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형, 은영이가 상태가 안 좋아져서 중환자실로 옮겼어요. 오늘을 못 넘길 수도 있다고 중환자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으라더군요."
"어떡한대요... 어젠 그래도 괜찮아 보였는데 왜 갑자기..."
폐렴이라고 했다. 갑자기? 그러고 보니 어제 낮에 잔기침을 몇 번 하는 것 같았다. 기저귀 교체 후에 환기를 시킨다고 창문을 조금 열어두어서 그런가 하고 문을 닫아주었는데 답답하다며 문을 열라고 성화였었지.
수업을 어떻게 했는지 모른다. 학생들에게 노래 가사를 외우게 하고 문장을 외워서 말하게 하고... 쉴 새 없이 떠들었지만 머릿속이 텅 빈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너는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산다는 건 이런 것인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아니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돌아서서 나의 삶을 위한 행위들을 이어가는 것...
잊혀지는 것이 두렵다던 너의 말이 의미하는 것이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닐까? 내가 사라져도, 내가 사랑했고 날 사랑했던 사람들의 일상은 변함없이 되풀이되겠지...
수업이 끝나고 차에 올라타자마자 눈물이 터져 나왔다. 운전하며 집에 가는 내내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제부와 다시 통화를 했다. 인공호흡기를 달았다고 했다. 제부가 늘 말하던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속에는 그것이 포함된 것이었다. 이미 여기저기 전이가 되었고 항암제의 부작용 때문에 온몸의 기능이 다 망가졌는데도 항암제를 계속 맞을 계획이었다. 잠시 암수치가 줄어드는 것을 보고 그동안 제부는 희망을 놓지 않았었지. 다시 암수치가 늘면 다른 항암제로 바꾸어가며 꼬박 3년 동안 항암투병을 해왔다.
언젠가 내게 제부는 이렇게 말했어.
"'진인사대천명'이니까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겨야죠..."
창창한 나이의 네가 요양병원에 누워있는 환자들처럼 그렇게 되고 말았다는 것을 처음 눈앞에서 확인하고 보니 정말 낯설고 끝이 가까워진 것일까 하는 마음이 들었어. 너무나도 달라져버린 너를 나보다 먼저 며칠 동안 간호했던 지영이는 많이 당황했고 무서웠다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몰라 다시 볼 일이 두렵다고 호소하더구나.
나도 아마 비슷한 증상을 보았던 경험이 없었다면 마찬가지로 두려웠을 거야. 네가 나에게 소리 지르고 비난하며 눈을 흘겼을 때 공포심도 느꼈겠지. 하지만 난 너의 변해버린 모습을 보며 너무나 슬프기만 했단다. 남에게 싫은 소리라고는 못 하던 너였고, 어리광 부리고 애교 많던 천상 막내인 너였는데...
말도 안 되는 네 얘기에 맞장구도 쳐주고, 그러다가 무안도 당하고, 가끔은(너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야단도 치면서, 너와 종일 병실에서 보냈던 시간이 벌써 먼 옛날처럼 느껴져.
바로 어제 오후에 널 껴안고 다독이고 네 눈을 들여다보고 웃기도 했었는데 왜 그런 장면들이 꿈속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화요일.
삼촌과 통화하면서 많이 울었다. 몇 달 전에 휴대폰 케이스를 사 준 일로 고모한테서 호된 욕을 먹었던 삼촌은 정말 가슴 아파했어. 왜 선물을 샀느냐고, 마지막 선물을 준비한 거냐고 비난을 퍼부었다는 고모의 마음을, 자식을 먼저 보내야 하는 그 심정을 왜 모르겠니? 그렇게 모두들 너와의 이별을 위한 마음의 준비가 어렵기만 하구나.
수요일에 면회를 하라는 연락을 받았지만 나는 수업을 해야 하고 너와는 일요일 오후까지 함께 보낸 시간의 기억으로 충분하다 싶었어.
인공호흡기를 달고 의식 없이 누워있는 네 모습보다는 나와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하고 나에게 안겨 울던 네 모습을 기억하고 싶었거든.
고모를 마주하기 두렵다는 삼촌에게는 꼭 널 보러 가시라고 말했어. 지난가을 이후로 널 못 보고 안타까워했으니까...
수요일.
오후에 널 보고 순천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영이가 전화를 했다.
"보고 나니까 마음이 더 편해졌어. 내가 간병하면서 봤을 때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끙끙댔었는데 아주 편히 잠든 모습이더라고..."
고모도 담담해 보이셨다고 하더라.
이렇게 우린 이별을 준비하고 있구나.
목요일.
네가 혈액투석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제부가 말한 '진인사대천명'은 어디까지일지 생각해 보게 된다. 네가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고, 충분히 최선을 다 했으니 이제 그만 놓아주자고 문자를 보냈다.
