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풍경을 네 눈에 담아 주고 싶어

널 다시 볼 수 있다면...

by 엘 리브로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나의 몸은 생물학적인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나왔고 그 이전에는 난자와 정자가 만나 새로운 생명의 씨앗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왜 하필 그 씨앗이 나였던 것일까? 그리고 너는 왜 너의 몸 안에 깃들게 되었을까? 우린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오래전에,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느 곳으로부터 그 씨앗 속으로 보내진 것일까? 그렇다면 누가 보냈을까? 우리 스스로가 선택했을까? 아니, 우리가 이미 어떤 모습으로든 존재하고 있기나 했을까?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인지 그냥 우연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생명이 다한 후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언제 떠나게 될지, 어디서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모습으로 이 육신을 떠나게 될지도 모르고 어느 것 하나 마음대로 선택할 수도 없다.

우리 인간이 아는 것은 모든 생명체가 결국은 죽는다는 것뿐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은영아, 지금 이 순간 넌 깊은 잠을 자고 있는 거니? 정말 영영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거니?

네가 많이 아프지 않기를 바랐어. 꺼져가는 목소리로 아프다고 말하며 초점 없는 눈을 간신히 뜨고 있는 너를 바라보며 마약성 진통제로도 참기 힘들다는 그 고통의 한가운데에 네가 서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지.

넌 원래 어지간히 아픈 것은 아프다는 표현을 안 하는 아이였으니, 그런 네가 아프다고, 약을 먹어도 주사를 맞아도 아프다고 말할 정도면 얼마나 아픈 것일까 감히 상상도 할 수가 없구나.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너에게 뭐라도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것과 진통제로 고통을 최대한 덜 수 있기를 바라는 것뿐이면서도 네가 이곳에 오래오래 머물기를 바라는 것이 너무 이기적인 일일까?


은영아, 어떡하면 좋으니... 난, 자꾸 네가 곧 떠나버릴 것만 같아 무섭구나.

내일이 주말인데, 이번 주말에는 너를 데리고 꼭 호수공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근래에 조금만 매워도 못 먹는 너에게, 어렸을 때 할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간장과 설탕으로 맛을 낸 꽃게탕을 끓여서 가지고 가려고 했었는데...

어제 갑자기 대학병원의 중환자실로 가버렸다는 소식에 안타까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이틀 전날 밤에는 병실에서 네 곁을 지키고 있던 환이와 카톡 문자를 주고받았단다.

내가 주말에 교대해주고 싶어서 오후에 전화를 했었는데 "엄마가 화장실에 가다가 주저앉으면 들어 올려서 침대에 눕혀야 하는데 힘드실 거예요. 저도 힘이 들던데 이모가 어떻게 하시려고요..."라고 하더구나.

일단 생각해 보자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가고 싶더라. 혼자 힘들면 간호사든 누구든 불러서 도움을 청하면 되는 거지 싶었어.


환이에게 "너도 좀 쉬어야지."라고 문자로 말했더니, 몸보다 마음이 힘들다며 그래도 엄마 옆에 있고 싶다고 하더라. 아직도 병원에서는 코로나를 이유로 문병을 허락하지 않고 보호자도 한 명밖에 있을 수 없으니 엄마 옆에 있고 싶다는 환이를 억지로 내보낼 수는 없는 일이더구나.

엄마한테 더 잘할 걸 화내고 짜증 냈던 것이 후회된다는 환이에게 "넌 착한 아들이었고 그 정도 짜증 내는 건 엄마도 이모도 다 했던 거야"라고 말해줬어. 엄마를 돌보려고 올해 대학도 포기해 버린 녀석에게 미안하다고,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을 감당하게 해서 너무나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하면서 많이 울었어.

"아빠는 돈을 벌어야 하고, 원이는 지금 고3이고 기숙사에 있으니, 입학 후 바로 휴학도 안 되니까 그냥 엄마 옆에 있기로 했어요."라는 환이의 말에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그 아이의 고뇌가 가득해서 가슴이 먹먹하더구나. 서울대 아니면 원서를 안 쓰겠다는 말은 엄마와 아빠가 가질 미안한 마음에 대한 배려였던 것이지.

환이가 아니었다면 이미 몇 달 전에 요양시설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을 너의 상황들을 생각하면 환이에게 너무나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었단다. 몇 푼 벌겠다고 매어있는 몸이라서 원할 때 마음대로 너에게 달려갈 수 없는 지영이나 나의 처지도 어린 조카 앞에서 참 부끄러워지더구나.

너를 생각하며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고 있지만 시간이 주어지더라도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말하지 않아도 이미 넌 다 알고 있을 테니까...




요 며칠은 밤새도록 자다 깨다 하는 와중에 너의 꿈을 꾸고 환이가 나오는 꿈도 꾼단다.

오늘 아침 눈을 뜨며, 죽음이란 어떤 걸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더라. 그냥 이대로 계속 잠 속에 빠져드는 것일까? 넌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너의 눈앞에 섬망처럼 그 어떤 이미지들이 떠오르고 넌 그냥 이대로 쉬고 싶다는 기분일까?

너의 마음에 평온함이 가득하길, 지금은 아무 데도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보고 싶지만 참아야 하는 것도 어쩔 수 없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구나...


지금 밖은 벚꽃이 만발하여 눈송이처럼 날리고 노란 개나리가 마치 고호의 해바라기 그림처럼 온통 진한 노랑으로 숨 막히게 멋진 풍경을 그리고 있는데 넌 병실의 차디 찬 천장을 바라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프구나. 어쩌면 계속 잠에 빠져있을 수도 있겠지.

네가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오면 좋겠구나.

함께 호수공원에도 가고 아름다운 봄 풍경을 네 눈에 가득 담아주고 싶어.


너를 다시 보고 싶어, 은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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