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였을 때 너의 두상은 서양의 아이들처럼 앞에서 보면 갸름하고 뾰족한 턱에 이마는 짱구처럼 튀어나오고 뒤통수가 볼록해서 할머니가 널 그렇게 부르곤 하셨지.
하얀 얼굴에 입술은 조그맣고 까만 눈이 유난히도 초롱초롱했던 인형 같은 아기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처럼 우리 집에 있었고 난 내 동생이라며 동네의 또래들에게 자랑했었지.
분유를 먹는 네가 있어서 집에는 빈 분유깡통이 쌓여갔고 이웃집 아주머니들이 한 번씩 양념통으로 쓰겠다며 가져가려고 할 때마다 난 울며불며 못 가져가게 빼앗곤 했어. 너의 기억엔 없겠지만 크면서 할머니한테 들었을 수도 있긴 하겠다. 사실 계속 쌓여가는 그 빈 깡통을 버리지도 못하게 하고 남한테 주지도 못하게 하면서 지키려는 나의 고집에 할머니는 얼마나 난감하셨을까?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지만 난 정말 하늘이 두 쪽 나는 것 마냥 악을 쓰면서 울고 바닥에 엎드려 빈 깡통들을 부둥켜안고 있었단다.
우리 둘이서 저녁에 계속 웃고 떠들다가 잠옷바람으로 문밖으로 쫓겨난 것 생각나니?
내가 예닐곱 살 때였으니까 넌 네다섯 살이었겠다.
저녁에 할머니가 드라마에 한참 몰입하고 계시는데 우린 그때 뭐가 그리 재밌었는지 이불속에서 킥킥대며 장난을 치다가 할머니한테 몇 번 혼이 나고도 계속 웃음이 터져서 결국 찬바람 부는 문밖으로 쫓겨났어. 깜깜한 밤이라 무서웠는지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는 너에게 내가 또 뭐라고 말을 걸었고 우린 다시 키득키득 웃기 시작하고 그러다가 다시 무서워서 같이 끌어안고 있고... 드라마가 다 끝난 후에 할머니가 들어오라고 허락하셔서 방으로 들어간 우리는 불 끄고 잘 시간에 이불속에서 또 깔깔대고 장난을 쳐서 엄청 욕먹었었는데... 그땐 뭐가 그리 재미났을까?
내가 국민학교 2학년이었을 때 전학 간 학교에서는 학생수가 많아서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번갈아 수업을 받아야 했지. 점심을 먹고 나서 할머니가 어딜 나가시면서 문간방에 세 들어 사는 새댁이 너를 봐주기로 했다며 나한테 시간 되면 학교에 가라고 하셨어.
그런데 내가 책가방을 메고 일어서니 네가 엉엉 울면서 나가지 말라고 붙잡는 거야. 아줌마랑 있으면 할머니가 금방 오실 거라고 아무리 얘길 해도 서럽게 울면서 매달리니 난 차마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어.
결국 학교에 가는 걸 포기하고 너와 놀다 보니 몇 시간이 지났고 할머니가 들어오셨지. 학교에 안 갔다고 혼날까 봐 다녀왔다고 거짓말을 했지. 우린 공범이 된 거야.
그다음 날에도 할머니는 외출을 하셨고 넌 또 울고불고 매달리며 학교에 가지 말라고 떼를 썼어.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참 이상한 게 그때 난 학교에 가기 싫어서가 아니라 (정말이야, 난 학교에 가는 게 재미있었거든) 어린 네가 우는 모습이 너무 슬프고 혼자 너를 두고 나가는 게 마음이 아파서 차마 갈 수가 없었어. 세 살 터울인 나도 어렸으면서 꼭 아이를 떼어놓고 나가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처럼 말이야...
그 주간 내내 난 결석을 했고 월요일 아침에 학교에 가서야 내가 결석하는 동안 시험이 있었다는 걸 알았단다. 빨간 색연필로 동그라미며 줄이 그어진 시험지를 받아 들고 과목별로 점수를 확인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던 기억이 나. 선생님은 아팠냐고 묻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나에게 더 이상 뭐라고 말도 안 하셨어.
그래도 다행히 그 후 너는 오후에 등교하는 나를 붙잡으며 울지 않았어. 아마 새댁 아줌마랑 친해졌던가 할머니가 너를 데리고 나가시기도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다른 건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언니야, 가지 마. 언니..."하고 울던 너와 그때의 아픈 마음이 생생하게 떠올라.
넌 항상 외삼촌인 나의 아빠를 아빠라고 불렀어. 사람들에게 "난 아빠가 두 명이야!"라고 말하기도 했지.
네 아빠가 아니고 내 아빠라고 내가 말하면 아니라고 소리 지르며 울었던 거 아마 기억 안 나겠지?
네가 한 번씩 떼쓰고 울기 시작하면 달랠 방법이 없었고 할머니가 두 손 두 발 다 들고 포기해 버리면 혼자서 장롱 속에 들어가 계속 울다가 잠들어 버렸던 것도 생각나니?
반찬투정하다가 설탕물에 밥 말아달라고 해놓고 한 숟가락 먹다가 못 먹겠다고 울고, 콩가루에 밥을 비벼달라고 해놓고 팍팍한 밥을 한 숟가락 뜨다가 안 먹겠다고 울고... 그랬던 너의 모습도 다 귀여운 동생으로만 남아있구나.
너의 둘째 원이가 늘 징징거리고 떼쓸 때마다 우린 참 신기하다고 말하며 웃곤 했지, 어떻게 그렇게 너 어릴 때와 똑같냐며 신기하다고 말이야. 보고 배운 것도 아닌데 그런 것도 유전인자에 새겨져 있는 거냐며...
어른들이 '앞뒤꼭지 삼천리'라는 별명으로 놀릴 때면 숨넘어갈 정도로 울며 뒹굴었던 너의 그 볼록 튀어나온 이마와 뒤통수가 얼마나 예뻤는지, 예뻐서 놀린다는 걸 알 리가 없던 어린 시절이 그립구나.
너의 그 예쁜 두상이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머리카락 몇 올만이 듬성듬성 난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 사진을 보고 왈칵 울음이 터져 나왔단다.
"ㅋㅋ귀엽네"라는 문자 뒤에 감춰진 슬픔을 넌 아마 알고 있었겠지.
차라리 머리카락 한 올도 남김없이 다 밀어버렸을 때가 오히려 예뻤고 정말 예쁜 두상이구나 싶었어.
막내는 영원한 막내인지, 나이 오십 줄에 들어섰어도 넌 변함없이 어리광과 애교가 철철 넘치는 어쩔 수 없는 막내이고 우리 집 공주들은 그런 이모를 이모들 중에 가장 좋아한다는 거 너도 알지?
맞이인 나는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너만의 매력과 밝은 에너지가 너무나 그리워.
너와의 추억을 떠올리자면 몇 날 며칠이 걸릴 거야.
잠만 자려는 너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기 위해서라도 자꾸 말을 걸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질러진 주방만 치우며 시간을 보내다가 왔던 시간들이 정말 아깝구나.
앞으로는 더 많은 시간을 너와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네가 입원하고 말았네. 왜 항상 난 한발 늦어버리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