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낮부터 일요일 오후까지 간병을 하면서 너의 섬망 증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넌 종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끊임없이 하며 때로는 나의 동의를 구하기도 했지만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말을 거는 모습을 보일 때가 더 많았지. 너를 보며 요양병원에서 만났던 치매환자들과 말기암 환자들이 떠올랐어. 뇌를 다쳤거나 뇌졸중의 후유증으로 인지저하와 섬망증상을 보였던 환자들도 생각이 나더구나.
걷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약해져 버린 너의 두 다리로는 침대 밖으로 나와 서 있을 수도 없는데, 걸어 다니고 싶다고, 나가게 해달라고 우는 너를 달래야 했지.
"혈압이 다시 올라가면, 산소 포화도가 올라가면, 수액을 다 맞으면... 그러고 나면 부축해서 일어나 보자, 휠체어라도 타고 나가보자"라는 나의 말에 매번 너는 흐느꼈고 나는 마음으로 울었단다.
그만하고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난 정말 그러자고, 당장 나가자고 하고 싶었어. 내가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남편이나 딸들이 너와 같은 상황이라면 난 더 이상 헛된 희망으로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아.
너는 낮이고 밤이고 거의 잠 못 이루며 네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현실로 인식하면서 누군가와 대화하고 웃고 울고 화내고, 그러다가 또 어느 순간엔 나와 같은 시공간으로 되돌아오곤 했지.
갑자기 흐느끼는 너에게 왜 우느냐고 물었더니 너는 말했어, "두려워. 잊혀지는 것이 두려워..."라고.
우린 아무도 죽음에 대해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죽음을 의식하며 고통 속에서 지난 몇 달을 보내왔고 너에게서 듣는 잊혀진다는 말은 죽음이라는 말 보다 더 가슴저미는 말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구나.
"아무도 널 잊지 않아. 널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 네 모습, 네 목소리, 너와 함께 갔던 장소들도 다 기억하는 걸..."
널 안고 그렇게 말하는 나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더구나.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그것뿐이었을까? "넌 죽지 않아!"라고 말할 수는 없었을까? 그것이 너무나 뻔한 거짓말이라 해도 그렇게 말해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미 입에서 나가버린 말들을 주워 담지도 못하고 그저 너의 등을 어루만져주기만 하던 나는 마음속에선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넌 아니?
'우린 모두 잊혀질거야, 언젠가는... 그러나 너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 전에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 넌 남아 있단다. 나의 마음에, 너의 가족들의 마음에도, 네 친구들에게도, 오며 가며 엘리베이터 안에서 인사를 나누던 너의 이웃들의 기억에도...'
그리고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이 누군가에게 읽힐 때마다 네가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것이 변함없는 사실임을 그 누군가는 알겠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 너무나도 많은데 그 말들이 너에게 아무런 도움도 안 될까 봐, 너의 두려움을 더 크게 만드는 말일까 봐, 너를 외롭게 만들까 봐 차마 말하지 못했구나.
내가 환이 대신 보호자로 있기로 한 금요일 점심 무렵부터 넌 혈변을 보기 시작했고 금식 조치가 내려지고 물도 못 먹는 상황이 되고 말았어. 물 한 모금만 달라고 애걸하는 너에게 금식이라는 설명을 수도 없이 했지만 넌 금방 잊어버리고 또 물을 찾았단다. 금요일 오후에 대장 내시경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다시 월요일에 대장 내시경을 할 때까지 물도 주지 말라는 주치의의 말을 듣지 않을 수가 없는 나를 넌 얼마나 야속하게 생각했는지...
금요일 밤을 꼬박 새우며 물을 달라고 보채던 너는 허공에서 손을 저으며 자동판매기 앞에서 음료수를 고르는 듯했지.
"언니야, 나 300원만 줘. 환타 한 잔만 마시자."
"언니, 돈 있어? 여기 환타랑 사이다 있는데... 뭘 마셔야 하지?"
너의 말을 들으며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생각했어.
'넌 지금 자동판매기에 동전을 넣고 종이컵에 음료수를 받으며 서 있던 우리의 젊은 시절을 보고 있구나...'
"저기요, 있잖아요, 딸기 주스는 없나요?"
"정서방은 언제 오는 거야? 딸기 주스 만들어 온다면서 왜 안 오는 거지?"
"언니, 냉장고에 블루베리 주스 있는데 꺼내 줄래?"
너무나 속이 상하더구나. 음식을 제대로 먹어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할 수도 없을 만큼 오랫동안 너의 위장은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과일주스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너에게 그것마저 못 먹게 하다니 너무나 야속하다는 생각만 들었어.
