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그렇게 사라져 버리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24시간인데 나의 시계만 더 빨리 가는 것은 아닐 테고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라고 말한다면 거짓말이다.
사실 내 시간의 도둑은 스마트폰이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
오늘 아침만 하더라도 남편의 간단한 아침과 과일 도시락을 챙긴 후 나도 곧 뒤따라 집을 나서야겠다고 마음먹고는 있었으나 과일 몇 쪽 챙겨 먹으며 휴대폰을 들여다보면서 두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햇볕이 더 뜨거워지기 전에 맨발로 걷기를 하고 나서 어깨 치료를 위해 정형외과에 가야겠다는 계획이었는데 출발이 너무 늦어진 것은 유튜브 동영상에 푹 빠진 탓이다. 거기에 중간중간 카톡 메시지가 뜨면 읽고 답글을 달고, 브런치의 알림이 뜨니 또 몇 편의 글을 읽으며 시간이 흘렀다.
최근 1년 동안은 잠들기 직전까지도 동영상 강의를 듣고 음악을 듣고 오디오 북을 틀어야 잠을 청할 수가 있다. 혼자서 밥을 먹으면서도 쉴 새 없이 검색을 하고 문자를 확인하고 식재료와 생필품을 주문한다. 책을 읽는 것도 스마트폰을 통해서 주로 하고 있으니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은 끊임없이 폰의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서 활자를 읽거나 동영상을 시청하며 두 가지를 동시에 하기도 한다.
결국 오늘 맨발로 걷기 시작한 것은 10시가 조금 지나서였고, 꼿꼿이 앞만 보고 걸어야겠다는 결심과는 달리 하늘이 예뻐서, 조각상들이 멋있어서 사진을 찍겠다고 휴대폰을 꺼내 들고야 말았다.
그런데 맨발로 걷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숙인 자세로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걷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중풍으로 편마비가 온 것이 분명한 어떤 남자분은 한쪽으로 기우뚱한 불안정한 자세로 어설프게 걷고 있으면서도 한손에 휴대폰을 꼭 쥐고 화면에 몰두하며 걷는 것이다.
건강에 도움이 되는 걷기 운동을 하면서도 목은 거북목을 하고서 걷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이러니하다.
중독이란 이런 것이다.
최대한 휴대폰에 시선을 두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그게 뭐라고 정말 의지력이 필요하다) 걸으면서 문득 병원에서 일할 때 봤던 어느 간경화 환자가 생각이 났다.
알코올 중독이 심했던 그 남자는 간경화 말기여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한 상태였는데, 그 지경이 되었어도 집에서는 술을 멀리 하기 힘들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요양병원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환자는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면 한 번씩 외박을 나갔다 오곤 했는데 하루나 이틀 나갔다가 다시 병원으로 들어올때는 어김없이 술 냄새를 진하게 풍기고 있었다. 직원들이 혀를 끌끌 차며 책망의 눈빛을 쏘아대니 미안한지 한아름의 과일을 싸들고 왔다.
"그렇게 좋아하는 술 맘껏 마시지 뭐 하러 병원에 다시 들어와?"하고 친해진 직원들이 핀잔을 주면 씨익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그래도 여기 있어야지. 나가면 진짜 답 없어. 글고 울 엄마가 보기 싫다고 집에서 나가래."
그는 몸을 아끼지 않고 병동의 궂은일들을 도맡아서 했다. 힘쓰는 일뿐만 아니라 시설팀이 제 때 와주지 않아서 난감한 상황, 예를 들어 변기가 막히거나 침대 난간이 고장이 나거나 하는 일들까지도 그의 손이 닿지 않는 데가 없었다. 환자들의 배식 시간에도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환자들을 일으켜 앉히고 식판을 양손에 동시에 하나씩 들고 날아다니는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100여 명의 환자들의 식사는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는 일. "밖에서도 이렇게 열심히 살지 그랬어? 술 마시지 말고!"라고 한 소리 하면 "그러게 말이야. 그때 열심히 못 살았으니까 지금이라도 열심히 일해야지!"라며 씩씩하게 팔을 휘두르며 뛰어다녔던 그였다.
그를 제외한 다른 대부분의 알코올중독 환자들은 알콜성 치매를 앓고 있어서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으며 주로 누워서만 지내고 있었다. 그들은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밤이고 낮이고 구분 없이 이불을 둘러쓰고 잠만 잤으며 누워서 기저귀에 일을 보거나 옷을 버리기 일쑤였다.
그것은 중독의 결과였다.
아버지는 20대 초반부터 가까이 한 담배를 60대 초반까지 40년 동안 손에서 놓지 못하셨다. 매일 한 갑 반에서 두 갑 정도의 담배를 태웠으니 잠자는 순간을 빼면 늘 손에 담배가 들려 있었다. 그 결과로 60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전체 틀니를 해야 할 만큼 잇몸이 다 주저앉았고 이가 모두 빠져 버렸다.
늘 청춘일 것만 같았던, 왕성한 활동력을 자랑했던 아버지가 한순간에 노인의 대열에 서게 되었다는 것이 서글펐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틀니를 착용하게 되자 바로 중년에서 노년으로 시공간이 이동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어느 날 갑자기 금연하겠다며 집안에 남아있던 담배와 재떨이를 모두 내다 버리셨다고 했다. 엄마로부터 그 얘기를 듣고 아버지에게 물었다, "왜요? 절대 못 끊을 것 같던 담배를 왜 갑자기?"
