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동생아, 너의 웃는 얼굴을 본 지가 너무나 오래되었다는 걸 영정 사진을 보고서야 깨달았구나.
이렇게나 눈부시게 환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너였는데 얼마나 아팠으면 그동안 미소 한 번 짓지 못했을까...
이제는 아픔을 다 털어버렸으니 함박웃음을 지으며 지낼 수 있겠구나 싶어 언니는 안심이다.
그런데 난 왜 슬픈 거니, 은영아.
50 평생을 살면서 우리가 꿈엔들 상상이나 해봤을까? 네가 묻힐 자리를 내가 보러 다니게 될 줄을 말이야.
너와의 이별을 전혀 준비하지 않은 제부를 대신해서 난 최근에 친구의 어머니를 모셨다는 수목림을 보러 가기로 했었지.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아무런 정보도 없이 현장 답사도 못 한 채 급하게 장지를 정해버렸고 갈 때마다 아쉬움을 많이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제부에게 내가 알아보겠다고 말했어. 이젠 정말 때가 되었구나 싶어서 조심스럽게 전날 밤에 제부에게 얘길 했는데 이른 아침에 정말로 너의 부고를 듣게 되었구나.
네 마음에 들 거라고 확신하면서도, 무엇이든 최고의 것으로 해주고 싶어 하는 제부의 성에 차지 않을까 봐, 엄마를 보내는 조카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염려 때문에, 나무의 종류와 위치를 고르느라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는지 몰라. 장지를 정하고 나서도 너의 빈소를 다녀온 첫날 밤새 또 고민하고 사진과 동영상을 계속 들여다보며 '여기가 더 나으려나? 아니 여기가 더 좋은가?' 계속 생각했지.
혹여 조금이라도 아쉬운 점이 있다 해도 날 원망하지는 않겠지? 네가 좋아했던 '수만리 커피'처럼 높은 산허리에서 내려다 보이는 경치가 정말 멋지지 않니? 넓게 펼쳐진 산자락엔 울창한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아담한 동백나무에서부터 다양한 크기의 온갖 나무들로 이루어진 수목장은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더라.
동생과 함께 갔었던 경치 좋은 커피숍
너무 키가 커서 고개를 뒤로 젖혀야만 나뭇잎을 볼 수 있는 쭉쭉 뻗은 편백나무보다는 우리들의 키높이와 딱 맞고 풍성한 초록잎과 빨간 꽃을 눈높이에서 볼 수 있는 동백나무가 좋아 보였어. 하얀 꽃송이가 탐스럽게 열려있는 이팝나무 아래가 좋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지만 가을, 겨울엔 앙상한 가지만 쭉쭉 뻗어있을 것을 생각하니 사시사철 짙푸른 나뭇잎이 풍성한 동백에 마음이 더 가더라. 하루종일 햇빛이 잘 드는 곳, 굽이굽이 경사길을 많이 오르지 않아도 되고 사람들이 분주히 지나다니지도 않는 위치에, 그렇다고 외롭게 길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은 곳에 장소를 정했단다.
수목림으로 가는 내내 산과 들과 멋진 가로수들을 보면서 눈물이 나더라. 노란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핀 경치에 제주도가 생각나고, 아이들 다 컸으니 우리끼리 제주도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몇 년 전부터 해왔다는 것도 생각이 났어. 너의 항암치료 일정 때문에 못 가고, 너의 체력이 떨어져서 못 가고, 나의 일 때문에도 시간 맞추기 힘들었고... 이제는 이루지 못 한 꿈으로만 남아버렸네.
오래전이지만 너와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갔던 홍콩 여행에 대한 추억이 있어서 그나마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아니? 사진과 영상으로 남은 장면들이 있기에 언제든지 젊고 건강했던 너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구나.
4월 29일. 토요일.
너의 삼우제를 지낸 날. 아침부터 촉촉하게 비가 내렸어.
해가 뜨기를 바랐지만 동백나무 주변에 화초를 심기로 했으니 오히려 잘 됐지 뭐니. 강한 비바람도 아니고 살랑살랑 부는 바람과 이슬비는 화사한 꽃나무들에게 물을 뿌려주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지...
볼수록 장소를 너무 잘 정했다며 흡족해하는 제부의 말을 몇 번이고 들어도 기분이 좋더구나.
술을 먹지 않았던 너에게 딸기주스와 아이스 카페라테를 올리고 네가 좋아했던 피자와 과일들을 놓았고, 우린 왁자지껄 떠들며 마치 네가 함께 있는 것처럼 너에게 말을 걸고 웃기도 하며 꽃을 심었지.
"은영아, 다 먹었어? 이제 우리 먹어도 되냐?"
"아, 냄새만 맡으라 하고 니들이 다 먹냐?"
우린 그렇게 너를 곁에 두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눈물도 흘렸다가 웃기도 하며 떠들어댔지.
"은영아, 나 죽으면 네 옆에 누워도 되냐?"
"아, 처형 그러세요. 여기 자리 충분해요."
네 사진들을 전날 저녁에 인화해서 토요일 오전에 코팅을 해서 가져갔는데, 여섯 살의 내가 세 살 된 너의 손을 꼭 잡고 화단에 앉아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의 뒷면에 편지를 써서 나뭇가지에 걸었지.
"언니야, 은영이 식구들 사진 거는데 왜 언니가 끼냐?"며 깔깔거리는 지영이에게 말했어.
"뭐 어때? 은영이랑 같이 찍은 건데. 내 자리 찜해 놓으려고 그런다~"
환이와 원이에게도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 써라"며 네임펜을 건넸더니 우산을 받치고 어렵게 손에 쥔 사진의 뒷면에 열심히 글을 쓰더라. 영정 사진으로 썼던 사진을 코팅해서 걸어놓으니 정말 예쁘더구나. 너의 환한 웃음이 눈부시게 예쁘고 너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어.
고모가 손주들에게 그러셨어. 오늘까지만 슬퍼하고 이제 열심히 미래를 준비하라고...
교장 선생님의 훈화 같은 말씀을 들으며 생각했지. 우리 고모, 슬픔을 이겨내고 계시는구나...
장례식장에서 초점 없는 눈빛에 넋이 나간 듯 멍한, 울음도 말도 잃어버린 허깨비 같던 고모의 모습이 아니었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되찾으셨더라.
"아이고, 우리 고모, 목소리 짱짱하시네!"라는 나의 말에 모두들 큭큭 웃었단다.
모두 슬픔을 딛고 웃을 수 있는 것은 끝까지 최선을 다한 덕분이라 생각해. 너에게는 힘든 시간이었지만 사투를 벌이면서도 우리 곁에 오래 머물면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해 준 너에게도 감사하고 있어.
은영아, 이젠 영원히 행복하겠지?
아프지 않은 세상에서 우릴 내려다보며, 다음에 만날 때까지 열심히 우릴 응원해 주며, 아름다운 자연을 마음껏 둘러보며 좋은 자리에서 쉬기도 하면서...
흙이 되고 나무의 영양분이 되어가면서 진정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멋진 일이구나.
잊히는 것이 두렵다던 너의 귓가에 내가 속삭였던 것처럼 우린 아무도 널 잊지 않을 거야. 언젠가 너와 다시 만날 것을 생각하면 죽음조차도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단다.
그리고 네가 더 살고 싶어 했던 소중한 하루하루를 감사히 여기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