날이 새도록 환청과 섬망 증상으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는 너의 말은 발음도 어눌해져서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었고 내가 제대로 대꾸하지 못하고 되물을 때면 짜증을 내기도 했지.
결국 토요일 아침 담당교수가 들어왔을 때, 물을 달라며 한숨도 못 잤다는 얘기를 했더니 아주 조금씩만 물을 먹어도 좋다고 허락을 해주더구나. 그때부터 물을 주면서 난 얼마나 좋던지... 그래도 혹시나 누워서 빨대로 마시는 물에 사레들릴까 봐, 그러다 흡인성 폐렴이라도 올까 봐 조마조마해서, 한 두 모금 빨고 나면 물병을 뺏어버리려는 나와 빨대를 꽉 물고 놓지 않으려는 너는 매번 실랑이를 벌였어.
하루 종일 수시로 물을 달라는 너는 내가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하기도 했지.
"너는 맘대로 마시고 싶은 대로 마시면서 나는 조금밖에 안 주냐?"
매번 병실밖으로 나가서 물을 마실 수도 없고 같은 설명을 수십 번 하다 지친 난 이렇게 말했어.
"난 금식이 아니잖아~"
내 말에 약이 오른 네가 삐져서 말했지, "환이보다 더 독해 너는. 꼴도 보기 싫어!"
"그니까 꼴 보고 있지 말고 잠 좀 자라. 언니도 피곤해. 우리 자자, 응?"
내가 자리에 누워버리면 넌 언제 화를 냈나 싶게 누그러진 목소리로 날 불렀지.
"언니야, 미안한데... 물 좀 줄래?"
그럼 또 짠한 마음이 들어 난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 물병을 들고 네게 다가갔어.
"미안해하지는 말고, 조금만 먹어. 기도로 들어가면 큰일 나니까 천천히..."
섬망증상이 유난히 심했던 토요일 밤.
잠깐 내가 기저귀를 버리려고 나간 사이, 넌 쇄골 아래쪽에 위치한 케모포트(항암치료제를 중심 정맥에 투여하기 위해 심어 놓은 이식형 중심정맥관)의 연결 카테터를 뜯어놓았고 주입되고 있던 수액이 흘러 환의가 흥건히 젖어버렸어.
밤 12시가 넘어서 당직의가 들어와 새 바늘을 꽂았고 넌 고통에 신음했지.
다시 카테터를 잡아 빼려는 너에게, 그러면 또 의사가 와서 아픈 주사를 다시 놓을 거라고 으름장을 놓았던 나도, 옷을 쥐어뜯으며 흐느끼던 너도 슬프기만 했던 밤이었다.
"언니야, 그만하고 싶다. 나 그만할래..."
"그래, 그러자. 너 하고 싶은 대로 해야지..."
일요일 새벽, 네 등을 어루만지던 나와 내 가슴에 기대 울던 너의 생각이 같은 줄 알았지만 나중에 너의 이야기를 다시 듣고는 그게 아니란 걸 알았단다.
아침까지도 계속 깊은 잠을 못 자고 아주 잠깐씩 토막잠을 자며 끊임없이 혼잣말을 하던 네가 갑자기 또 그러더구나.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나 이제 그만할래."
계속 음료수 자판기에 넣을 돈을 달라며 나를 부르다가 "지금은 먹으면 안 된대. 내시경 검사 후에 먹을 수 있어"라는 나의 말에 소리를 지르고 "나가버려, 다시는 꼴도 보기 싫어! 네 전화는 받지도 않을 거야!"라고 말한 직후였어. 널 달래기 위해 내가 말했지.
"그만하고 싶으면 그만해야지... 그럼, 뭘 하고 싶은데?"
"이거... 이거 하기로 했었는데. 거길 가야 하는데. 이거 하고 편히 지내고 싶어. 이거 말이야, 이거..."
하고 싶은 말의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허공을 응시하며 케모포트가 있는 쪽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면서 한참 눈을 깜박이다가 느릿느릿 말하는 너에게 내가 물었지.
"항암제? 항암제 맞으러 가고 싶다고?"
넌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흘렸어.
"그래, 이따 의사 선생님 오시면 그렇게 얘기하자."
"아니, 왜 00 교수는 안 오는 거야? 지금 온다고 방금 전화했는데..."
당장 의사를 만나야겠다고 계속 떼를 쓰던 너는 "집에 가자, 당장 나가자"라고 했고, 이따 의사 오면 부탁해 보자는 나에게 "또 거짓말한다! 또!" 라며 화를 내더구나.
일요일 오전.