제부가 보낸 답장의 내용은 투석을 시작했으니 2주일 동안 상황을 더 지켜보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겠다는 것이었어.
널 보내지 못하는 제부의 마음을, 그 깊은 슬픔을 내가 어찌 모를까... 하지만 이건 아니잖니? 너에게 물어볼 수만 있다면 과연 네가 뭐라고 대답할까? 이미 모든 기능이 다한 육신을 기계장치에 의존해서 붙들어두고 있는 제부에게 난 마음속으로만 부르짖고 있단다. 제발 이제 놓아달라고, 널 고통 없는 곳으로 훨훨 날아가게 놔두자고...
금요일.
친구와 바람을 쐬러 나갔다. 혼자 집에만 종일 있다가는 슬픔의 무게에 눌려 질식할 것만 같았거든.
만 오천 보를 걷고 나니 몸의 피로감 때문에 잠시 슬픔을 잊은 것도 같았지.
저녁엔 지영이와 통화를 하며 같이 울었어. 요즘 우린 서로의 목소리만 들어도 수도꼭지를 튼 듯 눈물이 넘쳐나고 마는구나.
"언니야, 근데 나 은영이 장례식에 입고 갈 옷이 없어..."
우린 또 눈물이 터지고 말았단다. 서로의 옷을 골라주고 선물을 해주고 새로 쇼핑한 것들을 공유하던 우리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거지? 그러고 보면 우린 검은색 옷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잘 입지도 않는 검정 재킷은 남의 장례식에서 잠깐 입었을 뿐이지만 점점 더워지고 있는 요즘의 날씨로 봐서는 검은색 블라우스가 하나쯤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만약 다른 친척의 장례식이라면 하지 않았을 고민이지. 아무 옷이나 차분한 색으로 그냥 입고 가서 잠깐 인사만 하고 나오면 그뿐일 테니까... 상주라고는 수험생 아들 둘과 남편뿐인 너의 빈소를 함께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하니 옷을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
'이젠 네가 정말 떠나버리기 전에 옷이 먼저 도착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하며 또 울며 잠들었다.
토요일.
결국 난 다시 널 보러 갔단다. 네가 아직 여기에 있는데, 영영 다시 못 볼 곳으로 가버리기 전에 한 번만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어.
아직도 병원은 코로나를 이유로 면회가 자유롭지 못해서 임종면회만 되는 거라고 말하던 간호사는 울먹이는 나의 간청에 마지못해 허락해 주더구나.
형부는 못 들어가겠다고, 너에 대한 첫 기억인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때의 네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다며,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네 모습을 못 보겠다고 했어.
형부의 선택이 옳았어, 은영아.
일주일 전 밤새도록 잠못이루며 괴로워하던 네 모습, 너의 음성이 계속 떠올라 한 주 내내 마음이 아팠는데 지금은 그보다 훨씬 더 아프구나.
네 얼굴은 알아보기 힘들 만큼 광대뼈가 솟아있고 볼이 움푹 파인 채 입을 벌리고 있었어. 기도유지 장치에 다쳤을 윗입술은 검붉게 멍들어 있고 건조한 입술이 다 갈라져 있었지. 네 목의 혈관에서 빠져나오는 혈액이 투명하고 긴 튜브를 통해 기계로 들어가고 다시 기계에서 나와 네 몸으로 들어가는 투석 장치가 계속 돌아가고 있었어. 인공호흡기가 불어넣는 숨을 쉬고 있는 너의 가슴이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것을 보니 정말 평온하게 숨 쉬고 있는 듯이 보였지. 하지만 얼굴은 몰라보게 뼈만 앙상해져 있는데 온몸은 퉁퉁 부어있었고 정상적으로 밖으로 배출되어야 할 수분이 팔다리의 피부를 뚫고 방울방울 맺혀서 흘러나오고 있더라. 체액이 모여 볼록하게 수포를 만들고 있는 너의 피부를 보며 제발 네가 고통이 없는 곳으로 떠나길 바랐다.
네가 제부의 꿈속에라도 나타나서 "그동안 고생했어. 날 위해 최선을 다한 거 알아. 고마워, 이제 나 떠나고 싶어"라고 말해 주면 안 되겠니? 지금 너를 보내기 싫어하는 제부의 고뇌가 얼마나 깊을 것인지 짐작만 할 뿐 똑같이 느낀다고는 아무도 말할 수 없겠지. 그래서 제부의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너무 마음 아프구나. 네 아이들도 어서 마음을 추스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잊혀지는 것이 싫다던 너였기에 오래도록 머무르려고 하는 것일까? 제부가 너를 놓지 못하는 것인지 네가 제부를 놓지 못하는 것인지 이제는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