아버지의 대답은 간결했다, "더럽고 치사해서! 건물 내에서는 금연이라고 나가서 피라는데 궁상맞게 그게 뭔 짓이냐 싶었다. 차리리 안 피고 말지."
그걸로 끝이었다. 단번에 끊어버리고 다시는 담배를 찾지 않으셨다.
그렇게 쉬운 것을 더 일찍 끊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냐고, 그랬으면 풍치로 이가 다 빠질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잔소리하는 나에게 그거랑 담배는 별개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으셨던 아버지...
부드러운 음식, 죽이나 밀가루 음식 위주로 식사하면서부터 아버지의 건강은 나빠지기 시작했고 아마도 일찍 인지장애가 온 것도 제대로 씹지 못한 것이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니코틴 중독이 가져온 결과였다.
커피...
과연 카페인만 문제일까?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피로감 때문에 일을 할 수가 없다는 많은 직장인들처럼 나도 아침에 출근하고 종일 근무를 할 때 꼭 비슷한 시간대에 극심한 피로감을 느꼈고 커피를 마셨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대부분의 동료들과 달리 난 그 쓴 맛이 나는 걸 어떻게 먹나 신기할 따름이었고 당을 첨가하지 않은 카페라테를 즐겼다.
그러나 며칠 연속 하루에 한 잔씩 마시고 나면 속이 타는 듯한 뜨거운 느낌이 서서히 시작되었고 그러고도 마실까 말까를 매일 고민하다가 몽롱해지는 정신줄을 붙잡기 위해 입안에 털어 넣고야 마는 카페라테. 결국은 카페인이 이겼고 난 명치끝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에 허리도 못 펼 지경이 돼서야 젤타입의 제산제나 위벽 보호제를 먹고 커피를 중단했다. 그렇게 닷새쯤 커피를 끊고 나면 위의 통증은 가라앉았고 통증의 기억 때문에 한동안은 커피 보기를 돌 같이 하는 능력도 생겼으며 그 기간 동안 오후에 피로감으로 쓰러지는 일은 단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생생하던 통증의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이면 다시 점심 직후의 커피타임에 대한 간절함이 사무치고 오후 시간대로 갈수록 어지럽고 잠이 올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이게 되면서 커피를 마실까 말까를 두고 갈등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믹스 커피를 매일 서너 잔씩 마시고도 속이 멀쩡하고 잠도 잘 잔다는, 그러고도 고지혈증도 없다는, 경이로운 체질의 동료들은 "마셔! 마시고 속 아프면 또 약 먹고! 인생 별거 있어?"라며 설탕 없는 카페라테를 내 코 앞에 들이밀었다.
종일근무하는 직장을 그만둔 이후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매일 같은 시간대에 커피에 대한 갈망과 갈등은 계속 생겼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믹스커피를 끊었지만, 모임에서 가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는 다시 커피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찻잎을 직접 우려내 주지 않고 미세플라스틱을 함께 우려먹는 티백을 쓰기 때문에 허브차를 마시고 싶지 않았고 과일주스에도 시럽이 잔뜩 들어가기 때문에 (넣지 말라고 해도 기본 레시피에 들어가는 부분이 상당하다) 선택의 폭이 좁았다.
"대충 먹어. 그렇게 다 따지면 세상에 먹을 것이 하나도 없어."라고 친구들은 한 마디씩 던졌지만 난 억울한 마음에 항변했다, "니들은 나처럼 안 아프잖아. 심각한 고지혈증도 없고!"
카페에서 사 먹는 커피는 먹은 시간을 불문하고 밤을 꼬박 새우게 만들었으며 어떤 브랜드의 커피는 마시고 나서 수다를 떠는 와중에 바로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듯이 쿵쾅거렸다. '저 멀쩡한 친구들은 도대체 뭐냐... 아니, 내 몸은 뭐가 잘 못 된 거지?'라고 생각하며 커피를 선택했던 자신에게 저주를 퍼붓고 앉아있느라 대화에 몰입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으니... 그래서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를 바로 끊었냐고? 천만의 말씀! 디카페인으로 자연스럽게 갈아탔을 뿐이다.
지인들과의 모임이 있을 때나 딸들이 선물 받았다며 전달해 준 커피 쿠폰이 있을 때, 주말이면 방바닥과 물아일체가 되어있는 남편을 일으키기 위한 당근이 필요할 때 등등...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스타OO에 가서 카페라테 디카페인을 주문해서 마실 기회가 많았다.
그렇게 몇 달 동안 나름 탁월한 선택이라며 뿌듯한 마음으로 즐겼던 커피 타임은 그러나 믹스커피를 먹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속 쓰림 증상을 가져왔다. 디카페인을 먹어도 타는 듯한 통증을 막지는 못했다. 카페인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카페인을 제거하기 위해 하나의 공정이 더 추가되면서 화학물질이 사용되므로 몸에 더 해롭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
'아, 정말 구차하다. 이렇게까지 커피를 꼭 마셔야 하나? 끊자, 정말. 이 지긋지긋한 커피!'
그러나 한 달 전에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정말 오랜만이니 딱 한 잔은 괜찮겠지' 생각하고 달달하면서 비싸고 이름도 복잡한 커피를 시켰다가 절반을 남기고야 말았다. 마시는 도중에 심장이 벌렁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커피를 마시고 싶지 않다... 면 좋겠으나, 달콤한 유혹 뒤의 고통을 기억하기에 인내하고 있을 뿐이다.
불과 한 달 전에 디스크 증상으로 일어서지도 못했던 기억을 갖고 있으면서도 나는 다시 틈만 나면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