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브랜드에 관심이 없는 나는 루이뷔통과 구찌도 너와 지영이를 통해 몇 년 전에야 그 이름을 알았지.
네가 들고 다니는 가방과 가끔 신고 다니던 구두가 샤넬이라는 것을 안 것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고 말이야. 엄마도 이모처럼 멋 좀 부리고 다니라는 애들의 말에도 꿈적 안 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명품이라고는 큰 애가 이탈리아에 갔을 때 국내가격의 반 값에 사 왔다는 작은 구찌 크로스백 하나였어. 그것도 도대체가 실용성이라고는 일도 없어서 애매한 크기와 불편한 디자인 때문에 한두 번 쓰고는 애들 줘버렸지만...
나중에 또 내가 백팩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사다 준 것은 루이비통 백팩이었는데 해외라 싸게 샀다더니 그 가격이면 국내산 가죽백을 3개는 살 수 있겠더라. 그 가방도 디자인이 꽝이라 안 쓰는 물건이 돼버린 지 오래다.
2년쯤 전이었나, 네가 샤넬백 2개를 나에게 주면서 쓰라고 했을 때 시큰둥한 내 반응을 보고 네가 말했지.
"언니야, 팔아버리지 말고 들고 다녀. 요건 좀 덜 나가고 이건 지금 중고 시장에서 700에 거래되는 건데 더 오를 거야. 대충 팔지 말고 오래 갖고 있어!"
"야, 뭐 이쁘지도 않구만 뭐가 그리 비싸대? 그렇게 비싸면 부담스러워, 너 쓰지 왜 날 줘?"
"난 여러 개 더 있어. 언니는 절대 이런 거 안 사잖아. 한 번씩 들고 다니기도 해 봐, 애들도 같이 쓰고."
그때 난 네가 앞으로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음을 직감하고 주변 정리를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많이 슬펐단다. 애들도 그랬어, 가방을 보고는 이모가 줬다고 하자 바로 눈물이 차오르더라.
네가 떠나고 너의 옷들을 정리하러 갔을 때 정서방은 처형들 하나씩 쓰고 애들도 하나 쓰라며 가방 3개를 내놓았고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로고가 아니라서 '이건 뭐지?' 하는 의문이 스치는 와중에 지영이가 그러더라.
"아니, 무슨 소릴? 부담스럽게 이걸 어떻게 나보고 쓰라고? 너무 과하지. 됐어, 우린 이런 거 어울리지도 않으니까 팔아야지! 안 그래, 언니야?"
나는 사실 이해가 안 되더라. 지영이가 과장된 목소리와 제스처를 보여가며 호들갑스럽게 사양할 만큼 비싸 보이지도 예뻐 보이지도 않았거든.
"응? 뭔데?"
"에르메스잖아! 내가 저거 사지 말라고 그렇게 말렸는데 결국 사더라고. 천만 원이나 주고 사놓고 두세 번이나 들고나갔나? 가시내가 사놓은 거 아까워서 어떻게 눈을 감았나 몰라..."
지영이는 말하면서 울먹였고 덩달아 나도 울고 말았다.
그래... 그랬구나... 계속되는 항암치료에도 불구하고 암세포는 계속 퍼져갔고 넌 의지할 데 없는 마음을 그렇게 붙들고 있었구나.
너의 옷장을 정리하면서 태그도 떼지 않고 비닐 포장지가 씌워진 채로 옷걸이에 걸려있는 빅사이즈 옷들을 보면서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했어. 힘든 시기에 옆에 있어줄 수 없었던 코로나 시국이 얼마나 야속하던지...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던 체중 때문에 남편과 아들들의 옷만 입다가 나중엔 빅사이즈의 원피스와 헐렁한 치마들을 사서 옷걸이에 걸어두며 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네가 예전에 입었던 옷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을 알아채고는 울음이 나더라. 다시는 그 옷들을 입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며 정리했을 너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말이야. 우리를 맞이한 옷장 속의 옷들은 거의가 처음 보는 것들이었고 불어나는 체중 때문에 샀을 그 옷들을 결국은 입어보지도 못할 만큼 살은 더 쪘을 테지.
나도 지영이도 이젠 코로나 이전의 몸이 아닌지라 네가 사 둔 한두 치수 큰 옷들이 우리에게 맞더라.
사람의 감정이란 참 묘하기도 하지.
시동생이 몇 년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나자 형님들이 고가의 옷들을 남주기 너무 아깝다며 형부한테 입으라고 갖다 주었을 때 난 너무나 싫었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비싼 브랜드만 걸쳤던 시동생은 투병 중엔 아웃도어 브랜드의 옷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야. 옷장 가득 들어있는 시동생의 옷을 보는 것과 매일 그 옷을 입고 나가는 형부를 보는 것도 싫었고 빨랫줄에 널어둔 옷들을 보며 시동생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도 너무 싫더라. 어떤 옷은 유난히 보기 싫은 것도 있었고 워낙 비슷한 옷들이 많다 보니 형부 몰래 하나둘씩 내다 버려도 모르더라. 살아있을 땐 왕래도 안 하던 형제지간이었는데 주구장창 동생 옷을 입고 있는 것이 이해가 안 됐어. 지금은 형부가 너무 살이 쪄버려서 그 옷들이 몸에 맞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버리게 된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지금 나의 옷장엔 너의 옷장에 있었던 옷들이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단다.
