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웃는 얼굴

꿈에 아버지를 보았다

by 엘 리브로

아침잠을 잤다.


출근하지 않는 날, 남편이 나가고 나서 다시 자리에 눕지 않기로 마음먹지만 실천하는 것이 정말 힘들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자고 결심하면서도 밤에는 12시가 넘어야 잠자리에 들고 커피를 마시지 않는데도 잠이 쉽게 들지 않는다.

오전에 한두 시간 더 자고 일어나도 몸은 개운하지 않고 오히려 기분 나쁜 나른함이 온몸을 무겁게 하건만 자주 내 마음속 유혹의 목소리에 지고 만다.

'그냥 자버려. 잠이 너무 부족하면 건강에 안 좋다고. 뇌가 쉴 틈을 줘야지!'


꿈에...

아버지는 친정집에 혼자 계신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제대로 못 하시는 아버지가 걱정이 되고 안타까운 마음에 미칠 것만 같다. 대화할 상대도 없이, 종일 TV를 켜둔 채, 거실 바닥에 이불을 펴고 누워 홀로 밤을 맞이하고 뒤척이고 계실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끊임없이 흐른다.

식사도 제대로 못 드셨을 것이 빤하다. 어서 아버지한테 가자, 혼자 계시게 해서는 안돼. 아버지를 집 근처의 요양병원으로 모셔야지.

이미 여동생과는 얘기가 되어있고 아버지에게 가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나의 차가 말을 듣지 않는다. 브레이크를 밟았는데도 바로 서지 않고 미끄러지더니 아랫집에 사는 여자 아이의 세워져 있던 자전거를 받아버린다. 얼른 차에서 내린 나는 자전거를 살펴보고는 핸들이 찌그러져버린 그 작은 자전거를 벽과 내 차 사이에서 꺼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아버지는 환하게 웃으며 문을 열어주셨다.

아버지의 표정이 밝고 건강미가 넘친다. 옛 추억을 얘기하는 아버지의 목소리에도 힘이 넘쳐난다.

갑자기 나는 멀쩡한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넣으려고 하는 못 된 딸이 되어버렸다.

곧 여동생이 올 텐데 뭐라고 말해야 하지? 집을 내놨는데, 병원에 입원수속까지 해놔서 이미 준비가 다 되어 있을 텐데... 어떡하지?

아버지의 웃는 모습에 가슴이 미어진다. 죄송해서, 불쌍해서 미칠 것만 같다.

아버지에게 집에서 나가자고, 병원으로 가자고 말할 수가 없다. 눈물이 흐른다. 다시 되돌려야 하는데, 아버지 옆에 있고 싶은데 우리 집으로 모실 수는 없고 어떡하나...



알람 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울다 만 서러움이 몰려왔다.

너무나 생생한 아버지의 표정과 목소리가 여운으로 남아 있고 그래서 더 서러워진다.

꿈속에서 조차도 나는 변명하기 급급하다. 아버지가 혼자 계시는 것에 마음이 아프면서도 고집스러운 아버지와 함께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시부모님을 모시지 않으면서 남편에게 내 아버지를 모시겠다고 말할 용기가 없다.

그러면서도 아버지 생각에 계속 울고만 있었다.


아버지를 홀로 외롭게 돌아가시게 했다는 미안함이,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 왔던 죄책감이 다시 고개를 드는 아침이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장맛비가 요란하게 내리고 몇 시 인지도 분간할 수 없는 어둠이 창밖의 풍경을 뿌옇게 만들고 있다.

역시 아침엔 다시 자리에 눕지 말아야 한다. 더욱이 비 오는 날 아침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 반복적으로 생각났다. 코로나로 인한 증상이라기보다는 누워 지내는 노인 환자들에게 흔한 흡인성 폐렴일 뿐이고 (사실 그것 만으로도 예후가 안 좋다는 것을 부정한 것이다) 금방 좋아질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는 것도...

내가 병원에서 근무 중이었고 아버지의 상태를 눈으로 직접 보았다면 다르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전화로 물어봤을 때는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말을 들었고 고비가 지났다고 안심하고 있었던 것이 잘못이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이라는 부질없는 생각이 잠시 든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로 되돌아간다면 종일 아버지 곁에 앉아서 두 손을 꼭 잡고 아버지의 귀에 대고 얘기할 텐데... 고생하셨다고,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아버지의 얼굴도 만져보고 팔다리도 주물러 드릴 텐데...


