뿐 빼꼼이도 쇠줄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다시 줄이 풀려서 도망갔는데 안 돌아온 걸까?어디로 가버렸지? 사고라도 난 것은 아닐까? 누가 어디로 데려가 버렸나?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걱정이 되었고설마 잡아 먹힌 것은 아닐까 하는 끔찍한 상상까지 했다.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그만 신경 쓰자고 마음먹었다가도 그 공장 앞을 지나칠 때마다 다시 걱정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금요일 밤.
남편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말했다.
빼꼼이의 짖는 소리가 다시 들려서 올라가 봤는데 문 앞에서는 볼 수 없는 안쪽 깊이 묶여 있다고, 흰둥이에게 가있는 동안 자기에게 와달라고 울부짖는 녀석이 안쓰러운데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고.
불쌍한 녀석...
문 앞에 묶여 있을 땐 밤중에도 드문드문 오가는 차량구경이라도 할 수 있고 근처의 가로등 불빛이 닿았다.
하지만 공장의 문 안쪽 깊은 곳은 칠흑 같은 어둠만 있을 뿐이다.그곳에서 외로움과 무서움을 홀로 버텨내며 밤시간을 보내야 하는 백구 빼꼼이. 대분분의 갇혀 사는 공단 개들의 처지와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3개월 동안 쌓인 정 때문에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최근에 같은 동에 사는 이웃 부부를 산책 중에 만난 일이 있었다. 진돗개 흑구를 키우고 있는 그 부부도 개들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언젠가 빼꼼이에게 다가가 간식을 하나 주려고 했다고 한다. 그때 주인인듯한 사람이 내다보며 욕지기를 하면서 개한테 다가오지 말라고 화를 냈다고 하던 부부의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빼꼼이의 줄이 풀렸다가 다시 묶인 것이 아니라면 외부인의 접근을 막기 위해서 일부러 단단히 묶어서 안쪽 깊숙한 곳에 두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그런 것이라면 빼꼼이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예쁘다고가까이 가서 쓰다듬고 간식을 주었던행동이 결과적으로는 우리를 기다리게 만들어버렸고,이제는 지척에서 소리가 들리는데도 볼 수가 없으니 더욱 애가 타서짖어대는 그 아이의 마음을 무엇으로도 다독여줄 수가 없다.
흰둥이에게 갈 때마다 빼꼼이는 울부짖을 것이다.
그렇다고 흰둥이마저도 모른 체해야 할까?
내가 그 애들을 못 봐서 안타까운 마음은 상관없다.
누구라도, 누구든 단 한 사람이라도, 애정을 담아 개들을 쓰다듬어주고 말이라도 건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에 한 번씩, 단 10분 만이라도 공장 밖으로 데리고 나가 걸을 수 있게 해 준다면...
내가 못 보았을 뿐 누군가는 그렇게 그 개들을 돌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려고 애써본다.그래야 내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나 억지스럽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늘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똥 무더기와 물 한 방울 남아있지 않은 빈 물그릇과 잔반이 가득 담겨있는 밥그릇을 보고도 그냥 모른 체하면서 누군가 애정으로 그들을 돌보고 있을 거라고 믿는것은 쉽지 않다.
애초에 지나다니는 사람에게 관심을 보인 그 개들을 못 본 체하고 내 갈 길만 갔어야 했는가 싶기도 하다.
그 사랑스런백구(빼꼼이)에게 허락된 자유는 1.5미터 남짓한 반경에서 이동하는 것뿐인 줄 알았으나 문 밖 풍경을 감상할 자유도 있었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알았다. 그러나 타인으로부터 예쁨 받을 자유는 누려서는 안 되는 것이었나 보다.이제는 빼앗겨버린 자유, 예쁨 받고 사랑받을 자유.
나와 남편을 보고 반기는 백구 빼꼼이를 다시 볼 수 있을까?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헤어짐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별은 왜 늘 어렵기만 한 것인지...
정을 주는 것은 너무나 쉬운데 정을 떼는 것은 왜 그리도 힘이 드는 일인지...
괴로움과 즐거움이 반복되는 것이 윤회라고 했다.
윤회의 고리를 끊는 것을 해탈이라고 한다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기 전에는 그 고리를 끊지 못한다.
나와 아무런 연고가 없는 강아지들을 향한 마음조차도 쉽게 거두어들이지 못하는 내가 해탈을 하기는 글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