언제 다시 너와 이렇게 가까이 있을 수 있을지 몰라서 네 모습을 찍고 싶더라. 면회가 안되니 아무 때나 수시로 널 볼 수도 없고 주말이라고 해도 애들 중 누가 내려와서 집에 있어주지 않으면 병원에서 잘 수도 없는 나의 형편이니...
누워만 있던 너를 부축해서 일으켜 앉혀놓으니 창문을 열어달라고 했고 바람이 시원하다고 참 좋아했지.
혈압이 너무 낮아서 머리를 낮게 하고 다리를 높이라는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날 넌 참 많이 원망했는데, 다행히 오전에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던 거야.
열린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과 구름과 건너편 건물을 배경으로 하고 앉아 있는 너의 사진을 찍었지. 부종이 심해서 퉁퉁 부은 얼굴에 무표정한 네 모습을 보고 "웃어봐, 삼촌한테 보여주게" 했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 보이던 너. 하지만 너무나 부어버린 얼굴은 웃는 표정을 만들지 못했고 입술을 앙다문 채 입꼬리만 올라간 꼴이 되어버렸지 뭐니. 다 빠져버린 머리카락은 정수리 쪽만 듬성듬성 다시 자라고 있는데 그런 네 얼굴이 호빵맨 같다고 말했더니 피식 소리를 내고 웃던 너. 그래, 그게 바로 너야. 왜 놀리느냐고 화내지 않고 만화 주인공 호빵맨을 떠올리며 깔깔깔 웃을 수 있는 게 너라고...
형부는 언제 오냐고 묻길래 영상통화를 걸어주었고 삼촌에게도 영상통화를 걸어주었더니, 형부와 삼촌은 네 얼굴을 보자마자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하더라. 너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영상통화를 연결해주고 나니 내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어. 너의 사진을 문자 메시지로 전송받은 삼촌은 오빠에게 보내줬다며 고맙다고 하시더구나.
다시 네 옆을 지키기 위해 병원으로 돌아온 환이와 응급실 원무과에서 교대하면서 환이에게 많이 미안한 생각이 들더라. 좀 더 오래 간호를 해주지 못하고 그 힘든 일을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조카에게 떠넘기고 돌아서는 길이었지. 환이가 네 옆에 있으면서 얼마나 마음 아프고 몸도 힘들 것인지 알기에 안타깝고 미안하고... 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환이를 찾는 너에게는 아들과 함께 있는 시간 일분일초가 소중할 거라 생각하기로 했단다. 비록 지금은 힘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환이도 지금 너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 있기에 후회 없이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거야.
넌 환이 걱정만 하더구나. "원이는? 원이는 걱정 안 돼?"라는 나의 물음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응!"이라고 말하던 너의 마음을 알아. 그것은 원이보다 환이를 더 아껴서가 아니고, 엄마를 위해 대학 진학까지 포기해 버린 아들에 대한 염려라는 것을, 동생과 달리 내성적이라 더 걱정한다는 것을... 하지만 "환이는 잘 지낼 거야, 걱정하지 마. 넌 아무 걱정도 하지 마."라고 말한 나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걸 넌 알고 있니?
원이는 우리 같은 범생이들과는 너무나 다른 학교생활을 해왔지만 보통의 부모들과는 다른(한없이 포용하고 기다려준) 너와 정서방 덕분에 나름의 선을 지키면서 엇나가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우린 원이에 대해 말할 때마다 그랬지, 저 녀석은 어디다 내놔도 살아남을 거라고... 사회성 좋고 인기 많은 녀석이기에 뭘 해도 먹고살 거라고...
엄마를 보고 말없이 눈물만 흘리던 원이를 보며 난 그 아이가 어쩌면 형보다 훨씬 더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마음속으로 얼마나 많은 용서를 빌고 있을까... 단지 공부를 안 하고 열심히 놀았을 뿐인 그 아이가 지금은 얼마나 엄마에게 미안해하고 있을까... 이대로 가버릴 엄마에게 아무것도 보여줄 수 없어서 얼마나 괴로울까...
은영아, 네가 온전한 정신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 때 원이와 네가 많은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데 지금은 너무 늦어버렸구나. 하지만 난 알아, 너의 마음을. 얼마나 아낌없는 사랑을 주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너의 고통이나 인내가 아니라 진심이었다는 것을, 아들에 대한 믿음이었다는 것을...
병원을 나서며 생각했단다, 이곳 대학병원에서 퇴원할 수 있기를, 네가 원하는 항암치료를 다시 받을 수 있을 만큼 회복이 되고 너와 꼭 호수공원으로 산책 나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