하지만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인가!

시간을 되돌릴 수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어느 시점으로 되돌아갈지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 아니라 훨씬 이전으로 돌아가서 많은 것을 바꾸고 싶어 하겠지.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시어머니의 죽음에 이어 지난봄에는 사촌 동생의 죽음을 겪었다. 죽음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삶 가운데 있으며 언제든지 닥칠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그러나 반복되는 경험에도 불구하고 늘 같은 후회를 하는 것은 내가 너무나도 어리석은 인간이기 때문이거나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나 놓고 나서야 후회한다. 이렇게 할 것을, 저렇게 할 것을, 좀 더 용기를 냈어야 했는데...


죽음으로부터 배운 것을 실천에 옮기지 않고 있다니 정말 한심한 일이다.

반복되는 슬픔에 빠져있지 말고 지금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할 때이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죽을 때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아야 한다고. 그러나 과연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지나온 삶에 대해 만족이나 후회를 할까? 가까이서 많은 환자들의 죽음을 지켜본 의료인들이 쓴 글에서도 후회 없는 삶을 위한 조언들이 넘쳐난다.

나의 죽음이 언제 닥쳐올지 알 수가 없으니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만약 오늘 죽는다면? 오늘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난 무엇을 후회할까?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후회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으니까. 후회하고 있을 시간이 아깝다. 아니, 모른다. 뼈저리게 무엇인가를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곧 죽게 된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사랑하는 나의 가족과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을 것 같다. "그러니 평소에 되도록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사랑을 표현하고 상처 주는 말을 하지 말라"라고 누군가 조언할 것이다. 사실은 내가 지금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런다고 죽음 앞에서 그것이 충분하다고 느끼게 될까?

'난 곧 죽지만 딸들을 이틀 전에 보았으니 지금 못 봐도 돼. 남편이 하필 먼 곳으로 출장을 가버렸지만 오늘 아침에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으니 된 거야. 남편과 딸들이 도착하기 전에 내가 이 세상과 이별하게 되겠지만 괜찮아.'

정말 그럴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죽기 직전까지도 나의 정신이 또렷하다면 사랑하는 이들이 너무나 그리울 것 같다. 혼자라면 너무나 무섭고 외로울 것 같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것은 나의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의 이야기다.


죽음이 다가오면 많은 사람들이 섬망 상태가 되어 이성적인 사고가 되지 않는다. 헛것을 보고 횡설수설하거나 대부분은 말할 기운도 없이 기력이 빠지고, 무엇이 보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허공에 손을 저으며 무언가를 잡으려 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누군가를 부르기도 한다.

그러다가 의식을 잃는다. 아주 깊은 잠에 빠진 듯이 불러도 대답이 없다.

가쁜 숨을 몰아쉬던 나의 아버지도 어느 순간 그런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전에 간절히 보고 싶은 누군가를 만나고 안도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진정제를 주사 맞고 나서 섬망증상을 보였을 때처럼 말이다. 혹시 아버지는 나를 기다리셨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힌다.

아닐 것이다. 아마도 아버지는 입원 초기에 거의 매일 걱정하던 아버지의 외할머니를 만나고 두려움 없이 평온한 상태로 따라나섰을 것 같다.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이 그랬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나는 내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의 장면에서 벗어난 줄 알았다. 사촌 동생의 죽음이 1년 전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기억을 밀어내고 지금의 내 삶과 의식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속에서 느끼는 감정은 내가 여전히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의식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며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불쑥 찾아온 아버지의 모습과 음성에 주체할 수 없는 아픔을 느끼는 나는 아직 끝내지 못한 애도의 한가운데에 머물러 있나 보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막연히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겠지'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지금은 아니라거나 아직 한참 멀었다는 느낌으로 살고 있다.

"사람 일 모르는 거야.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누가 알아?"라고 입으로는 말하면서도 사실은 내가 아닌 타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처럼 느낀다. 그래서 지금 아낌없이 사랑하고, 원 없이 시도하고,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기 위해 노력하는 일에는 게으르다. 마치 시간이 영원할 것처럼 모든 것을 미루는 것이다.


미루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머리로 생각만 하지 말고 실제로 몸이 움직여야 한다.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먼저 떠나며 보낸 메시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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