네 옷들을 보고 더 슬픔에 빠질지 모를 아들을 걱정하신 것인지, 장례식장에서 한 구석으로 나를 부르더니 내 손을 꼭 잡고는 "언니들이 나서서 꼭 은영이 옷들을 정리해 줘요."라고 신신당부하시던 너의 시어머니가 생각난다.
그 옷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 느껴지던 것은 슬픔이라고 단순하게 말하기 힘든 무엇이었어. 너의 부재를 더욱 선명하게 느끼게 하면서 뭔가 형용하기 힘든 감정. 그 옷들을 의류 수거함에 버리거나 남에게 줘버린다는 것이 너에 대한 기억을 다 없애버리려는 행위라도 되는 것처럼 절대로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생각도 들었지.
그래서 무작정 집으로 가져왔고 쌓아둘 수는 없으니 옷장 한 칸에 자리를 만들어 모두 걸어두었어.
그리고 한동안은 그 옷들을 볼 때마다 생각했어, 입어야 하나? 버려야 하나? 입어도 되나?...
우리 애들은 네 옷을 입은 나의 모습을 보면 좋아해. 이모를 정말 좋아했기 때문이겠지?
네가 입었었던 옷은 사실 두세 점 밖에 안되고 나머진 새 옷들이긴 하지만 볼 때마다 너를 떠올리게 돼. 슬픈 감정으로 너를 생각하게 된다면 그 옷들을 다 기증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더라. 담담한 기분으로 바라볼 수 있고 오히려 너를 잊지 않는 확실한 방법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
너도 네가 입고 싶어서 샀던 옷들을 남에게 주는 것보다는 언니가 입어주는 게 기분이 좋을까? "처형과 애들이 잘 입고 잘 사용해 준다면 정말 감사하죠!"라고 말하던 제부의 말이 진심이라고 여겨졌어. 아마 너도 그럴 것이라고 제부가 말했고 나도 그렇게 믿어.
그리고 물건은 그냥 물건일 뿐이지, 볼 때마다 감정을 덧씌우려고 하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방만은 그냥 쓰고 싶지 않았단다. 지영이는 새것이고 고가라서 부담스러워서 그런다고 했지만, 난 정말 내가 그것을 들고 다니는 것이 상상이 되지가 않아. 전혀 갖고 싶지 않은 거야. 아무리 봐도 내 스타일이 아닌 것을 어떡하니... 팔지 말고 그냥 쓰라고 제부는 몇 번이나 말했지만 결국 우린 그 가방들을 팔았단다.
네가 지불한 돈의 절반도 못 받았지만 너무 속상해하지는 말아 줘. 쓰지도 않고 모셔두기만 하는 것보다는 팔아서 네 아이들의 등록금에라도 보태는 것이 낫지 않겠니?
만약에 팬데믹 상황이 오지 않았다면, 그래서 네가 처음 재발했을 때 그 힘든 시기에 우리가 자주 만날 수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네가 코로나19에 감염되기 전까지 1년 이상을 사람들과 교류하지 못하고 오직 항암요법에만 매달렸기 때문에 너의 상태가 더 나빠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오늘 문득 들더라.
에르메스 가방을 들고나가면서 말이야...
너는 혼자 죽음에 맞서서 외롭고 두렵고 헛헛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명품가방들을 사들였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은영아, 그거 아니? 넌 참 예뻤어.
대학땐 친구들이 고소영 닮았다고 했다고 그랬지? 아니, 내가 보기엔 네가 훨씬 더 예뻤단다.
명품을 들지 않아도 네가 들면 명품 같았고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도 늘 멋스럽고 화사했지.
에르메스를 그 가격에 팔다니 너무 아깝다는 애들의 반응과 숙제를 해치운 듯 속이 후련하다는 지영이의 한숨 섞인 말 사이에서 난 생각했어.
네가 즐겨 사용하던 손때 묻은 가방이라면 에르메스건 뭐건 난 가졌을 거라고...
명품 중고매장에 가방을 맡기고 계약서를 쓰고 나오는 나의 어깨에 걸려있었던 발렌시아가 크로스백. 네가 아프기 전에 자주 들고 다녔던 , 언제 샀는지도 모르는, 닳아서 반질반질해진 검은색 가죽 크로스백...
그것이면 충분하지, 너와의 추억을 담아 들고 다니기에는.
그것이 얼마짜리인지는 관심이 없어.
우리가 함께 한 시간에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것처럼.
은영아, 사랑해...
추신: 오늘 밤엔 형부에게 물어봐야겠다. 전에 동생이 남기고 간 옷을 입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